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른들이 30대는 30킬로, 40대는 40킬로, 50대는 50킬로의 속도로 시간이 간다고 했는데 정말 10000프로 공감하는 말이다. 매 순간은 별거 없이 보내는 듯 어쩔 땐 무료하기도 한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버리는지 모르겠다. 깜박 눈감았다 뜨면 벌써 일주일이 후딱 가벼렸고 주일 교회에서 한 주간을 눈물로 회개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찌나 지은 죄가 많은지... 이 또한 시간이 모자라다. 올해 들어 새로 시작한 일들이 소소히 있어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름의 스케줄이 있다. 나에게 목요일은 쉬어가는 버퍼데이였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좋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배우고 있는 것들의 숙제나 연습 등등 정해진 것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쓰는 쉬어가는 데이. 내가 좋아하는 서울 익선동이나 인사동에서의 친구들 약속도 언제나 목요일이었다. 그런데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나에게 남은 금쪽같은 딱 하루 목요일을 글쓰기 스케줄로 할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늦잠은 포기할 수 없어 쫓기듯 종종 거림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오전의 끝자락 시간 11시 30분 이건 그래도 오전시간을 뭔가 시작하여 쓰자 하는 나만의 루틴이다. 여하튼 이 시간 나는 글을 쓰러 간다. 덕분에 집안일이나 숙제 악기 연습등의 것들이 또 한편으로 미루어졌지만 어느덧 글쓰기도 나에게 금쪽같은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씩 조용한 카페에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스케줄 정리도 한다. 20대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시간이 20킬로로 가지는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마주한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산떠미 같은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미뤄둔 일 이 누적되어 일은 두세 배가 되어있는 듯 느껴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오니 에너지가 충전되어 충분히 할 수 있다. 손발에 모터를 단 듯 속도를 내어 종종거리며 또 집안일을 해치운다.
흔히들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예전부터 가을을 탄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여름 피크 휴가철이 막 끝이 나면 아마도 8월 15일 즈음부터는 가슴에 큰 구멍이 뻥 뚫린 듯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20대에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는데 한강다리를 건너다 창밖을 바라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하는 청승을 떨기도 했다. 누가 보면 대차게 시련당한 사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키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가을을 타는지 가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갱년기 때문인지 호르몬의 장난인지 다시 멜랑꼴리 한 게 한동안 못 느껴본 당황스러운 감정이다. 감정이 이렇다 보니 뭘 해도 효율이 떨어지고 다시 시작한 것들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특히나 글은 단 한 줄도 써지지 않은지 벌써 몇 주째다. 아이들 입시 막바지라 초조함도 있고, 머릿속도 복잡한 게 한몫 더 했으리라.
안 써질 바에는 책이나 실컷 읽어보자 싶었다. 새로운 책보다는 예전에 읽었거나 책꽂이에 꽂혀있는 손에 잡히는 책 마구잡이로 읽어보았다. 내가 이 책을 읽었었나 싶게 하나같이 새롭다. 이번에는 책에 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내 생각도 한편에 적어보며 읽는 중이다. 새로운 읽는 즐거움이다. 이렇게 읽으면 나중에 다시 볼 땐 기억이 날까? 도 궁금하다.
기운이 떨어져 머릿속이 텅 비고 도무지 참신한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아 제자리걸음일 때,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늪에서 벗어나는지 궁금하다. 오래전 친한 운동선수들과 슬럼프를 극복하는 각자의 방법을 나눈 적이 있다.
한 친구는 쉬는 날에는 혼자 나와 안 되는 부분을 죽어라고 연습하면서 이겨낸다고 하고, 한 친구는 거리를 두고 슬렁슬렁 무심하게 딴짓을 하고 나면 극복이 된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두 가지를 다한다.
- 양희은 에세이의 <<그럴 수 있어>>중에서 -
가볍게 읽고 있지만 읽고 나면 무겁게 생각하게 하는 가수 양희은 님의 에세이는 읽으면서 꼭 음성지원이 되는 듯 한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한다. (사실 가끔은 혼자 성대모사를 하며 낭독도 해본다.) 그녀의 명함과도 같은 개성 있는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책을 보다가 꼭 나와 같은 상황이 있어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내 경우는 거리를 두고 슬렁슬렁 쪽이 더 가깝다. 완벽하지도 못하면서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나는 뭐든 제대로 되지 않으면 뭉개버리고 마는 습성이 있었다. 차라리 살짝 거리를 두는 편이 그래도 어떻게든 끝을 보게 한다. 고치고 싶은 내 모습인데 지금은 나의 이런 면모를 알기에 다루는 노하우가 생겼다. 하지만 나의 이런 점을 닮아 있는 딸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 딸도 자기만에 노하우가 생기겠지? 부디 많이 힘들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하다 보니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선뜻 다시 글을 쓸 수가 없다. 억지로 쓰면서 아쉬우면 구구절절 말만 많아지고 알맹이가 사라진다. 와중에 무릎을 탁 치게 잘 쓰인 글들을 보면 내가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시작은 끝이 있고
끝은 시작이 있지
아침엔 새들이 시작을 알리고
밤에는 별들이 끝을 알리지
우주는 무한하니까
생명은 영원하니까
결국 끝과 시작은 영원한 것
- 민시우 동시집 약속의 <<끝의 시작>>이라는 시 -
1년쯤 전에 유재석이 진행하는 'tvN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4학년 민시우시인이 아빠랑 출연해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아이는 병으로 먼저 하늘로 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추억을 영화감독인 아빠와 제주살이를 하며 11살답지 않게 담백하면서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하나님이 민시우시인에게 아픔과 동시에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나 보다 싶어 참 귀하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시집을 주문해서 읽어보았다. 어쩜 저리 표현을 했을까 싶어 재능이 부럽기까지 했다. 특히나 끝과 시작이 맞닿아 영원하다는 시인의 글은 나로 하여금 다시 글을 써보게 했다. 시작을 했으니 닿아 있는 끝을 봐야겠기에 뻔뻔함을 장착하고 솔직함을 무기 삼아 다시 글을 써보련다.
'아무것도 아닌 네가 글을 쓴다고 비아냥거릴 량이면 너어두시지요!! 어차피 100세 시대에 심심할 때마다 알사탕처럼 꺼내먹을 요량으로 내가볼라고 쓰는 글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