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④ 소심한 사람의 변화, 강인한 절실함으로
①자신감이란 먼저 나를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https://brunch.co.kr/@bang1999/90)
②-1 사회적 기준을 '나'에게 맞추어 재조정하자(1 of 2, https://brunch.co.kr/@bang1999/93)
②-2 사회적 기준을 '나'에게 맞추어 재조정하자(2 of 2, https://brunch.co.kr/@bang1999/94)
③ 전문성은 내가 힘을 가졌음을 의미한다(https://brunch.co.kr/@bang1999/98)
몇년 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한 부서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직무순환제’라는 것을 운용하기 때문에 매년 연말쯤 되면 꽤나 술렁거리게 된다. 각 부서에서 최소 1명, 많으면 2∼3명까지 타부서로 발령이 나고 또한 타부서에서 현 부서로 이동해 오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한 부서에서 3년에서 5년 정도 근무한 사람들이 대상이 되고, 이들은 ‘직무순환제’에 의해 거의 어김없이 이동해야만 한다.
인사시즌이 되면 회사는 마치 인력시장이 된 듯 보여진다. 각 부서의 팀장들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팀원을 최대한 좋은 부서 혹은 팀원이 원하는 부서로 보내기 위해 타부서의 팀장과 만나 협상하고 또한 인사를 관할하는 인사팀장에게도 미리 부탁을 해놓게 된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부서(혹은 힘있는 부서)란 것이 대부분 정해져 있으며 그 수가 제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아무래도 영업이나 생산과 같은 현장보다는 본사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본사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본사내 다른 부서로 수평이동하기를 바라며, 영업이나 생산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본사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사근무의 경쟁률은 매우 높을 수 밖에 없으며, 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힘든 현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부서에서는 부서경력 4년 정도 된 팀원 한 명이 순환 대상이 되어 타부서로의 이동을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부서의 경쟁률은 이미 치열해져 있었고, 게다가 얼마전부터는 ‘사내공모’(결원이 되는 인원을 사내공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뽑는 제도)가 활성화되어 타부서로 가기 위해서는 해당부서의 전문성은 물론 열정과 평판까지 모두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내공모 마감일날 인기 많은 부서의 경쟁률은 무려 이십대 일을 넘긴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팀원은 같은 부문 소속의 옆 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서의 팀장이 전년도 팀장이었고, 비록 1년 밖에 같이 근무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로 그 팀원에 대해 호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일 부문보다는 타 부분으로의 이동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본사 부서간 이동이 쉽지 않은 상태였고 경쟁이 너무나도 치열했기 때문에 그 정도만 하더라도 잘 된 것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그 후배가 옆부서로 전보발령이 난 며칠 후, 같은 부서의 다른 후배 한명과 둘이서만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후배는 소심한 나에 비해서도 훨씬 더 중증(?)의 소심함을 가지고 있어, 주위 사람들을 다소 힘들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 후배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시키는 말에는 거의 대부분 단답형으로 끝나기 일쑤였고, 의견을 묻는 질문이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거의 대부분 피해가며,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체 하려고도, 답하려고도 않는 그런 후배였다. 또한 같이 근무를 하는 내내 옆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어쩌면 신경은 쓰이지만 일체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일 수도..) 그런 타입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 한가지는 나와 같은 부서에서 생활해 온 4년 동안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모습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많은 이야기를 통해 얼르기도 하고 때로는 협박(?)하기도 하며 현재와 같은 그러한 소심한 모습으로는 당장 1, 2년 후 타부서로의 이동조차 쉽지 않음을 인지시켰기 때문이며, 그 후배 또한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는 점심을 먹는 도중 평소와 다르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인 즉, 인사발령이 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밤잠을 설쳤다는 것이다. 혹 무슨 일이 있었냐 물으니 후배 왈, 자신이 이번에 타부서로 발령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영업현장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밤잠까지 설쳤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소위 벌 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어떤 벌을 받을 지 걱정에 잠까지 못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년도의 경우는 현 부서에서 2명의 인원이 타부서로 발령났었고, 2명 모두 현장(1명은 영업, 1명은 생산)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팀장이 자신에게 부서 이동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그의 소심함이 계속하여 그를 두려움에 젖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사발표에서 자신에 대한 전보명령이 나지 않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그는 영업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현 부서로 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현장으로 나간다는 말은 그에게 있어 다시 고통의 시간을 보내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느라 고생깨나 했겠다고 말해 주었다. 인사발령을 내려는데 팀장이 본인한테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진행했겠느냐고 살짝 면박도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직내에서 그 누구도 가까운 사람이 없으며, 혼자서 모든 것을 고민하고 짊어지고 가는 그에게 피치 못할 주변의 상황들은 그를 당황스러움은 물론 아득한 절벽의 한끝까지 몰고 갔을 것이다. 그는 절벽 끝에서 다시 안정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1년의 시간 뒤에 상황은 다시 어떻게 바뀔 지 모르겠지만.
과거에서부터 조직 내에서는 변화와 혁신이란 단어가 마치 필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변화하지 않고 혁신하지 못하는 조직,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려는 조직은 필히 망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변하고, 환경이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 변화는 커녕 현재에 머무르려 하는 사람은 도태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긴 시간이긴 하지만 동식물 또한 생존을 위해, 멸종하지 않기 위해 진화라는 변화과정을 거치지 않는가. 변화는 현실이며, 사회와 조직이라는 전쟁터 속에 자신이 지녀야만 할 무기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키지 못할 무기가 없는 자, 그 무기를 계속하여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는 자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짓밟힐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도피처는 없다. 소심하든, 대범하든 누구나 다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패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 모를 추락을 하는 것과 같다. 더더군다나 약점이 많은 소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무기를 더욱 더 갈고 닦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자신의 동굴 안에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동굴에서 뛰쳐나와 온 몸으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바뀌어야만 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과감히 변화하고 있음을 온 천하에 알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워야만 한다. 소위 성과를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소심을 그렇지 않다라며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 소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소심한 사람의 변화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강인한 절실함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조금 더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며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김성근 감독이 꼴찌팀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온 후 첫 훈련에서 선수들을 그야말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몰아부치자,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심하게 훈련을 시키냐고. 그러자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꼴찌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팀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다른 팀 하는 것만큼만 하면 계속 꼴찌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조직에서 살아남기를 목표로 한다면, 조직이 원하는 수준을 이루기까지 그야말로 올인해야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시간과 생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로 덤벼야만 한다. 또한 조직에서 바라는 성과도 내야만 한다. 조직의 문제가 있는 시스템 개선이나 원가절감 등의 보여지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 남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현재의 자리만 보전할 정도 혹은 평균 이상 정도만 하겠다는 생각은 곧 자신을 스스로 절벽끝으로 모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행이도 그 후배는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맡은 바 일에도 열심이고,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요청한다. 물론 아직도 잘 하는 타인과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그 노력이 가상해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고 느껴진다. 조직이 원하는 수준, 그 이상을 이루어 내기에는 조금 더 노력의 강도를 높였으면 싶다. 그저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뛰어 넘는 그 무언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좀 더 절실함을 가지고 매진함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 후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변화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서기 싫어하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이 타인의 변화의 모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가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대우 받았으면 좋겠다. 옆에서 근무하는 조금 덜 소심한 선배의 작은 바램이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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