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산봉우리, 수액, 망아지의 체온, 사람…. 이 모두는 형제입니다
시애틀 추장은 구석기 시대 도덕률의 마지막 대변자 중 한 사람이었지요. 1852년을 전후해서 미합중국 정부가 나날이 늘어나는 미국 국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그 부족의 땅을 팔 것을 요구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명문의 해답을 보냈지요. 이 서한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도덕의 문제, 진짜 도덕의 문제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번 인용해 보지요.
초원에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그 흔적마저 사라진 지 아득한 옛날,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 아메리카에는 아주 오래된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천 년을 이곳에 살면서, 초크타우, 체로키, 나바호, 이로키 족들의 문화를 비롯한 위대한 인디언 문화를 발전시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백인들이 밀려 왔습니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 전쟁을 일으켰답니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간만큼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백인들은 온 땅을 자기들 소유로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에게는 손바닥만한 땅을 내주며 거기 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기나긴 '인디언과의 전쟁'중에서 마지막 전투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시애틀 추장은 백인과 협상 탁자에 앉았습니다. 그는 북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 사는 인디언 부족들 가운데 가장 용맹스럽고 또 존경받는 추장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모든 권한을 임받고 파견된 백인은 그 자리에서 이 지역 인디언 문제에 관한 서류에 추장의 서명을 받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워싱턴의 미국 정부는 시애틀 추장이 대변하는 이 지역 인디언 연맹국으로부터 땅을 사들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추장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추장의 의연한 모습에 숙연해졌습니다. 그의 두 눈은 위대한 영혼의 빛으로 흘러 넘쳤습니다. 그는 저 멀리까지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애틀 추장은 외쳤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떻게 그걸 사겠다는 것일는지요?
이 지구라는 땅 덩어리의 한 조각 한 조각이 우리 백성에게는 신성한 것이올시다. 빛나는 솔잎 하나 하나, 모래가 깔린 해변, 깊은 숲 속의 안개 한 자락 한 자락, 풀밭, 잉잉거리는 풀벌레 한 마리까지도 우리 백성에게는 신성한 것이올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백성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는 거룩한 것이올시다.
우리는 나무 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을 우리 혈관을 흐르는 피로 압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부요, 이 땅은 우리의 일부올시다. 향긋한 꽃은 우리의 누이올시다. 곰, 사슴, 독수리….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형제올시다. 험한 산봉우리, 수액, 망아지의 체온, 사람…. 이 모두가 형제올시다.
반짝거리며 시내와 강을 흐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올시다.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그대들은 이것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호수의 맑은 물에 일렁거리는 형상은 우리 백성의 삶에 묻어 있는 추억을 반영합니다. 흐르는 물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소리는 우리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강 역시 우리의 형제입니다. 강은 우리의 마른 목을 적셔줍니다. 강은 우리의 카누를 날라주며 우리 자식들을 먹여줍니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형제를 다정하게 대하듯 강 또한 다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공기가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것에, 대기의 정기가 그것을 나누어 쓰는 사람들에게 고루 소중하다는 것에 유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던 바람은 우리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두어갑니다. 이 바람은 우리 자식들에게도 생명의 정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다른 땅과는 달리 여겨 신성한 땅으로 여겨주십시오. 풀밭의 향기로 달콤해진 바람을 쏘이고 싶은 사람이나 찾아가는 신성한 땅으로 여겨주십시오.
그대들의 자식들에게, 우리가 우리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을 가르쳐주시겠어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땅은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땅을 낳은 것은 이 땅의 모든 자식을 낳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이 우리가 핏줄에 얽혀 있듯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생명의 피륙을 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 피륙의 한 올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그 피륙에 하는 것은 곧 저에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이 그대들의 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은 신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상하게 하는 것은 창조자를 능멸하는 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대들의 운명이 우리들에게는 수수께끼입니다. 들소가 모두 살육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야생마라는 야생마가 모두 길들여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은밀한 숲의 구석이 수많은 사람의 냄새에 절여지고, 언덕의 경치가 말하는 줄(wires)로 뒤엉킨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수풀은 어디에 있나요? 사라지고 말았나요? 그러면 독수리는 어디에 살지요? 사라졌나요? 저 발빠른 말과 사냥감에게 이제는 그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누리는 삶의 끝은 살아남는 삶의 시작이랍니다.
마지막 붉은 인간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 추억이 초원을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 신세가 될 때도 이 해변과 이 숲이 여기 이렇게 있을까요? 거기에 우리 백성의 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게 될까요?
우리는 이 땅을, 갓난 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사랑하듯 사랑합니다. 그러니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보살폈듯이 보살펴주시오. 그대들의 것이 될 때 이 땅이 간직하고 있던 추억을 그대들 마음 속에 간직해주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을 잘 간직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 <신화의 꿈>(조셉 캠벨 지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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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의 아릅다고 평화로운 도시 시애틀(seattle)은 자연과 자유로운 삶을 사랑했던 인디언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특히 그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시애틀 추장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애틀도 1854년에는 자신들의 구역에서 인디언을 쫓아내는 법을 발의시켰다고 하네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네요...
갈수록 황폐해지고 각박해 지는 요즈음, 시애틀 추장의 말이 더 깊이 진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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