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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15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15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점) 치는 노인과 便桶(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날>


 

 이태원에 있는 디스코바에 간 적이 있다. 어둑한 분위기에 객원 디제이들이 LP를 틀어주더라. 음악도 좋고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기 바로 위 눈 앞 타일 한 개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보자마자 좋다고 찾아봤고,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란 걸 알게 됐다. 그전까지는 이성복이 시를 읽은 적이 없다. 얼마 후 이 시가 수록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샀다.


 시의 내용은 별거 없다. 어려운 수사 없이 하루의 일을 서술한다. 초반부 나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일상을 다루는 듯하다가 중반부 밖의 세계에 시선을 돌리면서부터 시어에 힘이 실린다. 죽음(날아가는 것이 새만 아닌)과 연결되는 여인들과 사내들의 고단함, 점을 치는 노인(삶을 운에 맡기는, 마치 로또에 꿈을 거는)과 변통의 다정함(고통도 익숙한) 그리고 무감각은 건조하게 서술되지만 모두가 병들었다는 마지막 문장을 강조해준다.  

 

 시 해설을 하자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어떤 연예인의 죽었다. 기사를 통해 알게 됐는데, 자살이었다. 어렸을 땐 뉴스에서 자살에 대한 기사를 자주 봤었는데 지금은 기구한 사연이거나 유명인이 아니면 언급도 없다. 꽤 오래 Oecd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내가 읽은 기사는 속보성 비보만 전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짧았다. 마음이 안 좋았던 건 비보를 접해서가 아니라 기사 말단에 있는 내용이었다.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병원이나 상담 독려한다. 과연 맞는 걸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 병리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 가보라는 인식은 세계는 멀쩡한데 네가 문제야라고 하는 꼴이다. 시인이 특정한 시대 혹은 어떤 날이 아닌 “그”날이라고 한 이유는 세계의 병듦이 쉬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세계관 때문이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출산율 저하와 자살뿐만 아니라 트렌드로 느낄 법한 비혼주의까지 모두 생명의 잉태를 멈추는 행동들이다. 건강해지려면 아픔을 드러내야 하는데, 병들어 있음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사회인 것 같다. 언제까지 신음소리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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