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도 피해갔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특별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중세와 근세를 이어주는 르네상스 초기시대에 그려진 안드레 만테냐의 명화입니다. 이 주제는 작품에 담긴 내용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난 것에 근거한 에피소드 위주로 설명된 것 같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작품을 분석하며 화가가 담아놓은 메시지를 명화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분석하는 새로운 명화 소개 코너. <내 집은 미술관> 시작하겠습니다.
이 명화를 미술관에서 봤을 때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요?
첫째는 시대배경이 담겨있는 부분입니다. 이 화가는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중세적 묘사와 함께 르네상스 초기의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 등을 부활시킨 표현입니다.
둘째는 세바스챤이란 인물입니다. 너무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되다 보니, 마치 죽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민간에서는 역병을 막아주는 수호천사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그는 누구이고 중세와 근세 화가들은 이 인물을 어떻게 그림 속에서 활용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셋째는 기독교와 연관이 있기에 기독교 작품으로 해석해서 작품의 내용을 읽어내야 합니다. 이 글에는 미술사에서 해석되지 않은 새로운 도상을 찾아 설명 해놓았습니다.
이 그림은 오스트리아수도 비엔나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유럽국가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유럽국가가 오스트리아입니다.
꽤 오래전에 오스트리아 가장 왼쪽 땅인, 브레겐츠에서 약 7개월을 지냈습니다. 브레겐츠에는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덴호 호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배 타고 몇 분만 가면 독일로 스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날씨가 화창한 날, 배를 타고 독일 쪽에 있는 린다우 항구로 갔습니다. 린다우 항구는 2개의 등대와 바이에른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전형적인 중세풍의 작은 항구입니다.
얼떨결에 가본 곳이지만 중세풍의 호수와 가옥과 산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풍광이 뛰어난 관광지입니다.
이곳을 떠올리며 소개해 드리는 것은 이 항구가 지닌 문화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놀란 것은 배가 항구에 들어서자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모두 정장을 한 소규모 음악 단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있었고, 신청곡을 받는 칠판 같은 곳에 음악을 신청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 어떤 음악회 보다 아름다웠던 야회 음악회였습니다. 항구에서 행해지는 음악회가 너무 신기했고 음악이라는 문화가 항구라는 생활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싶어 지네요. 그때, 미술관도 방문해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브레겐츠 생활은 유럽의 문화를 처음 대했던 곳이고,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잠시 회상을 해봤습니다. 그럼,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브런치에서 만테냐작품은 처음으로 다루는 것 같습니다. 짧게 화가부터 알아볼까요? 화가만테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승의 영향으로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1488 년부터 2년간 로마에 머물면서 로마 고고학과 특히 조각을 공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 골동품조각상과 부조와 돌들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는 실험성이 강한 초기르네상스 화가였습니다. 새로운 미술표현을 시도해 수평선을 낮추는 원근법을 착안한 작가입니다. 이 그림 속에 단축법이 묘사된 부분이 있습니다. 설명을 들으시면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속 인물부터 알아보고 시작할까요? 워낙 슈퍼맨 같은 선입감이 있어서 진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늘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고 있는 이 인물은, 세바스챤이며 초기 기독교인입니다.
그가 남부 프랑스 나르본 출신이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육받은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세바스챤은 283 년에 로마군에 입대했습니다. 군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프라이토리안 경호대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왕을 경호하며 복무하던 중에 옥에갇힌 죄수들의 부모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일이 발각되어, 황제에게 보고되었고 사형 집행을 당합니다. 이 때 황제는 훈련장에 말뚝을 세우고 그를 묶어 표적 연습용으로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 명 화에서 그가 나무에 묶여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입니다. 병사들은 여러 발의 화살이 그의 몸을 뚫고 들어갔기에 죽은 것으로 여겼고, 매장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이때 로마의 이레네라는 여인에 의해 그가 죽지 않은 것이 확인되어 비밀리에 옮겨졌고, 그녀의 간호를 받아 재활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에 세바스챤이 다시 황제를 찾아가 기독교인 박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때 곤봉에 맞아 죽었습니다. 자연사한 인물이 아니라 순교자입니다.
가톨릭에서는 후에 그의 시신을 다시 찾아, 로마근교에 기념성당을 세웠고 오늘날까지 현존합니다.
구도나 구성을 살펴볼까요? 특별한 구도는 눈에 띄지 않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발견됩니다. 인물이 지닌 S자형의 콘트라포스트자세입니다. 이런 포즈 역시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로마와 그리스문화의 재발견 흔적입니다. 오늘날에는 별로 놀날일이 아니죠? 그러나 이런 표현은 당시 예술계를 지배했던 르네상스의 세계관입니다.
인물의 주변을 볼까요? 좀 어지럽고 복잡하죠?
상단의 벽돌담과 기둥들은 깨지고 무너져 떨어져 나갔습니다. 왜 화가가 이렇게 묘사했을까요?
바닥에 부서진 채 버려져있는 것들은 모두 로마와 그리스시대의 유물들입니다. 버려져있는 것 같지만 수집해 놓은 구성입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지만 당시의 풍요로운 예술 세계를 부활 시키려는 화가의 마음입니다. 그가 로마에서 체류하며 공부했던 고전에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구성으로 꾸민 것입니다. 버려진 것들이 아니라 화가가 수집해 놓은 것들입니다.
관객인 여러분이 그림의 화살을 보는 것과, 당시 일반인들이 이화살을 보는 것과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림이 제작될 당시 전염병은 병균의 확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병을 쏘아 퍼트렸다고 믿었습니다. 이 해석을 근거로 한다면, 저 수많은 화살들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린 벌인 셈입니다. 그런데 세바스챤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죠? 하나님이 퍼트린 전염병도이겨낸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의료체계가 갖추어지지 않던 시절이기에 근거 없는 민간 신앙이 의약품을 대처했던 것이죠.
이런 상황을 참고해 당시 교회가 화가들에게 세바스챤의 그림을 많이 의뢰했고 이런 계기로 일반인들은 그를 수호 천사로까지 여긴 것입니다. 세바스챤에 관한 얘기에는 좀 더 깊은 사실이 있는데요. 자세한 얘기는 프랑스 꼴마(Colmar)에 있는 그리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설명할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세바스챤의 그림 중에 당시 시대상황을 가장 잘 담아 그린작품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명화 중의 명화인데요 제가 명화에 눈을 뜨고서 처음으로 제 발로 찾아가 원본을 확인한 작품이 이 그림이었습니다 지금은 각각 떨어져 있지만, 처음에는 세 개의 제단화가 하나로 묶여있던 휘귀한제단화였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작품을 정밀 분석해 놨고, 뒤에 있는 두 개 제단화도 정밀 분석한 후에 발표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 해석 역시 그 동안 여러분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상징들과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어 설명해 놓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상으로 그림을 찾아가는 여행 과정을 담아도 좋겠습니다. 그런 기회가 빨리 올 수 있도록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단하게 보이는 대리석과 화살이 관통한 말랑말랑한 몸입니다. 그런데 대리석은 무너져 내렸고, 연약한 육체는 서있습니다. 극명한 대조입니다. 화가는 이 두 물체의 서로 다른 재질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세바스챤이 육체의 고통을 넘어선 신앙인임을 알립니다.
화가는 이 사실을 입증하려는 듯, 왼쪽 상단의 구름 속에 백마를 탄 한인물을묘 사했습니다. 성경 계시록에 백마를 탄 사람의 구절이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사탄을 상징하는 것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구절속의 인물은 재림하실 하나님입니다. 세바스챤이 순교자가 맞음을 알립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시록 19:11)
이렇게 백마를 탄 모습을 그린 것은 화가가 계시록을 연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책을 넘기며 연구했을 중세시대 화가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그림 감상은 이렇게 시대를 뛰어 넘어 옛 사람과 교감하는 문화입니다.
인물 주변이 좀 복잡하죠? 상단의 벽과 기둥들은 허물어지고 일부분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발과 무릎옆을 보면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흉상과 조각난 대리석이 보입니다.
특별히 상단을 눈여겨보십시오. 유럽의 전형적인 고전 건축미가 느껴지죠?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그리스 여신 같고 중앙의 대리석은 그리스의 코린트식 주두 같아 보입니다. 좌우로 보이는 아치형은 전형적인 로마 건축양식입니다. 그리스 건축에 없는 것이 이 아치형 건축법입니다.
르네상스가 부활시킨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등장시킨 겁니다. 그림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집니다.
인물 옆구리 부분에 문자가 세로로 적혀있죠? 그리스어로, "안드레만테냐 작품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화가는 그만큼 르네상스가 추구한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활을 꿈꾸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새겼습니다. 화가의 자신감이자 당시 예술계 속에 잠재된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되죠? 느슨하게 풀려있는 포승줄입니다. 묶여있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돕니다. 사람을 묶은 것이 아니라 대리석을 묶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것은 인간의 그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인간의 정신, 지정의, 믿음 등이 대리석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공권력이 나 강제력 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보셔야 할 부분이 다양한 재질이 활용된 점입니다. 의외죠? 지금은 눈에 선하게 보이지 않겠지만, 설명을 통해 각각의 재질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사람의 몸입니다. 표현이야 조각 같아 보이지만 화살이 뚫고 들어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면 말랑말랑한 피부가 감지되고, 흘러내리는 피의 온도가 감지됩니다. 고통으로 얼룩져 땀이 베인 하체의 흰색천 재질도 잘 표현되었는데, 그 위에 피가 스며든 표현도 손끝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해부학에 근거한 표현들에 의해 몸속의 뼈들도 시선에 잡힙니다.
다음으로는 견고한 대리석 재질입니다 몸이 묶여있는 원형의 값비싼 대리석기둥과 이름이 새겨진 흰색의 대리석 재질입니다. 이 둘의 대리석재질이 다르게 느껴지죠?
다음으로는 투시도를 활용해 제작한 바닥의 대리석입니다. 르네상스의 과학적 측정기법이 화폭에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초기기독교시대의 공간표현과는 질적으로 다르죠?
발바닥 아래와 무릎 옆에 흩어져있는 두상과 조각들의 재질도 손끝에 잡히며, 특히 머리 위에 있는 불에 구운 붉은 벽돌의 까칠까칠한 표면은 실제처럼 느낌이 전해집니다. 여러 가지 돌의 재질까지 신경 쓰며 완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는데요. 실험성이 강한 화가가 맞는듯합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서 작품을 보니 각각의 재질들이 피부에 와닿죠? 무엇보다 이런 단단한 재질들 속에 피어있는 초록식물들까지 한몫을 합니다. 하늘에 피어있는 솜털 같은 구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재질이란 요소를 정말 다양하게 활용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무릎아랫부분에서 단축법의 흔적이 보이세요? 이화 가는 실험성 강한 초기르네상스 화가라고 소개해드렸죠?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보면 단축법이 보입니다 왼쪽 엄지발가락과 길이가 다릅니다. 단축법의 표현인데요 관객의 시선을 낮춘 그의 작품에서 몸전체를 단축법에 의해 그려진 작품도 있습니다.
이제 그림의 배경 되는 부분을 볼까요? 미술관에서는 관람 시간 때문에 대충 보셨을 것입니다. 화가의 이름이 적힌 왼쪽의 배경은 조금 가까운 곳이고, 반대편인 오른쪽은 먼 곳의 풍경입니다. 왼쪽부터 살펴볼까요?
눈에 띄는 것은 지금 등을 보이고 언덕길을 넘어가는 세 사람이 보이죠? 방금 세바스챤에게 화살을 쏜 병사들입니다. 그들의 손에 화살이 들려있습니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매장을 미룬 채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을 둥그런 산 위에 집들로 묘사했습니다. 넓은 들판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보다는 그리스 산 위에 지은 집이나 신전 같아 보입니다. 어쩌면 그리스 로마의 부활을 원했던 화가였기에, 그리스를 떠올리며 배경으로 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흰색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번엔 오른쪽배경을 볼까요? 왼쪽배경보다 훨씬 더 먼 배경입니다. 한눈에 넓은 평야가 보이고 그위로 강과 웅장하게 쏫은산들이 보입니다. 전면의 넓은 평야가 보이는 걸로 보면 광활한 들판이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이탈리아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쪽의 웅장한 산은 이탈리아북부의 스위스 산맥일 것입니. 스위스특유의 설산으로 보이죠? 왼쪽에는 르네상스의 부활에 걸맞은 그리스를 그렸고, 오른쪽 편에는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풍경 속에 담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풍경 속에 신기한 동물이 눈에 띄지 않나요? 토끼입니다. 토끼는 여러 가지 상징이 있습니다. 새끼를 많이 낳는다고 다산의 상징이 있고요. 또 바람을 피운다는 부정의 상징이 있습니다.
좋은 상징도 있는데요. 뒷다리의 힘으로 높은 곳으로 잘 뛰어 올라가죠? 열심 있는 믿음이나 신앙을 상징합니다. 토끼가 등장한 것은 세바스챤의 죽음을 넘어선 순교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양쪽에 토끼가 있는 것은 푸른 초원이나 거친 돌밭이나 한결같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요 이 작품에는 한 가지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들판의 토끼는 화살의 각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의아스럽죠? 토끼와 화살의 각도에 대해서 살펴보며 그림여행을 마치겠습니다.
몸에 박힌 화살이 많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아와 살을 뚫었습니다. 그런데 화살의 각도를 보면 모든 각도에서 날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세바스챤에게 쏜 화살은 거의 한 방향에서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가 묘사한 화살의 각도를 보면 전방위에서 쏜 흔적입니다. 그렇죠?
머리를 뚫은 화살은 턱밑 바로아래에서 쏜 것이고, 허벅지의 화살은 양쪽 측면에서 쏜 것입니다. 이런 묘사의 의미는 사단이 의인을 공격할 때, 한 방향에서가 아니라 전방위에서 공격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화살의 각도가 너무나 다른 이유의 해석이며 양쪽 배경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열정을 상징하는 토끼가 그려진 이유입니다. 토끼 같은 열심 있는 제자인 세바스챤을 향한 사단의 수많은 공격인 것입니다. 토끼와 화살을 연관시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기독교 상징으로서는 서로 연관이 됩니다. 이 역시 훌륭한 도상입니다.
그림을 처음 볼 때에는 화살에 맞아도 여전히 살아있는 인물이 참 신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기에 더해서 화려한 대리석과 허물어져 가는 석조 건물과 고대 유적에서 발굴되는 토막난 조각들도 신비했습니다. 르네상스가 부활시킨 그리스 로마의 흔적이 진하게 담겨있는, 중세 시기의 명화를 만나봤습니다.
이 작품을 떠나, 밖에 나가게 되시면 눈을 들어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시길 권합니다. 흰말을 탄 구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다음 그림여행을 준비해 다른 작품과 함께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이 주시는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면
곧
중세로
발길이 옮겨지는 곳.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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