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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13 쓸모

#13 쓸모


 쓸데없다는 말이 있다. 과연 쓸데없을까?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의 인터뷰를 보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더러 한다. 쓸모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예를 들어 노동이 전혀 불가능한 장애인이 된다던가 등등 쓸모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의 차이겠지만 더 이상 1인분을 못하게 될 때를 가정해보자. 쓸모없으면 해고되고, 절교당하고, 버려진다. 수긍할 것인가? 존재 자체가 궁극이 아니라 도구로서의 인간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무용한 것의 유용함에 대한 글인데,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발을 딛는 부분만 땅이 존재하고 그 외에 부분은 밑이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라면 과연 걸을 수 있겠느냐라는 내용이다. 최근에 개봉해 많은 관객이 든 “엑시트”의 경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주요했던 점은 쓸데없는 것이라며 계륵 취급을 받았던 클라이밍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갯속에서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상황, 이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건 취업이나 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취미였다는 것. 이것이 무용한 것의 유용함 아닐까.  

 

 그렇게 쓸모에 집중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들을 하게 되고, 바쁘게 사는 것 같다. 요즘 세대를 자기 계발의 노예라고들 하는데, 뭔가 쉴 새 없이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하다는 조바심 때문에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여유가 없으니 예민하고. 어쨌거나 요즘은 너무 생산, 경제적인 관념이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친구 관계에서도 절교가 아니라 손절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금을 살아가려면 경제활동을 영위해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못하면 혹은 그에 도움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것)로 인식하는 시대정신이 애달프다. 변신에서 그레고리가 왜 죽었는지 이 시대가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를 죽게 한 것이 대단한 무기가 아니라 사과(별것도 아닌)라는 것.  


 현실판 그레고리에게 전하는 세스코의 현답을 첨부하며 오늘의 서술을 짧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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