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탁구에 빠지다
탁구장을 갔을 때 처음 맞이하는 충격은 기존 회원들의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듯 느껴지는 기계와 같은 랠리(Rally) 광경입니다. 어쩜 저렇게 로봇 같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소망이 하나 생깁니다. 나도 저렇게 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하고 말이죠.
이 같은 랠리는 탁구를 시작하고 빠르면 6개월 내, 늦어도 1년 내에는 가능해집니다. 물론 본인이 노력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탁구에서 랠리가 가능한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정해진 코스(대각선)로만 공을 넘긴다는 암묵적 룰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회전이 거의 없는 너클성 혹은 약한 상회전 볼로 랠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약속된 방향과 회전으로 공을 넘기기 때문에 지속적이며 끊기지 않는 랠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랠리는 연습입니다. 탁구의 기본을 유지하기 위한 트레이닝인 거죠. 단식이든 복식이든 시합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 누구도 랠리처럼 쉽게 넘길 수 있는 볼을 주지 않습니다. 탁구는 주도권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먼저 공격을 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게 되면 승률이 높아지는 게임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절대 상대방에게 먼저 공격을 할 수 있는 볼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리턴을 하더라도 최대한 어려운 코스와 회전을 걸어 다시 내게 찬스가 오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바로 커트입니다. 공의 밑면을 깎아 쳐 하회전(역회전)이 걸리도록 만드는 것이 커트입니다. 탁구채는 나무와 러버(고무)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버가 있는 이유는 탁구공에 회전을 걸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테니스와 배드민턴 같은 경우는 러버 대신 상하좌우로 얽혀 있는 줄을 통해 공의 회전을 걸 수 있습니다). 즉 러버가 있기 때문에 공과의 마찰력을 이용해 하회전 뿐 아니라 상회전, 횡회전까지 자유자재로 걸 수 있는 것이 바로 탁구의 묘미라 할 수 있죠.
그림. 탁구 회전의 종류
시합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커트 기술을 사용합니다. 커트 볼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하회전이 걸린 관계로 랠리 때와 같은 타구 방식으로 공을 넘기려 하면 네트에 걸리게 됩니다. 회전이 없거나 약간의 상회전이 걸린 공을 타구 하게 되면 볼은 네트를 넘기기 쉬운 편이지만, 역회전 볼은 그렇지 않죠. 그 이유는 역회전이 걸릴 경우 공이 탁구대에 맞으며 가라앉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어 튀어 오르지 못하고 가라앉게 되는 겁니다.
커트 볼이 오게 될 경우 랠리만 치던 분들은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아무리 넘기려 해도 자꾸 네트에 걸리게 되니까요. 이때의 대처 방법이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맞커트를 놓는 겁니다. 하회전이 걸린 볼을 다시 밑부분을 때림으로써 하회전으로 돌려주는 방법이죠. 즉 커트에 커트로 대응하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대처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초보 분들의 시합을 보게 되면 계속 커트만 합니다. 커트는 수비 기술이기 때문에 결국 누가 먼저 실수하느냐의 게임이 되고 마는 거죠.
커트 볼을 넘기는 두 번째 방법은 공의 밑부분을 살짝 들어서 넘겨주는 겁니다. 즉 하회전이 걸린 상태를 그냥 살짝 들어서 상대방 코트로 돌려보내는 거죠. 의외로 이 방법은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맞커트를 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맞커트가 공의 밑동을 때려 하회전을 만들어야 함에 비해 이 방법은 그냥 ‘툭’하며 넘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마지막은 드라이브, 즉 상회전을 거는 방법입니다. 러버의 마찰력을 이용, 공의 윗부분을 때림으로써 상회전을 만들고, 이 경우 볼은 네트를 넘어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의 코트로 넘어가게 됩니다. 드라이브는 탁구의 꽃이라 부를 정도로 고급 기술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커트를 강하게 걸지라도, 나는 상회전을 통해 얼마든 네트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윙뿐 아니라 타점, 타이밍 잡기도 쉽지 않은 관계로 상당한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기술입니다.
랠리가 가능해지고 이후 커트 볼을 커트로 넘길 수 있는 실력까지 붙게 되면 어느 정도 게임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대로 공격은 못할지라도 최소 수비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그다음부터 실력은 쉽게 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죠.
이때부터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탁구뿐 아니라 모든 운동, 또 모든 기술을 익히는 데 있어서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땀이 요구됩니다.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과정은 마치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계단의 길이는 아래 그림처럼 무척이나 깁니다.
그림. 실력의 계단 오르기
우리는 항상 급합니다. 그래서 실력 또한 빨리 갖추기를 원하죠. 하지만 실력의 계단은 그림처럼 한번 오른다 할지라도 다음 계단을 오르기까지는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즉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실력이 느는 것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치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항상 실력은 그 상태에 머물게 되거나 오히려 퇴화되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게 되죠.
어쩔 수 없습니다. 실력의 향상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저 묵묵히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즉, 일정량 이상의 시간과 땀이 투입되면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됩니다. 아, 내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죠. 유레카의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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