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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위한 명화

38년 환자의 절망과 기적의 손짓

by 명화 속 상징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01 (9) (2).png 유튜브 <명화 속 상징> 채널에서 영상으로 시청하세요.

안녕하세요.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장기간 여행이라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다행히 큰 탈 없이 잘 마쳤습니다.


젊었을 때 처음 도착했던 유럽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를 방문해 재회의 시간을 가졌었고, 여러 나라의 평범한 일상 생활을 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엔 미술관만을 방문하는 시간을 준비해 미술관의 현장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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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치유를 내용으로 한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이 그림은 화가 무리요가 자선 활동의 일환으로 세비야의 '카리다드 형제회'(Hermandad de la Caridad) 예배당을 위해 그린 여섯 점의 '자선 행위' 연작 중 하나입니다.


명화를 살펴보는 동안 치유가 필요하신 분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세계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떠나는 그림여행. 지금 시작합니다.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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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입니다. 그림을 처음 대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화폭의 반을 차지하며 병풍처럼 서 있어 마치 가로막힌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가로 막힌 듯한 그 느낌이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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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앞에 한 남자가 땅에 누워있죠? 한 눈에 병에 시달린 사람임을 알 수 있는데요. 기록에 의하면 38년된 병자입니다. 예수님과 병자가 손으로 얘기 나누는 듯하죠? 명암으로 제자들의 손은 잘 보이지 않게 처리했고 예수님과 병 들린 남자의 손은 밝게 칠해 활발한 대화가 오가도록 묘사했습니다. 이 남자의 사연이 기록으로 자세하게 남겨 있는데요. 그 사연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한복음 5:1-10)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불편을 예수께 하소연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이 즉시 낫게 해 주신 기록입니다. 당시 곁에 있었을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행해진 치유의 기적인데, 그 기록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베데스타

기적이 일어난 이 장소는 어딜까요? 장소의 위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연못이 있었던 장소는 베데스타입니다. 당시 이곳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했는데요. 연못의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입수한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설따라 삼천리 같죠? 현실에서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 처럼 당시에도 기적이 있었던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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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무리요(1617-1682)는 스페인의 바로크 화가로서 종교적인 작품을 제작했으며 특별히 일반 여성과 순수한 어린이에 관한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러한 작품 경향은 그 시대의 일상 생활을 알 수 있는 귀한 기록이 됩니다.


화가가 미술 공부를 시작한 스페인 세비야는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예술적 영향을 받아 플랑드르 회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의 작품은 당시 부르주아와 귀족의 취향에 맞는 세련된 스타일로 발전했습니다.


26세에 마드리드로 이주해 벨라스케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고 왕실 컬렉션에서 베네치아와 플랑드르 거장의 작품을 보며 영향 또한 받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풍부한 색상과 부드럽게 모델링 된 형태로 그의 후반기 작품 속에 잘 드러납니다.


그의 남겨진 작품에는 특별히 여성 인물의 묘사와 천사와 같은 종교적 표현에서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부드러움 속에 드러나며 정물에 대한 세밀화와 사실 주의적 표현이 뛰어난다는 평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회색 톤의 뿌연 안개 같은 부드러운 색감은 그 만이 창조한 특이성입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 특징이 보이긴 하는데 조금 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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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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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무릴로의 후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제한된 색채 범위를 사용하는 화풍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입은 의상은 깊고 풍부한 색조를 띄죠? 반면에 배경 되는 그 너머의 건물과 인물들의 색은 다소 단색적인 색채입니다. 화폭에 깊이와 공간감을 만들기 위해 색의 대조를 이루게 했습니다. 이런 화법은 화가 무릴로가 능숙하게 사용했던 원근법입니다.


그 결과로 앞과 뒤에 깊이와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뒤에 있는 연못은 마치 물 위에서 수증기가 올라와 공기를 가려 생성된 것처럼 뿌옇게 표현되었습니다.


구도

그림의 뼈대를 이루는 구성과 구도를 보겠습니다.

선을 세로로 그어보면 정확한 삼등분이 됩니다. 삼 등분된 선 안에 각각의 주제가 들어있습니다. 그림의 구성이 쉽게 이해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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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세로로 그어보면 정확한 삼등분이 됩니다. 삼 등분된 선 안에 각각의 주제가 들어있습니다. 그림의 구성이 쉽게 이해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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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의미가 연결되는 요소들입니다. 점 선을 그어보면 하늘의 천사, 서 계신 예수님, 누운 병자가 한 축에 들어있습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연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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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색의 농도로 화폭을 두개의 영역으로 분할했습니다. 진한 색을 지닌 전경의 사역 현장과 흐릿한 색을 지닌 베데스다 연못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전경에는 강한 색감으로 인물을 묘사했습니다 이 덕분에 장소라는 배경보다는 기적을 베푸는 현장감이 부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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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 작품에서 필자가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구성과 구도입니다. 사각형의 이 구도는, 병자의 시선을 막아버립니다. 그렇죠? 오로지 예수만 보이게 하는 구성인데요. 구성과 구도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성경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화가의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병자

그럼, 그림 속으로 들어가 거저 주시는 은혜로 치유 받은 병자부터 만나 볼까요?

걷지 못하는 환자가 주님을 보며 두 손을 펴고 사정을 호소합니다. 그의 곁에는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인 깨어진 물 항아리와 접시 그리고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가 놓여있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보이지 않으며 음식이 담겨있어야 할 접시도 비어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현재 상황입니다. 잠자리는 나무 가지를 모아 맨 땅에 대출 깔아 만들었습니다. 오래 되었습니다.


이 환자를 보면 화가의 특성이 엿보입니다. 앞에 서 있는 제자들과 달리 이 환자는 피부색을 제외하고는 회색 계열의 천과 생활 용품을 지녔습니다. 화려한 색이 아니기에 빈곤한 처지가 더 잘 드러납니다.


두 손을 들며 시선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얼굴 표정에 자신의 불행한 모든 처지를 담아 전합니다. 45각도의 얼굴에 주름과 벌린 입으로 병자의 처지를 잘 표현했고 손 바닥과 몸에 근육이 보입니다. 해부학에 자신이 있는 듯 보입니다.


연못

배경 되는 연못을 볼까요? 천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기적을 행했던 연못이 보이고 그 위에 천국의 상징인 황금 색 구름속에 한 천사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원래의 장소였던 이스라엘의 건축물이 아니죠? 화가의 고향이 스페인이라 그 곳의 건출물로 담았습니다. 건축물 때문인지 로마 군병들이 사용했던 고급 대리석의 대중 목욕탕 같습니다. 이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연못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파 누운 사람도 있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고 부축을 받아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빈 자리, 개, 꺼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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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부분 오른편에 특이한 묘사가 있습니다. 빈 자리가 있고 개도 한 마리 있고 바닥에는 깨진 위험한 구간도 보입니다. 이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당시 이곳의 일상 생활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뒤부분의 고급 대리석으로 제작된 연못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실감이 있습니다.


병자가 없는 빈자리는 물이 움직였을 때 먼저 들어가 나음을 받았던 한 병자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상체 반쯤을 내밀고 존재를 확인시키는 는 어떤 의미일까요? 장소에 현실감을 부여하거나 아니면 이 화가가 속했던 형제회의 헌신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는 충직의 상징입니다.


의문인 것은 개 앞에 놓인 꺼지고 거친 땅의 표현입니다. 이 부분의 해석은 화가 무리요가 자선 행위(Acts of Charity)를 돕기 위해 그린 그림의 목족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바닥이나 딱딱한 지형은 천사의 기적에 의존해야 하는 당시 병자들의 현실적인 고통과 비참함을 드러냅니다. 그런 묘사를 통해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자비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림의 주제인 '병자를 치유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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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그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전면의 좌우편에 환자들의 고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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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이 그림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지 않으셨나요?


예수님의 치유와 천사의 치유 모두 기적적인 회복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 두 사건이 같은 의미일까요?


왼쪽과 오른쪽의 치유가 형식적으로는 같아 보일지라도, 이 작품의 화가인 무리요는 두 사건에 결정적인 차이를 숨겨두었습니다 바로 이 신학적, 도상학적 대비가 이 그림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이 두 치유 사이의 숨겨진 간극과 그 심오한 의미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답을 찾기 전에, 독자 여러분께서 이 좌우의 차이를 먼저 깊이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번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겠습니다.


병자 앞에서 맨발로 서 계시며 콘트라포스트로 구성해 위엄 있는 상의와 잘 어울립니다. 머리에는 기적을 능히 베푸실 수 있는 신성의 상징인 후광이 뻗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땅에 있는 환자를 향해 손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먼저 물어 십니다.


예수의 이 묘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먼저’라는 행동입니다.


제자들

병자를 쳐다보는 예수의 제자들을 볼까요? 나이가 많은 듯이 보이는 제자는 베드로 같고 붉은 의상을 걸친 젊은 제자는 요한 같습니다. 제자들의 손과 예수의 손을 비교해 보면 밝기가 다르죠?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강조하고자 예수님의 손이 눈에 띄게 밝게 묘사했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환자를 향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화가가 제자들과 주님을 이렇게 줄서 있는듯 서 있게 한 것은 이 그림의 핵심이 담긴 도상으로 해석하셔야 합니다.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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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림을 바라볼 때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강아지가 새롭게 보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바로 믿으면 치유가 된다는 것을 충직의 상징인 개를 등장시켜 알립니다. 세상을 묘사하는 땅이 험난하죠? 자세히 보시면 개가 서있는 곳이 보이세요? 매우 단단한 바위입니다.

부서지기 쉬운 흙이 아니죠? 깨져있는 바위임을 알립니다.


즉 반석인 의미를 지닌 바위입니다. 이 의미는 세상이 거칠고 험난한 곳이지만 기적과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반석인 예수 위에 있음을 알립니다. 거친 곳에 묘사된 인류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믿음으로 기적이 일상 생활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음 그림여행을 준비해 돌아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살펴보는 코너. <명화 속 상징> 제공이었습니다.

20250928_162524.jpg 내셔널 갤러리 앞의 트라팔가 광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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