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할머니를 넘어서렴
연말정산을 하려고 의료비를 조회하다 눈을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의료비가 5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 연말에 받으신 뇌수막종 시술비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그건 산재 처리가 되어 본인 부담금은 30만 원 남짓이었다. 남은 500만 원은 놀랍게도 1만 원, 2만 원짜리 자잘한 동네 한의원과 병원 진료비들이 모여 만든 결과였다.
어머님은 지난해 연말 뇌수막종 시술을 받으셨다. 시작은 이석증과 어지러움, 그리고 자꾸만 이어지는 무기력이었다. 원인을 찾기 위한 어머님의 부단한 병원 투어 덕분에 우연히 정수리 가까이에서 3cm가 넘는 뇌수막종이 발견되었다. 어머님은 "이 혹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안 좋았구나" 하셨지만, 정작 의사 선생님은 뇌수막종과 현재의 컨디션 난조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다만 혹 사이즈가 크니 감마나이프 시술을 하자고 권했을 뿐이다.
다행히 시술은 잘 끝났지만 문제는 후유증이었다. 몸은 시술 전보다 힘들고 회복이 더디니 자꾸만 "혹시 잘못된 거 아닐까? 악성 아닐까?" 하며 의심의 꼬리를 무신다. 몸의 병도 병이지만 마음의 불안이 어머님을 더 괴롭히고 있다.
처음엔 그저 평생 고생만 하신 탓에 몸에 탈이 난 것이라고만 여겼다. 철없는 20대에 시집와서, 억척스럽게 장사하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셨던 분이다.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 병시중에, 모진 시집살이까지 견뎌내셨으니 몸이 고장 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의 틱이 떠오르면서 퍼즐이 맞춰졌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불안과 강박적 성향 그리고 유전적 요인을 언급하며 가족 중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가 없냐고 물었다.
그땐 남편이랑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이러면서 서로를 위로하곤 했었는데, 이제 보니 사실 우리 집 아들은 시어머니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외모만 붕어빵인 줄 알았는데 기질까지 판박이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진 할머니와, 아직 마음이 덜 자란 손자가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불안'이었다. 어머님을 힘들게 하는 것도, 내 아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도.
처음엔 어머님께 운동, 종교, 배움 등을 권해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어떤 시도도 힘겨워 하신다. 며느리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머님께 자주 전화 드리고 찾아뵈며 "어머님, 지금 증상은 당연한 거예요. 곧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안심시켜 드리는 것뿐이다. 무한 반복 재생되는 녹음기처럼, 그러나 진심을 꾹꾹 담아 긍정의 말을 들려드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불안은 '무지(無知)'에서 온다. 모르니까 불안하고, 모르니까 두려운 거다.
아들의 불안을 걷어 주기 위해 더 많은 경험을 선물하려 한다. 여행 다니며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책을 읽으며 '이 안에 너의 미래를 밝혀줄 지혜가 다 들어있다'는 걸 알려줄 작정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힘들 때마다 나는 심적으로 어머님께 많이 의지했었다. 매사 꼼꼼하게, 성실하게 문제 상황을 처리해 내시는 어머님의 그 단단함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 어머님의 불안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해내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영영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찾아오는 서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이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하시더라도 조금씩 더 나아지시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더불어 내 아들이 할머니의 그 섬세하고 성실한 유전자는 물려받되 불안은 훌쩍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넓은 세상을 알고 불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아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