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나고 처음! 거제여행기
채웠겠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눈 호강을 위해 출발합니다. 아, 아이들에게 줄 톳김밥은 좀 챙겨 가야지요. 쌤김밥에 들러 김밥을 주문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는지, 장사는 잘 되는지 등. 김밥을 받아들고 오면서 아내가 한마디하네요. 장사를 하는 곳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아웅다웅 하는 모습이 아니라고요. 아마도 지방의 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럼에도 장사는 좀 되어야겠지만, 악착같이 더 벌려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벌고 여유를 즐기려는 그런 모습.
2019년말 제주도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창업한 카페나 식당의 경우는 늦어도 저녁 7시면 장사를 마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을 더 벌고자 한다면 당연히 가게 문을 더 오랫동안 열어두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저녁 장사는 과감히 포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결국 인생은 균형을 찾기 위한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혹은 집중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목적지는 ‘바람의 언덕’입니다. SNS를 찾아보니 이국적인 풍차와 함께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네요.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이렇게 보면 제주도만큼은 못하지만 거제도 참 크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것도 아니고 동쪽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건데도 이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니 말이죠.
11월말임에도 육지 남단이라 그런지 전혀 춥지 않습니다. 게다가 화창한 햇살까지 따사하게 내려비춰주니 여행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네요. 해변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창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굳이 목적지까지 안가고 이 근처에서 바다만 보고 있어도 좋을 듯 하네요.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의 영롱함처럼 반짝이는 바다의 모습이 너무나 이뻐 보입니다. 지금이 여름이라면 당연히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눈호강 만으로도 벅찰 정도네요.
아마 10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회사 일로 일주일 정도 괌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1월이었죠. 당시 한국에는 어마무시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고요. 하지만 괌은 1년 내내 25~30도 정도의 기온이 유지되는 더운 곳이었죠.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제가 한 일은 바다에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제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졌습니다. 한파가 몰아치는 1월에 이렇듯 해수욕을 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시원한 자유였습니다. 첫 경험이었고요. 그 짜릿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바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더 이상 눈으로만 감상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웠습니다. 흑진주 몽돌 해수욕장이네요. 일반적인 해수욕장에는 당연히 모래로 구성된 백사장이 펼쳐져 있을텐데,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몽돌’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찾아보니 몽돌은 경상도 사투리로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한 돌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만져보니 그야말로 동글이와 맨들이의 조합입니다. 얼마나 서로 부딪히고 굴러다녀야 이처럼 몽돌이 되는 걸까요? 바다를 바라보며 앉습니다. 바람이 불긴 하지만 쌀쌀한 정도는 아니네요. 파도소리와 함께 돌굴러 다니는 소리도 들립니다. 다소 시끄러운 듯 그러면서도 여운이 남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있네요.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은 순간의 합입니다. 순간이 아름다우면 삶 또한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멈춰진다해도 후회는 남지 않을 듯 합니다.
다시 출발해 해변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바람의 언덕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평일 오후 임에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네요. 아무래도 여행 오신 분들이겠죠? 저희들처럼 말이죠. 계단을 올라가기 전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정말 언덕 위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풍차가 떡하니 서 있습니다. 이곳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은 풍차가 생긴 이래로 지어진 거겠죠?
언덕 위에 서니 바다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한려해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풍차와 함께 어우러진 바다가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이야. 바람의 언덕이라 하지만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불진 않아 다행이었네요. 날씨도 그렇게 춥지 않았고요. 만약 조금 따스했더라면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참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돌아보고 나니 일몰까지 시간이 많지 않네요. 딱히 갈만한 곳은 없고 주변 해금강 근처에서 일몰을 보기로 합니다. 가다보니 전망대 같은 곳이 있네요. 이 곳에서 차를 세워놓고 한려해상의 일몰을 감상합니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노을이 바다 위를 덮고 있네요. 조금씩 어둠이 덮이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수 많은 날들 중의 하루지만, 그럼에도 거제에서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특별합니다. 매일이 이렇게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잔잔한 축제와도 같고 기대가득한 소풍처럼 다가온다면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 되겠지요. 그저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보고픈 그런 삶.
어느 덧 어둠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렸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네요. 먼 길을 온 김에 통영뿐 아니라 땅끝마을 해남까지 여기저기 들르며 마음껏 여행을 즐기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아쉬움이 남네요.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결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고 그때 못다한 여정을 이어갈 것입니다. 여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내 발이, 마음이 멈추지 않는 이상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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