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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Mar 23. 2019

도서관으로 출근하기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도서관은 어릴 때부터 내 로망의 장소다.

아침 바다, 조용한 카페, 완벽하게 정돈된 호텔방, 산속 오두막집 등 손에 꼽는 환상의 공간 리스트가 많지만 도서관은 그중 으뜸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책 읽기였다. 그리고 가당찮은 희망사항이지만 관심 있는 서가의 책들을 순서대로 모두 읽는 것이었다. 평소에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메모해놓고 책을 빌려보는 편이지만, 무작위로 책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편식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도서관 하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레터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공공도서관이 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스타일의 도서관이다. 최근 몇 년간 내부는 많이 정비했지만 딱 어릴 때 가던 도서관이다. 지하에 백반 파는 식당, 자판기, 도서관 창틀, 천장 선풍기.. 그래서 더 정이 든다.


도서관을 많이 다녀보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즘 공공도서관의 시스템은 매우 편리하다. 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책을 미리 검색해서 대출하고 대출 중이면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한 책이 도서관에 도착하면 핸드폰으로 알림을 보낸다. 자유열람실의 좌석도 앱으로 확인해 예약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앱으로 대출이력을 살펴보니 퇴사 직후 주로 중년, 인생의 재발견, 돈 굴리기 같은 책을 많이 봤나 보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이력을 보니 그다지 책을 많이 잃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엄청나게 독서할 것 같지만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요즘은 너무 가벼운 책보다는 일부러 딱딱하고 어려운 책에 도전하려고 한다. 어려운 책을 천천히 읽으려는 노력이 뇌를 더 발전시킨다는 글을 봐서다.


50대의 최대 난제, 노안이 아직 심하진 않다. 책을 더 잘 읽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멀리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핸드폰을 가까이 본 이후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도서관은 오전 9시에 문을 여는데 그때 맞춰 가면 학습열이 불타 오르는 듯하다. 고등학교 때 일찍 등교했던 기억도 되살아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 오른다.


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면 유독 잘 읽힌다. 모두 책을 읽는 분위기에 조용해서 책의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박히는 기분이다.


자유열람실에는 중장년, 노년들도 많다. 자격증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철학 인문학 책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나는 취미의 독서고 사실 2시간 이상 앉아 있기 힘들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행복하다.  서울시민으로서 이런 훌륭한 공간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에 감사했다.


처음 퇴사한 직후 요즘 유행하는 공유 오피스 몇 곳을 가봤다. 근사한 인테리어에 네트워킹을 하기 좋은 공간이긴 하지만 당장의 내겐 1인 공간이 더 필요했다. 1인실은 라운지를 이용하는 비용보다 비싸서 고민하던 중,  도서관에서 집중력이 배양되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집중할 때는 도서관, 조금 느긋하게 뭔가를 할 때는 카페를 이용한다.


집 앞 도서관 A에서 벗어나 조금 더 먼 도서관도 가보았다. B도서관은 환상적인 자연환경 속에 있어 창밖을 보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 이게 내가 꿈꾼 그 풍경이구나'. 그 도서관에선 한 시간만 있다 와도 도를 닦고 온 것 같다.

이게 도서관이라니

C도서관도 산 올라가는 길에 있어 산책 갔다 내려오는 길에 자주 들른다. 이곳은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좋다. 특히 20대에 숨진 딸을 기리며 만든 도서관이라 입구부터 숙연하기도 하고 애틋하다. 부모의 뜻과 마음이 전달된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조금 멀리 나가보았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복합도서관으로 아래층은 각종 카페가 들어와 있고 열람실도 소파가 여기저기 놓여있는 곳이다. 사람들도 매우 많고, 전시공간 등이 많아서 새로운 느낌이었다. 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도서관을 다녀보면서, 도서관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소규모 도서관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래도 장서량이 많은 대형 도서관이 필요하다. 점점 더 책을 멀리하는 시대지만 책을 읽고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도서관은 건재해야 하지 않을까.


또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지어지면 좋겠다. 구청인지 도서관인지 모를 사각형 건물에서 벗어나 충분히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호주 해변가 도서관을 잊을 수가 없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통 유리창을 가진 도서관이었다. 1인 소파에서 쉬는 사람도 있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그 아름다운 풍광에 책 내용이 들어오겠냐 싶을 정도였다.


도서관의 시간, 도서관 탐방.  

설레는 순간들을 더 빛내줄, 다양한 도서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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