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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왕라니 Aug 01. 2022

그래서 나는 "쨍한 파스텔톤"입니다.

(무색무취 무향의 삶이 싫어졌다)

교사 10년 차인 나의 모습은 한마디로 무색무취 무향이었다. 그 어렵다는 임용시험을 무려 재수만에 합격하고, 내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만 걷게 될 줄 알았다.


신규발령 첫해엔 부끄러움과 미안함만 가득해서 다시 교사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두 번째 해에 다른 학교로 옮겼다. 고등학교에서 수업하며 난 수능일타강사들의 흉내를 냈다. 문제풀이를 뛰어나게 설명해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고서는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에 충실했다. 육아와 학교일을 병행하며 지쳐갔고,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 바라본 나의 모습이 참, 별로였다.


업무에서 실수가 생기면 어떻게 하냐며 쫄아있는 모습도, 수업이나 평가에서 민원의 대상이 될까 봐 주춤하는 모습도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나의 색깔이 불분명했기에,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없었기에 되는대로 살았던 것의 대가였다. 감사하게도 난 10년 만에 현실을 직시했다.(퇴직하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그때부터 나의 색깔에 대해 고민했다. 교사 성장학교에서 1년의 과정을 거치며 선생님들과 함께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글을 썼다. 그 과정만으로는 부족해 2년째 교사 성장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 원하는 색은  파스텔톤이다. 무언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쨍하다는 건 보통 원색을 의미하고, 파스텔톤은 은은한 느낌이다. 나는 두 가지 모두를 겸비한 교사이고 싶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개념과 정의가 분명하고, 사고 과정에서도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걸 연습한다. 쨍해야 한다. 불분명함을 없애고 정확한 걸 찾아가는 과목이니까.

그러나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파스텔톤"이고 싶다. 학생들에게 "너 왜 그렇게 했니?"라고 물었을 때, 정확하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난 "수학"선생님이 아닌 "선생님"이어야 한다. 조금은 여유롭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가 되고 싶다.

나의 색을 찾겠다며 돌고 돌아온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 원하는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고, 이 글을 쓴 지금이 머쓱해질 수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예전의 나보다는 성장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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