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가 지난 10월 16일, 심장, 폐, 간, 신장(양측)을 기증하여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35세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우울증(기분부전장애) 진단 및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
나는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나로서는 ‘우울’이라는 단어만 봐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백세희 작가의 유작이 되어 버린 저 책을 영원히 못 읽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떡볶이는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달콤하고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의 떡볶이의 매력은 쉽사리 부인하기도 거부하기도 힘들다. 이 세상을 단 하루라도 더 살게 발목을 잡는 게 있다면, 그게 떡볶이든, 김밥이든, 순대든 어떤 것이든 좋다. 너무 젊고 예쁜 나이 서른다섯. 안타깝고 아프다.
30년 전 부천역에 유일한 대성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굿바이 마이 프랜드’가 떠올랐다. 여고 시절 3년 내내 같은 반 단짝 친구와 별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바로 나올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눈물과 콧물 범벅 되어 남은 휴지 한 조각을 반으로 갈라 나눠 닦으며 울고 웃었다.
외톨이 에릭과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가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이다. 에릭은 다양하고 특이한 방법으로 덱스터를 위한 에이즈 치료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두 친구는 에이즈 치료법 찾으러 무작정 떠난다. 하지만 여정 도중 덱스터의 건강이 악화되어 되돌아오게 되고, 덱스터는 결국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덱스터가 떠난 후 에릭과 덱스터 엄마의 포옹하는 장면을 꼽는다. 아픈 덱스터를 꼬여내 무리해서 여행을 갔던 에릭을 원망하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었던 엄마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덱스터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에릭의 관에 넣어주고 맨발로 먼저 나오는 장면이었다.
“난 정말 무서워 거기에 홀로 남겨진 채 영원히 못 돌아올 거 같아."
여행 도중 덱스터가 한 말에 에릭은 자신의 운동화를 안겨주었었다.
"자는 동안 이걸 꼭 잡고 있어. 만약 네가 잠에서 깼는데 무섭거든 이렇게 생각해 봐
잠깐, 난 에릭의 신발을 잡고 있어.
대체 내가 왜 냄새 지독한 농구화를 들고 있는 거지?
1조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야.
난 지구에 있는 게 틀림없어 에릭은 바로 내 옆에 있을 거야."
친구가 외롭지 않게, 혹여라도 무섭지 않게 또는 지독한 에릭의 발냄새를 맡고서라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봐? 그 무엇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에릭이 있는 이곳에 덱스터를 데려 올 수만 있다면···.
생각해 보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뭐 대단한 건 아닌 것 같다. 거창한 성공, 부, 명예가 아닌 대단한 이벤트가 아닌 그냥 소소한 즐거움이 매일매일 새끼줄처럼 이어져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떡볶이 한 그릇이, 때로는 냄새나는 운동화 한 켤래가 ‘살아간다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남편은 먹는 것에 늘 진심이다. 그가 좋아하는 두 가지 음식 중 하나는 김밥이고, 나머지 하나는 떡볶이이다. 업무에 지쳐 퇴근 후 집에 오면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려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내가 “여보 사거리에 새로 생긴 떡볶이집이 있는데 엄청 맛있다고 소문났더라.”하고 정보를 투척하면 “빨리 앞장 서지 않고 뭐 해?”라고 하며 번개처럼 떡볶이를 사러 출동한다. 나는 말한다. ‘떡볶이가 귀차니즘을 이기는구나.’ 집에선 좀처럼 꼼짝하지 않는 남편을 자발적,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떡볶이에게 왠지 의문의 패를 당한 기분이다.
예전엔 남편을 위해 떡볶이를 자주 만들었다. 한 번은 옆집 동생이 떡볶이를 만들었다고 나눠주어 맛있게 먹었다. 소스가 독특해 그녀만의 비법을 물어보니 육수에 가쓰오부시를 넣었다고 했다. 얼마 후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남편이 나에게 요청했다. 가시오가피 넣은 떡볶이를 해달라고···. 가쓰오부시를 가시오가피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한 남편 덕분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집에서 떡볶이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밀키트가 잘되어있어 굳이 육수를 내고 소스를 배합해서 떡볶이를 만들지 않는다. 이미 자극적인 떡볶이의 맛에 길들여져서 집에서 내가 하는 슴슴한 떡볶이가 맛있게 느껴질 리 가 없다. 사실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자극적이고 맛있다.
브랜드도 맛도 종류도 다양하게 변주된 떡볶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날은 칼같이 매콤한 떡볶이가 끌린다.
일을 많이 해서 기력이 딸리는 오후엔 길쭉한 가래떡으로 만든 달달한 떡볶이가 당을 채워준다.
피곤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밤엔, 국물 자작한 떡볶이에 어묵 한 장이 위로가 된다.
비 오는 날엔 창밖 빗소리를 반찬 삼아 즉석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찍어 먹는다.
속이 허전한 날엔 치즈를 듬뿍 얹은 치즈떡볶이가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추운 겨울 저녁, 입김이 허옇게 피어오를 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와 마늘이 많이 들어간 떡볶이 한입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먹는 떡볶이는 맵지도 달지도 않은 그저 ‘행복한 맛’이 난다.
백세희 작가가 남긴 말처럼,
우리는 때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삶은 그렇게, 아픔과 기쁨이 한 그릇 안에서 뒤섞인 채 이어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웃고, 먹고, 사랑하고, 기억한다. 오늘도 떡볶이 한입의 온기로, 이 복잡한 세상을 잠시나마 살아낼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