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김밥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김밥을 예쁘게 말지 못한다. 요리에 나름 자신 있는 나로서는 이게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아무리 해도 김밥이 단단하고 옹골지게 말아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작년에 우리 동네에서 웰빙 김밥집을 오픈한 친구에게 부탁해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목적은 단 하나, 김밥을 잘 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계산대만 지켰던 탓인지,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론 여전히 내 김밥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김밥을 말아주면 자꾸만 옆구리가 터진다고 배꼽 빠지게 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김밥은 원래 옆구리 터지는 맛으로 먹는 거야!”라며 주입식 조기 교육을 했던 나였다. 하지만 ‘보란 듯이 예쁘게 말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가족 모두 김밥을 좋아하다 보니 김밥은 여전히 우리 집 단골 메뉴다. 먹는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좋겠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마음처럼 예쁘게 말아지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김밥에 자신이 없다 보니, 아이들 어린이집 첫 소풍부터 늘 친정엄마가 출동해서 김밥을 싸주셨다. 엄마의 김밥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절묘한 단짠의 조화로 ‘장인의 손맛’이 난다. 친정엄마표 김밥은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사 먹는 김밥을 안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우리 엄마의 김밥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 회사에는 이미 엄마의 음식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아빠의 부탁으로 약간의 수고비를 받고 회사 야유회 도시락을 엄마가 맡게 됐는데, 친한 이웃 아줌마들과 함께 전날 밤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새벽부터 김밥을 말았다. 그 덕에 우리 삼 형제는 남은 김밥 꽁다리를 양푼에 가득 담아 이틀 내내 숟가락으로 퍼먹던 기억이 있다. 그땐 “다신 김밥 안 먹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엄마의 손맛이 우리 가족 김밥 사랑의 시작이었다.
친정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소풍을 갈때마다 부천에서 용인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김밥을 싸주셨다. “너희들 졸업때까지 소풍김밥은 할머니가 책임 져줄께.”라고 약속하였던 엄마는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요즘은 아쉽게도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가진 않지만 아직도 할머니표 김밥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번 추석에도 메뉴를 고민하며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 외할머니의 물음에 송편이나 갈비가 아닌 김밥을 요청할 정도로 김밥사랑이 대단하다.
남편에게도 김밥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릴 적 심하게 급체해서 입까지 돌아가는 바람에 응급실로 실려가 입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며칠을 굶다가 겨우 회복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이 바로 김밥이었단다. 급체해서 죽다 살아난 사람이 젤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이 김밥이라면 김밥사랑에 대한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가족에게 김밥은 그만큼 특별하고 애정 가득한 음식이다. 나는 여전히 김밥을 예쁘게 말진 못하지만, 그래도 가족은 나의 김밥을 좋아해 준다. 옆구리가 터지고 모양이 들쭉날쭉해도 ‘맛은 좋다’며 엄지를 치켜 세워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그런데 모양이 좀 미워서 그렇지 나의 김밥은 내가 먹어도 맛이 좋다.
사실 알고 보면 별거는 아니지만 진짜 크게 맛을 좌우하는 나만의 김밥 비법이 있기는 하다. 비법은 단 하나, '간'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여도 ‘간’이 맞으면 맛이 산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김밥의 간은 정말 중요하다.
예전 살던 동네에 김밥으로 유명한 반찬 가게가 있었다. 주말이면 김밥을 사려는 줄이 엄청 길어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막상 김밥에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있지도 않았다. 가까이 에버랜드가 있어 주말 아침이면 김밥을 사 가지고 에버랜드를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근에는 유명한 김밥 체인점이 자주 오픈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망하고 없어졌다. 하지만 김밥 맛집 반찬가게만큼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름 김밥을 연구한 결과 그 김밥 맛의 비법 또한 밥의 간이었다. 재료는 평범했지만 밥의 간이 절묘했다.
막 지은 밥의 김을 살짝 식힌 뒤 참기름, 깨소금, 맛소금으로 밑간을 하면 그 밥은 그냥 김에만 싸 먹어도 맛이 있다. ‘음식은 간이다’라는 나의 철학과 꼭 닮은 지점이었다. 역시 음식도 기본이 충실하고 탄탄해야만 응용이 가능한 것이다.
모양이 세모이든 네모이든, 동그라미든 간이 딱 맞는 김밥은 다 맛있다.
잘 싸든 못 싸든,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김밥을 싸는 내 마음은 언제나 스마일이다.
김밥을 수저로 퍼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우리 가족이 웃으며 먹어줄 나의 못난이 김밥을 계속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