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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13. 2022

6월의 첫 날, 남원 서도역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함이 가득했던 하루


‘예쁘다. 그냥 자체로 예쁘다.’


이제는 폐역으로 남은 서도역을 바라본 첫 느낌이었습니다.



1박 2일의 강연여행. 


남원교육문화회관의 초청 덕에 한 번도 와보지 못한 남원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오랜만의 아내와의 여행이라 더 즐겁습니다. 강의는 저녁에 진행되는 까닭에 오후 조금 일찍 도착해 먼저 유명한 남원추어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웁니다. 서울, 경기의 추어탕과 다른 점은 들깻가루도, 부추도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그래도 묘한 감칠맛이 돌기 때문에, 입에 착착 감기네요. 국물까지 모두 다 후루룩~ 배는 부르지만 조금 더 먹고 싶다는 욕심도 살짝.


저녁에 진행된 2시간의 강연을 마친 후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묵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원여행을 시작합니다. 첫 목적지는 미리 찜해둔 서도역입니다. 남원 시내로부터 10분 대 거리. 멀지 않아 좋습니다. 햇살은 화사하고 바람은 불지만 약간 더운 날씨를 덮어주는 고마운 존재네요. 주차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공간 뒤로 서도역이란 작은 목조 건물이 서 있습니다.



역사를 지나쳐 철길 쪽으로 나서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이쁘고 고즈넉한 공간이! 마치 영화 세트처럼 공간을 따로 꾸며놓은 듯싶네요. 그렇게 크진 않지만 디테일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 거의 20년 전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아침고요 수목원>에 갔을 때의 느낌 같았습니다. 완벽하게 조성되진 않았지만 정성과 애정이 한 땀 한 땀 녹아 있는 듯한 그런 공간.



당연히 사진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길게 이어진 오래된 철도. 예전 오래된 기차라도 한량 있었으면 더 운치가 있었을 수도. 하지만 이 풍광만으로도 지극히 만족스럽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서 멀리 뻗은 기찻길과 푸르른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을 듯합니다. 나무 그늘 벤치에 누워 짧은 낮잠이라도 청한다면 금상첨화일 수도 있겠네요.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게다가 이런 값진 풍광 속에서의 여유라니, 이건 큰 사치라고나 불러야 할 듯싶습니다.



기찻길을 따라 걷다 보니 


시원한 등나무 터널이 나옵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연보랏빛 등나무 꽃도 실컷 볼 수 있었겠네요.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입니다. 하늘과 햇살과 그늘, 그리고 살아있음. 터널을 지나자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노란 들꽃들이 만발입니다. 그 사이로 철길은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조성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네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 흔적은 사라지고 풍광만 남겠지요. 그게 순리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 그들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더하면 엄청난 역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비록 역으로써의 기능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과 향취를 맡기 위해 사람들은 이곳을 찾습니다. 새롭게 만들어 놓은 이정표가 특이하네요. 경성(서울)과 여수 사이. 그리고 그 중간에 이곳 서도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스터 썬샤인의 촬영지이자 최명희 씨의 장편소설 <혼불>의 배경지로도 유명한 이곳. 사람들의 진한 향기가 남아 있기에 더욱 묘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넉넉한 풍광과 시원한 바람을 맞습니다. 햇살은 다소 뜨겁지만, 살결을 어루만져주는 바람이 있기에 살살 졸음조차 찾아옵니다. 하루 종일 이곳에 앉아 푸르른 하늘과 햇살, 그리고 주변 풍광만 바라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의 묘미도 있겠지만, 이렇게 한 곳에 앉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행복에 흠뻑 취하는 여행도 있는 법이니까요.



인생의 수많은 날들 중 하루였지만, 참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함이 가득한 시간들이었네요. 이래서 삶은 살아봄직한, 더불어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https://cafe.naver.com/moneystreamhabit) -- 경알못 탈출 100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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