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나은 현재를 만들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5~6년 전쯤의 주말,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처갓집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갈 때마다 장모님은 손수 농사지은 채소들을 그야말로 바리바리 싸 주셨죠. 그날 또한 노각(늙은 오이), 고추, 부추, 감자 등을 차 트렁크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시간은 밤 9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집이 위치한 용인까지는 약 한시간 정도 거리. 거리에는 의외로 차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밤운전을 하고 있었죠.
그때 갑자기 평소와는 다른, 그래서 익숙치 않은 다소 희안한 감정 하나가 마음 속에 일었습니다. 그러자 천천히 차창 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차는 꽤나 눈에 익은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길은 지금 살고 있는 용인이 아니라, 예전 신혼 때 살던 경기도 송탄(지금은 평택)으로 가는 길의 풍경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15년전의 기억들...
당시 저는 결혼하여 경기도 송탄에 신혼집을 마련했었습니다. 회사에 막 입사하여 공장으로 발령 받았는데, 그 공장이 평택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제가 워낙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내는 혼수 대신 그 돈을 전세 구하는데 보탰습니다. 가난한 부부였죠... 결혼 후 1년 만에 첫째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자가용이 없어 본가, 처가 모두 다니기 어려웠었죠.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작은 아버지가 쓰시던 차를 공짜로 주셨습니다. 10년이나 된 차(잊혀진 이름, 대우차 '르망'이었습니다)였지만 워낙 깨끗하게 쓰던 차라, 그 차를 이용해 비로소 본가와 처가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자주 왕래했던 송탄의 시골길이 갑자기 떠오른 것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계속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은 후, IMF로 힘든 상황에서 서울에 위치한 본사로 발령받았지만 전세를 빼지 못해 소송까지 갔던 일... 아이 둘을 낳은 후 계속해서 몸이 좋지 못했던 아내, 없는 돈으로 서울의 전세를 구하기 위해 매일 저녁 서울 거리를 방황하던 일, 결국 힘들게 조그만 연립주택에 방을 구했던 기억까지 주마등(走馬燈)처럼 과거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순간 내면에서 한가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니?’ 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너무나 아프고 힘든 기억들이었기 때문이죠... 돌아보면 추억이라 부를 수 있지만, 막상 다시 하라면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차는 화성을 벗어나 수원의 복잡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마음이 착찹해졌습니다. 15년전으로 돌아간다면, 젊은 나이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텐데 왜...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이번에는 스스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았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지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역시나 답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문제가 있는걸까요? 아니면 지금의 경제적, 안정된 생활이 더욱 만족스럽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 시절의 어려움을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요?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 될 뿐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는 확실해 졌습니다. 과거의 일을 겪어 오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 진 것이란 사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 또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 갈 것이란 사실... 이런 생각이 드니 지금이란 바로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 힘들거나 괴로울 때 한번 자신에게 아래의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마음 한구석에서 움찔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삶의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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