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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시대 직장인의 공부
by 차칸양 Nov 27. 2017

아, 이런 기분이구나. 짤린다는 게.(전편)

후... 오늘 참 긴 하루였네요...


올 것이 왔구나..


불현 듯 하나의 느낌이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요동쳤습니다.


지난 11월 15일 수요일 오후 5시경 부문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목요일 저녁 시간이 있냐고 묻습니다. 선약이 있다 하자, 약간 당황해하더니 그러면 오늘은 어떠냐고 합니다.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인사철이자 갖가지 루머들이 난무하는 시기.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저는 그저 평소처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문장으로부터 저녁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불길한 예감이 맞을 것 같긴 한데, 혹시 그래도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닐까? 금융권 사람들하고 갑작스러운 저녁 약속이 생긴걸까? 아니면 다른 부서 혹은 관계사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어 부문장이 나가자고 합니다. 함께 건물을 나왔습니다. 그가 제게 회사 근처의 조용한 식당 이름을 대며, 거기 괜찮지 묻습니다. 만약, 만약에 정말로 제 예감이 맞다면, 분명 식사가 제대로 넘어갈 리 없습니다. 그래서 부문장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혹여나 안 좋은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차라리 차나 한잔했으면 좋겠다고요. 그의 얼굴에 약간의 당황이 서렸지만 그러자며 근처의 커피집으로 옮겼습니다. 웬일인지 손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문을 하는데 그가 옆에서 혼잣말을 합니다. 너무 조용한데...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2가지 선택, 하지만..


그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순서대로라면 본인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동거동락한 후배를 먼저 내보내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명퇴자 리스트에 제가 올라 있음을 확인하고, 백방으로 뛰며 빼보려 했지만 허사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인사팀으로부터 제가 대상자로 확정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제게 저녁을 먹자 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가 서두른 이유는 단 하나, 혹여나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할 수 있겠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따뜻한 커피가 나왔고, 한모금 마시려 잔을 드는데 손이 떨려 왔습니다. 그냥 잔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 순간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싫은데... 그의 말이 끝나고 제가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혹여나 이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냐고요. 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단답형으로 하나의 단어를 토해냅니다.



없어.


그래, 한 사람의 인생이 단지 몇 사람에 의해 이렇게 정해져 버리고 마는구나. 본인의 의견을 듣고 말고도 없는 거구나...


부문장에게 조금은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2가지 뿐이겠다고요. 하나는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사직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의도를 거슬러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것. 두 번째 선택을 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조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 회사, 그래서 직원들을 너무나 쉽게 내보내고 있는 회사의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안 나가고 버틸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합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요.


아마 제가 나가지 않고 버티게 되면, 당장 부문장이 힘들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쪽에서 직접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진 않기 때문이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내보내라고 계속해서 부문장을 쪼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버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라서가 아니라, 엄연히 이제부터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이런 일로 제 힘을 빼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꿈에서도 몇 번 경험해 봤지만, 내 감정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기분이 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심장이 덜컥, 할 것이란 생각만 들었었죠. 하지만 지금, 그 감정의 굴곡이 강하디 강한 맞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솔직한 지금의 제 감정은 이런 듯 합니다. 감정을 100이라 했을 때,


당혹스러움 30,   분노 15,   아쉬움 10, 

의외의 담담함 5,   경제문제에 대한 걱정 10, 

아내와 가족에 대한 걱정 30...


특히나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답답함과 미안함이 밀려 왔습니다. 사실 지난 11월 6일 지금의 사장님이 다른 곳으로 가고, 부사장이 사장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 좋은 예감이 들긴 했습니다. 뭐랄까요, 사장님은 저를 아껴주시는, 소위 제 편이라 할 수 있지만, 부사장은 저에 대해 그리 탐탁해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빠르면 당장 올해, 그게 아니라면 분명 내년에는 회사를 떠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래서 아내와 아들에게도 그 얘기를 해두긴 했습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다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 속마음은 내년일 가능성이 크겠구나 했었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많이 멀게 느껴집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일로 미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예약까지 해 놓았는데, 오늘 이야기를 꺼내면 당연히 영화를 보러갈 순 없겠지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좋은 기분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집에 왔습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법 묵직한 변화가 있네요. 제 마음 속에 큰 돌 하나가 얹혀졌기 때문이겠지요. 언제가 되더라도 필히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 다행히 아내가 제 마음 속을 들여다보진 못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그냥 무사히, 평소처럼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제 오늘 일은, 내일의 몫으로 넘기려 합니다. 이 또한 삶에서 겪어야 하는 변화이자 순간이라면, 그저 어떻게든 잘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11시를 넘긴 시간, 자리에 눕습니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제가 오늘은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잘 오지 않네요. 그래도 내일을 위해, 다시 충전을 위해 잠을 청해야겠지요.



후... 오늘 참 긴 하루였네요...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www.popco.net/zboard/view.php?id=samyang_talk&no=570)




☞  아, 이런 기분이구나. 짤린다는 게.(후편)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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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이 진행하는 '경제/인문의 밸런싱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6기를 12월 27일(수)까지 모집하고 있습니다.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는 직장인의 경제공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와 더불어 경영 그리고 인문까지 함께 공부함으로써, 10개월이란 시간동안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신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고, 더불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모색하고 싶은 분이라면 용기를 내 꼭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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