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여름 장마처럼 쏟아지는 일요일 아침, 빗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이런 날은 눈이 떠져도 쉽게 침대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초저녁인지 아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둑한 하늘은, 조금만 더 이불속에 머물라고 나를 붙잡는다. 결국 ‘좀 더 잘까, 일어날까’ 하는 커다란 고민 끝에야 겨우 이불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다.
가을비는 올 때마다 겨울로 향하는 직행열차에 올라탄 듯 기온을 성급히 끌어내린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바람은 아직 초가을인데도 금방 겨울이 다가올것만 같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는, 짧아진 계절이 야속해 하루라도 더 이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만끽하고 싶어진다.
날씨 탓에 꾸물거리다 보니 교회에 지각할 뻔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후, 늦은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비 오는 날은 역시 부침개가 제격이다. 부침개 부치는 소리는 빗소리와 묘하게 닮아 있어, 비 오는 날이면 자연스레 부침개 부치는 소리가 연상되곤 한다. 더욱이 빗속 공기는 수분이 가득해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어 부침개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냉장고를 열고 빠르게 재료를 훑어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전에는 쪽파가 없고, 부추전에는 부추가 없고, 김치전에는 잘 익은 김치가 없고, 감자전에는 감자가 없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없기도 쉽지 않은데, 요즘은 아이들이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날들이 많아져 장을 미루고 필요한 것만 사다 보니 이런 날이 생긴다.
그렇다고 빗속을 뚫고 귀찮음을 무릅쓰고 장을 보러 나갈 의지는 없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나도 아니다. 이래 봬도 22년 차 주부 9단 아닌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내린 결론은 ‘오코노미야끼’였다. 일본식 부침개인 오코노미야끼는 고기, 채소, 해물 등을 밀가루 반죽에 버무려 철판에 구운 뒤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다. 물론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구비되면 좋지만, 고기, 해물이 없어도 베이컨이나 참치캔등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온도를 올린다. 준비한 재료를 섞어 반죽을 올리면 ‘치이익~’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곧이어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방문을 꼭 닫고 있던 식구들은 따로 부르지 않아도 냄새와 소리에 이끌려 자동으로 식탁에 모인다.
자작한 기름에 반죽을 올려 튀기듯 익혀낸 오코노미야끼는 그야말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빠속촉’의 정석이다. 맛으로 먹고, 냄새로 먹고, 눈으로 먹는 이 음식은 입 안의 즐거움뿐 아니라 후각과 시각까지 자극한다. 거기에 청각이 화룡정점을 찍어준다.역시나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지고, 고소한 향기는 공기 중에 머물며 식욕을 돋운다. 눈앞에 펼쳐진 비주얼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뜨거운 부침개 위에 가쓰오부시를 솔솔 뿌려주곤 했다. 얇게 말린 가쓰오부시가 열기에 닿아 살아있는 듯 춤을 추면 아이들은 “엄마가 마술을 부린다”며 환호하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음식 하나에 스며든 추억은 먹을 때마다 되살아나고, 피식 웃음을 짓게 한다. 앞으로도 오코노미야끼를 만들고 먹을 때마다 그 추억은 방울방울 매달려 나를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철판요리 전문점에서 종종 불쇼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순간적으로 잡내를 없애고 불맛을 입히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그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으로 먼저 맛을 즐기게 한다. 먹는 행위가 단순히 입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오코노미야끼의 소리와 향이 한데 어우러졌다. 덕분에 짧은 가을의 하루가 더욱 풍성하게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