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의 떨림, 짜릿함 그리고 행복
이제는 복식을 기다립니다. 복식 예선은 11시 30분부터라 시간 여유가 좀 있네요. 다른 분들이 준비해 오신 김밥과 커피를 먹는데,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관중석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배도 채우고 또 다른 분들의 치열한 경기도 덤(?)으로 관람할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금방 시간은 흘러 복식경기가 시작됩니다. 9부 복식은 출전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네요. 2명씩 총 13팀이 참가했는데 단식과 마찬가지로 3팀이 예선을 치러 그중 2팀이 본선에 진출하게 됩니다. 다만 남자복식, 여자복식, 혼성복식과 같이 성별 구분을 하지 않는 만큼 여성분들에게 약간의 메리트를 주게 되는데, 팀에 여성분이 포함되면 남성분들만 출전한 팀으로부터 핸디 1점을 받는 룰이 적용되네요. 다만 혼성복식팀과 여성복식팀이 겨루는 경우에는 핸디가 없고요. 전 여성 파트너와 함께 혼성복식으로 출전해 남성복식팀으로부터 핸디 1점을 받고 경기를 하게 됩니다.
드디어 첫 경기. 실력을 떠나 파트너가 있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됩니다. 긴장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떨리는 건 확실히 덜 하네요. 그러나 딱 한 가지, 파트너에 비해 제가 연장자(꼰대 마인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네요..)고, 또 실력이 약간은 더 나은 편이라 경기를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첫 경기 상대는 남성복식조였습니다. 핸디 1점을 얻고 시작했지만 구력에 밀렸네요. 될 듯 될 듯하다 결국 아쉽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한 세트를 따냈으니 출발치고는 아주 양호했죠.
아, 첫 경기를 할 때 한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2세트 마지막 한 점을 남기고 상대편에서 쉬운 공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한 세트를 가져올 수 있었는데, 이때 제 파트너가 갑자기 큰 소리로 “감사해요!”라고 외친 겁니다. 저를 포함한 상대팀 그리고 응원해 주시던 분들까지도 크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즐겁게 함께 웃어주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죠. 물론 결과도 중요한 대회긴 하지만 그래도 즐기려 나온 것이니 이렇듯 서로 받아주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이어지는 2번째 경기. 그래도 여기서만 이기면 예선 통과입니다. 이번에도 남성복식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상대팀 한분이 저희보다 훨씬 더 긴장을 한 듯 보였습니다. 쉬운 공에도 실수를 많이 하시네요. 덕분에 스코어는 조금씩 벌어집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찬스볼에 스매싱도 하고, 또 드라이브도 조금씩 걸어봅니다. 역시나 자신감이 붙으니 공도 잘 들어가네요. 순식 간에 2-0, 드디어 예선 통과입니다. 하이 파이브로 기쁨을 나눕니다. 저희를 응원해 주시던 탁구클럽 분들도 함께 기뻐해 주시네요.
아무래도 팀이 많지 않다 보니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기가 바로바로 진행되네요. 이번 경기는 16강전입니다. 여기서 이기면 8강이고, 한 번만 더 이기면 3위 입상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반드시 16강전부터 잡아야 합니다. 예선을 통과하고 이제는 긴장이 안되려나 했더니 웬걸, 더 떨리네요. 그래도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됩니다. 떨더라도 상대가 모르게 하라... 왠지 명언 같군요!
본선 첫 상대는 저희처럼 혼성복식조네요. 시작 전 연습을 하는데 두 분 모두 실력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저희 또한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습니다. 제대로 한번 붙어봐야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됩니다. 아쉽게도 상대보다 저희의 실수가 많습니다. 특히 제가 쉬운 커트와 찬스 볼을 몇 개 실수하자 점수차가 그대로 벌어지며 첫 세트를 너무 쉽게 상대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순간 스스로에게 화가 났습니다. ‘왜 이렇게 못하지?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긴장 풀고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펴지지 않네요. 어렵사리 마음을 다시 잡습니다. 그래, 즐기러 나온 거잖아. 얼굴 피고, 파이팅 하자. 다행스럽게도 본선은 5전 3선 승제라 조금 더 여유가 있긴 합니다.
심기일전! 몸이 좀 풀렸는지 실수를 조금 덜 합니다. 그러자 상대와 랠리가 이어지고, 점차 조금씩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또한 찬스 볼에 감행한 스매싱도 제대로 들어가 주네요. 웃차, 한 점, 또 한 점. 드디어 한 세트를 따냈습니다. 이제 1:1, 경기는 다시 처음부터입니다. 한번 분위기를 타자 거침없는 전진입니다. 상대방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어오네요. 내친김에 3세트도 가져옵니다. 2-1 역전! 이제 한 세트만 더 따내면 본선 첫 승리와 함께 8강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제발 한 세트만 더.
마지막은 아슬아슬 접전이 이어집니다. 엎치락뒤치락 결말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승리의 여신은 우리에게 미소 짓는 듯싶네요.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진 매치 포인트 기회. 한 점만 따면 8강입니다. 서브와 랠리, 순간 우리에게 절호의 찬스볼이 옵니다. 어, 그런데 파트너가 그 볼을 냅다 후려갈기네요. 순간적인 찰나의 정적이 흐릅니다. 꽂혔습니다, 꽂혔어요. 세트 스코어 3:1로 경기 끝. 진한 하이파이브에 이어 기분이 날아갈 듯합니다. 바로 승리의 기쁨, 쾌감입니다. 이 맛에 대회 출전하나 봅니다. 아직까지도 그 떨림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중독성이 강하네요. 응원해 주신 분들과 함께 이 기쁨을 다시 한번 나눕니다.(마치 우승한 것 같죠? ㅋㅋ)
이번에는 8강전입니다. 여기서만 이기면 입상입니다. 첫 출전에 입상이라,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죠. 상대는 회사 동호회 남성복식조네요. 딱 봐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뭐, 어디 저희 실력에 쉬운 경기가 있었나요? 또 한 번 열심히 붙어 봐야죠!
경기 시작. 하지만 금세 점수 차가 벌어집니다. 상대방의 실력이 만만치 않네요. 실수도 훨씬 덜한 편이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상대팀은 전날에도 8부 복식조로 경기에 출전했었다고 하네요. 첫 출전이니만큼 긴장감도 덜고 또 경기장 분위기도 익히기 위해서였겠죠. 그러다 보니 여전히 떨고 있는 저희 팀보다는 훨씬 더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나 한 명은 공격, 한 명은 수비로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데, 물 흐르듯 두 사람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이네요.
2세트 초반은 조금 호각세로 흘러갔지만 어느 순간 밀리며 스코어는 2-0.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지금 경기를 하고 있는 이 순간, 탁구대와 탁구채 그리고 체육관 마룻바닥을 힘차게 딛고 서 있는 다리와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파트너, 상대팀, 목소리 높여 응원해 주시는 분들까지 소중한 시간이자 경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추억입니다. 승패를 떠나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뇌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각인될 순간이니까요.
마침내 경기가 끝났습니다. 이로써 저의 첫 대회 출전 또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지만 행복했네요. 좌충우돌이었지만 너무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머리와 마음속에서는 온통 도파민 뿜뿜 충전 파티를 한 날이 되었네요. 수많은 탁구 동호인들과 함께 겨루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신났습니다. 첫 경험이 이토록 짜릿할 수가.
함께 출전한 다른 분들은 벌써 다음 대회가 언제인지 알아보고 있네요. 다시 한번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함일 겁니다.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른 노래 제목(‘삶에 감사해 [Gracias a la vida]’)처럼 삶에 감사한 하루였네요. 조용히 혼잣말로 읊어 봅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강탁탁구클럽 네이버 밴드 - 영상 촬영 : 최지혜님)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강의, 칼럼 기고 및 재무컨설팅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https://cafe.naver.com/moneystreamhabit) -- 경알못 탈출 100일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