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탈의실에서부터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대중목욕탕 간지도 참 오랜만이지만, 목욕탕에서 어린아이를 본 건 더 오래된 기분이다.
엄마는 약간 지친 듯했으나, 아이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 엄마와 아이는 미지근한 물의 온도탕에 있고, 난 뜨거운 물의 온도탕에 들어갔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른다.
도-깨비 아저씨능 코가 손이래~ 까자를 주며는 코로 바찌요~~
어릴 적 우리 아이 생각이 나서 참 귀여워 보인다. 근데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노래를 끊고 말한다.
도깨비가 아니라 코끼리야. 왜 계속 도깨비라 그러는 거야?
앗! 그렇네? 난 들으면서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코끼리가 아니라 도깨비라고 했구나. 엄마의 말이 끝나고 아이는 다시 노래를 부른다.
도-깨비 아저씨능 코가 손이래~ 까자를 주며는 코로 바찌요~~
아이는 엄마 말대로 고칠 생각이 없나 보다. 내 눈엔 그저 귀여운데, 그 아이 엄마는 아휴, 하는 기색이다.
때를 미는데도, 금방 그 장면이 떠오른다. "코끼리"자리에 "도깨비"를 넣어 부르면 안 되는 건가? 저 아이가 커서 친구들과 같이 부르다 보면, 저절로 코끼리라고 부르게 될 텐데, 지금 꼭 고쳐주어야 하나?
우리 아이들에게도수학을 받아들일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고 있지는 않을까. 소인수분해를 제대로 하든, 중간에서 실수를 하든, 스스로 고쳐나갈 시간을 주지 않고 옆에서 이건 틀렸다고,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가 돌아본다. 학생에게 생각해보라 하고 시간을 줄 때,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45초 흘러서 난감했던 적도 있다.
기다림,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 더 기다려주는 그 정도의 기다림. 내가 수업하면서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