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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17. 2020

짠내나는 삶도 시간이 지나면
진한 추억이 된다

박민규의 소설 모음집 <카스테라>를 읽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을 통해 처음 박민규란 작가를 접했었다. 과거 실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은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난 박민규란 작가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글은 한마디로 ‘자유’로웠다. 그의 영혼 또한 자유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한마디로 미.친. 작가였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두 번째 책을 접한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어디선가 그의 신작 광고를 보고, 그의 책을 구매했다. 그의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위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하지만 웬걸. 전혀 예상과 벗어난 이야기와 문체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뭘까. 그동안 그가 추구하던 자유로움이 바뀐걸까? 카운터 펀치였다. 아쉬움만 진하게 남았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세 번째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선택한 책 리스트에 그의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카스테라>. 읽다보니 장편이 아니라 단편, 중편 모음집이었다. 2003년에서 2005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제목과 같은 <카스테라>부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등 총 1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솔직히 다 재밌다고는 못하겠다. 그의 자유로움이 워낙 많이 묻어나기에, 심지어는 우주로 진출해 외계인까지 등장하기에 현실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싫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에 다리를 딛고, 그 현실의 진한 내음을 담아 풍자한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지나치면 비현실이 된다. 하지만 비현실이 현실을 담게 되면 그것은 풍자가 되고 해학이 된다. 그의 자유스러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10여편의 단편 중에 내가 꼽고 싶은 글은 단연 <갑을고시원 체류기>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난 가난의 찐내, 그 안 <갑을고시원>에서 주인공은 숨을 못 쉴 정도로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또한 적응하게 되면, 그리고 이 시간들을 잘 보내게 되면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된다. 살아볼 만했던 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눈물의 분투기 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우리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울다가 웃다가, 결국 동구녕(?) 주위가 울창해진다.



월 9만원. 식사 제공.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만원으로 얻을 수 있는 방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고시원 - 이름도 처음 들어본 <고시원>이란 곳이 유일하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고시원 섹터의 가장 위에, 고시원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갑을고시원>이 있었다. 그것은, 단 한푼의 보증금도 없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줄기 빛이었다.


월 9만원에 식사 제공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있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든 것은 그 다음을 읽은 후였다.


주인이 문을 여는 순간 - 우리는 정말이지 기겁을 했다. 그것은 방(房)이라고 하기보다는, 관(棺)이라고 불러야 할 사이즈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 아니 관을 본 친구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의자를 책상에 올려야만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방의 구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짜 문제는 고작 1센티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동거하다시피 해야하는 ‘김검사’의 예민함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만저도 불쾌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김검사로 인해 주인공은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고 만다.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가스를 배출할 때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 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힘껏 잡아 당겨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 방에서 벌어지는 소리와의 사투 한 장면을 소개한다. 대박이다.


그때 어떤 거대한 기운이 뱃속에서 폭발하는 느낌이었다움직이기만 해도 결코 온순한 열대어가 아닌한 마리의 백상어가 입을 벌린 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술자리의 과식을 탓하며 나는 조심스레 엉덩이를 잡아당겼다최대한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화가 난 백상어를 달래고 또 달래었다결국 튀어나온 것은 한 마리의 참치였다그나마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뭐랄까백상어가 작아져서 참치가 된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백상어가 여러 마리의 참치로 쪼개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여러 마리의 참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에게 갑을고시원은 관이자 밀실이었지만, 그는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다음처럼.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카스테라>,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헤드락> 등 이 책은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다소 헛갈리기도 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구라인가 하며. 하지만 별 상관은 없을 듯 하다. 현실이면 어떻게 비현실이면 어떤가. 이미 인생 자체가 뒤죽박죽인걸. 그런 의미에서 박민규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더 리얼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머릿 속, 마음 속 세상을 현실로 꺼내놓은. 그렇게 되길 바라는, 혹은 그렇게 생각했던 아주 아주 진짜 리얼한 그런.




*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indienow.kr/?p=2154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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