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돈과 가난 그리고 풍요로운 삶에 대해
우리는 여러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개인적, 사회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롯이 인문학만 열심히 공부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쉽게 답하기 어렵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돈이 가장 우선시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시대에 발을 딛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자, 아래의 시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중 일부 --
신경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가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돌아서야만 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까지 버려야만 한다고요. 가슴이 아프지요? 이 두 젊은이는 가난만 아니라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도 올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도 할 수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는 겁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가난 때문에 사랑도 힘들고, 행복해지기도 어려운 일들이 사회적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삼포, 오포, 칠포, 더 나아가 구포 그리고 N포 세대란 용어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어렵고 힘든 경제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의 개수에 따라 삼포, 오포, 칠포라 이름 붙여진 건데요, 삼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만 하는 세대를 의미하고, 오포 세대는 이 세 가지에 더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말이죠. 칠포는 꿈과 희망, 그리고 구포는 건강과 외모까지 잃어버린 그야말로 절망의 세대를 의미하고요. 여기에 더해 N포 세대는 그야말로 끝판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숫자가 N에 해당될 만큼, 즉 개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해야 하는 세대를 일컫어 N포 세대라 부르는데, 참으로 암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적 문제가 항상 발목을 잡는 상태에서 단순히 인문학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돈벌이에만 올인할 수도 없고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방법을 찾는다면 그래도 인문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인문적 통찰은 돈의 유무를 떠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든, 돈이 많은 부자든 인문적 소양과 통찰이 없다면, 삶 자체가 풍부해지고 풍성해지기 어렵기 때문이죠.
물론 돈이 많다면 가난한 사람보다 물질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재력을 통한 물질적 소유가 곧 행복을 준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부자 부모를 둔 자식들이 부모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상속받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하며 싸우는 일이 빈번한 것을 보면, 결코 재력이 곧 행복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년 전쯤 아내를 통해 다른 집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유산을 정리했는데, 약 2,000만 원 정도가 남더랍니다. 다섯 남매가 모여 이 돈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상의를 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서로 간에 한치의 양보도 허용되지 않았죠. 그렇게 이전투구가 일어나고 결국에는 장남이 가지는 것으로 결론은 났지만, 안타깝게도 다섯 남매의 우애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글쎄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사이좋게 1/N 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가 봅니다. 게다가 2,000만 원이 이 정도(작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인데 억대가 넘는 더 큰 금액이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싸움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하지만 단순히 이런 문제와 걱정 때문에 돈을 멀리해서도 안됩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자산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경제적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거나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자본주의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와 인문적 통찰, 이 둘 사이의 접점 혹은 균형을 찾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19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