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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

아이가 또 열이 난다

by 알쓸채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

우스갯소리로 로또에 당첨돼도

내가 하는 이 일은 힘이 닿는 데까지 하고 싶다.


감사하게도

나의 일터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이보다

나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아이가 아플 때.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 건 바로 내 아이.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가 끝난 후 예기치 않게

제법 긴 연가를 써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다른 선생님께 내 일을 떠넘기게 되는 상황이라 몹시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내 일을 대신 맡아주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그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드리며 인사를 드릴 때

그 선생님이 그러셨다.


"엄마가 되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생기지."


그땐 그 말이 그냥 나를 위로해 주시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가 아플 때마다 학교에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나를 볼 때마다 그 선생님의 말씀이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주 전 아이가 40도에 임박하는 고열이 났다.

정상 체온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5일이 걸렸다.


양가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남편과 내가 번갈아 연가를 써가며 아이를 돌봤다.


아이가 아픈 내내 열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아픈 아이도 걱정이었지만 내일은 내가 출근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5일 동안 내 몸과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


아이의 열이 겨우 끝나고 평온한 1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이틀 전 금요일 밤부터 아이가 또 열이 난다.


"아휴.."


한숨부터 나왔다.

안 그래도 오는 화요일이 유치원 발표회라

연가를 썼는데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


월요일엔 전학생도 온다는데..


남편과 또 눈치 싸움이다.

네가 갈지, 내가 갈지.


아픈 아이가 걱정되는 건지

학교에 싫은 소리 해야 하는

내가 걱정이 되는 건지 이젠 헷갈린다.


쿨하게 연가 쓰면 되지 하다가도

온만가지 생각을 다 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이 밤 잠 못 들고 아이의 머리에 수십 번 손을 얹고 있는 엄마가 비단 나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렌 생각들이 오가다 보니

씁쓸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는

아리송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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