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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능 전야 밥상과 수능도시락

계절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by 지언 방혜린

딸이 지난 목요일 수능시험을 치렀다.

재수를 결정하기까지 휘몰아치던 감정이 무색할 만큼, 올 한 해 딸은 딸의 시간에, 나는 나의 시간에 충실하며 비교적 고요한 날들을 보냈다.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어 나갔다가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들어오는 딸을 위해 내가 해준 일은, 아침에 간단히 먹을 것과 비타민을 챙겨주는 것, 그리고 기도뿐이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 가장 큰 신체적 자유를 만끽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편안해도 되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몸은 편했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편해진 몸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불안한 감정들이 엄습해 왔다. 결정이 담보되지 않는 행보에 대한 걱정이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무기력 속에서 정신까지 피폐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새벽 독서를 하며 인문학 공부도 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앙상블 팀에 합류해 연주회도 치렀다. 그렇게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능을 앞두고 딸아이에게 도시락 메뉴를 물었다.

“그냥, 작년처럼 뜨끈한 소고기 뭇국에 새우 볶음밥 싸줘.”

수능 전날은 예비 소집일이었다. 시험 볼 장소를 배정받고 수험표를 받아왔다. 딸은 지난 3월부터 다닌 학원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딸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싱싱한 무와 소고기, 파를 골라 담았다. 저녁에 구워줄 마블 좋은 한우와 벌집 삼겹살도 조금 샀다. 할 수만 있다면 고생했다고, 떨지 말라고, 엄마 마음으로 지은 밥 먹고 힘내라고 육해공 산해진미를 다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녁 여섯 시쯤, 딸이 귀가했다. 올 들어 기억하기로는 거의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저녁 먹는 시간에 맞춰 저녁상을 차려줬다. 소고기도 굽고 돼지고기도 구웠다. 외갓집에서 보내온, 막 담근 김치도 한 포기 꺼내어 윗 둥만 잘라 길게 찢어 내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문어가 생각났다. 어머님 지인이 낚시로 직접 잡은 문어라며, 손녀딸 힘내라고 꼭 먹이라고 하셨다. 굵은소금으로 문어를 바득바득 씻어 소주를 부은 물에 넣고 8분간 쪄내었다.

다른것들은 문어먹느라 정신줄 놓아 사진도 없음.

식구들이 좋아해서 문어숙회는 종종 해 먹지만, 낚시로 직접 잡은 문어를 먹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기분을 좋게 했다. 씹을수록 감칠맛과 함께 단맛,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졌다.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고, 특히나 딸이 오랜만에 집에서 편히 먹는 저녁을 맛있다며 먹어주니, 마지막 소임을 다한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저녁을 다 먹고 본격적으로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 국과 찌개는 무조건 큰 솥에 뭉근하게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난다. 그래서 맛있게 먹으려면 하루 전날 미리 끓여 놓아야 더 진국을 맛볼 수 있다. 새벽에 기름을 걷어내고 한소끔 더 끓어 보온 도시락에 담아 줄 생각이었다. 국이 끓는 동안 왠지 자리를 뜨기 싫었다. 아니,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어느 순간 끓이던 국이 뭉근하게 달여지는 느낌이 온다. 이 계절의 무는 원래 맛있는데, 이렇게 달여지면 달큰하고 깊은 맛이 난다. 그 맛을 아는 딸이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고기 뭇국을 주문하였을 것이다.

드디어 수능 당일이 되었다. 서너 시간만 자고 새벽에 일어나 독서를 했다. 독서 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라, 이날도 딸아이를 위해 기도문을 적어 내려갔다. 나는 기록하는 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힘들었던 일들이 사라져 있거나, 크고 작은 꿈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좋다. 일상을 흔들어놓던 어려움들이 언제였나 싶게 해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기도 노트는 내게 일종의 꿈 노트이기도 하다.

마음을 담아 기도를 쓰다가, 딸아이가 혹여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는 순간 펜이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진심이 아니었다. 사실,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딸보다 내가 더 흔들리고 상처받고 낙심할 것 같다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를 쓰면 이렇게 내 민낯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 진심을 눈으로 직시할 수 있어서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또 돌이키기도 하고 기도의 방향과 중심을 다시 잡아볼 수 있어 좋다.

어제 준비해 둔 무 국과 따뜻한 보리차, 아이스 아메리카노, 새우볶음밥, 과일과 초콜릿 등 도시락을 챙기고 딸을 깨웠다. 서울 소재 예고를 다녔던 딸은 작년에는 학교 근처로 시험장이 배정되어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가야 했다. 올해는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배정되어 조금 더 재울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준비를 마치고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딸아이가 학교까지 함께 걸어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함께 걷는 가을 길이었다.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돌아오던 딸은 “언제 나무가 이렇게 알록달록해졌지?”라고 말했다. 딸이 보냈을 시간 속에는 계절의 변화가 담길 틈이 없었을 것이다. 짠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딸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아주고 시험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귀여운것들을 유독 좋아하는 딸의 가방을 바윗덩이같이 무거워 나는 들수가 없었다.

딸아이의 시간 속에서 계절의 변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밤새 끓여 우려낸 소고기 뭇국처럼, 긴 기다림 끝에 더 깊어지고 고아져 딸아이의 인생에 영양이 되는 진국 같은 경험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시간 들은 분명 딸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수험표를 손에 쥐고 시험장으로 향하던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삶의 어떤 계절은 화려한 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가지만, 되돌아보면 그 시기가 가장 뜨겁게 우리를 빚어놓았다고. 딸이 보지 못한 가을 풍경들은 어쩌면 그렇게 딸의 내면에서 다른 형태의 색으로 물들었을지 모른다. 언젠가 딸이 이 시간을 돌아보며, 그 무채색 같던 날들이 사실은 인생의 맛을 결정하는 국물 같은 시기였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나를 가장 깊게 만든 계절’이었노라고 기억하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재작년, 딸이 고2였던 봄에 온 가족이 일본 온천마을 유후인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노천탕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초록빛 단풍나무가 가득했다. 딸과 나는 가을에 오면 온통 붉은빛일 테니 얼마나 예쁠까 하며,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었다. 내년 가을에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딸과 함께 다시 유후인의 노천탕에 누울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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