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무기가 되기를

겁 많은 선생님이 고3 아이들에게 전하는 첫 번째 이야기

by 놀채은

다시, 고3 담임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뒤로, 나는 줄곧 고3 담임 자리를 피해왔다. 입시가 아이들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방향을 정하는 하나의 중요한 챕터임은 분명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 겪을 그 인생의 갈림길에 내가 함께한다는 것이,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올해, 어쩌다 보니 10년 만에 다시 고3인 아이들 앞에 서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선다. 긴장도 된다. 올해 함께 하게될 아이들은 자기 꿈에 적극적인 눈빛을 가진 경우가 드물다. 흘러가는 대로, 점수 맞춰지는 대로...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매일 망설인다. 담임으로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조언이고 어디서부터가 오지랖일까.


평소 나는 아이들에게 훈화를 길게 늘어놓는 편이 아니다. 꼰대 같은 잔소리로 들릴까 봐, 어차피 내 말 몇 마디로 아이들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말로 밥 벌어 먹는 국어 교사로 산 지 16년이지만 여전히 말주변이 서툰 나는, 나의 진심이 잔소리로 흩어지지 않길 바라며 내 마음을 글로 전해본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결국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의 미래를 결정한다."


성실함이 재능을 이기는 순간, 그 생생한 증거를 핑계 삼아 용기를 내어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요령 없는 그 아이, 반 3등의 반란


남편의 제자 중에 올해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아이가 있다. 재수를 거쳐 정시로 합격한 케이스다. 서울대 정시 모집에도 '지역균형선발(지균)' 제도가 있는데, 보통은 현역 고3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티켓이다. 그런데 현역 중 서울대 정시 조건을 맞춘 아이가 없어 졸업생인 그 아이가 기회를 거머쥐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운이 좋았다고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믿는다. 그 아이가 다닌 학교는 지방 광역시의 나름 학군지였지만 전국구로 이름난 학군지처럼 화려한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으로 무장된 곳은 아니었다. 그 속에서 그 아이는 반 3등 정도를 하던 학생이었다. 천재형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압도적인 아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이 눈여겨본 건 그 아이의 '자세'였다. 다들 정시를 두려워 하며 하루빨리 입시를 끝내고 싶어 수시를 노리며 치열한 내신 경쟁에만 뛰어들 때 그 아이는 미련할 정도로 수시와 정시 두 가지 모두를 목표로 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우직하게 엉덩이 힘으로 버티더니 고3 끝까지 성적이 올랐고, 결국 수능에서는 전교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아냈다.


반 3등으로 시작한 성적이기에 비록 현역 때는 아쉬움을 삼키며 서울 소재 공대에 진학하는데 그쳤지만 남편은 그 아이의 잠재력을 확신했다. 졸업식 날, 아이의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해만 더 시켜보세요. 이 녀석, 일 낼 겁니다."



성실함이 재능을 이긴다


남편의 말대로 아이는 대학을 다니며 반수를 택했고 1년 뒤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서울대 공대 최초 합격. 남들이 내신 경쟁에 지쳐 수능 공부를 놓을 때 끝까지 기본기를 다져온 그 성실함이 있었기에 '정시 지균'이라는 우연한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학교 현장은 예전 같지 않아 씁쓸할 때가 많다. 영악한 아이가 득을 보고, 우직한 아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순간들. 세상은 성실한 순서대로, 착한 순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얘들아, 나는 너희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화려한 스킬이나 요령은 당장 눈앞의 작은 이득을 줄지 모르지만 결국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승리하게 만드는 건 너희의 '태도'다.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한 3년, 아니 4년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스무살이 되는 그 해에 당장 만족할 만한 결과로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 시간은 너희의 인생을 반드시 빛나게 해줄 것이다. 나는 올해 너희들의 담임으로서 이런 과정과 결과를 꿈꾼다.



겁 많은 선생님의 다짐


나는 여전히 고3 담임이 부담스러운 겁 많은 선생님이다. 너희의 인생에 내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그리고 내 시선이 닿는 곳에서만큼은 성실한 아이, 마음이 착한 아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아이들이 가장 크게 박수받을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세상이 성실한 순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순서를 믿어보자. 너희의 그 우직한 태도가 언젠가 가장 빛나는 무기가 될 테니.



[작가의 한마디] 고3 교실의 문을 열며 다짐합니다. 잔소리 대신, 성실함의 가치를 믿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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