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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16 눈과 비

#16 눈과 비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아직도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산간 오지이다. 어렸을 때 비나 눈이 오면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을을 굽이 쳐 관통하는 냇물에 다리가 있는데,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름도 없었다. 그냥 큰 다리, 작은 다리로 불렸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불어 다리가 끊겨 오도 가도 못했다. 그래서 장마철엔 학교를 자주 쉬었다. 그것뿐이랴. 정전도 잦아 집에 양초가 많았다. 지금 기억해보면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촛불에 의지했던 게 아련하다.


  오지라 눈도 오지게 왔다. 마을을 관통하는 작은 도로가 국도라서 언제부턴가 마을 사람들 몇몇과 외부 인력으로 구성된 복구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1미터 이상 쌓이면 그냥 고립이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쌓인 높이가 처마 바로 밑이었으니 2미터쯤 됐을 거다. 사람 다니는 길만 치우고 저절로 녹길 기다려야 했다. 어렸을 때라 불편함보다는 낭만이나 재미가 더 컸던 것 같다. 비료포대를 들고 언덕으로 썰매를 타러 가거나 꽝꽝 언 냇가로 앉은뱅이 썰매를 타러 갔으니.  


  젊은 거장이라고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라는 작품이 있다. 실타래처럼 엮인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동정도 비난도 머뭇거리게 하는 인간군상들을 다루는데, 예를 들면 돈 때문에 유명한 프로듀서와 결혼한 젊은 부인이 죽음에 이른 늙은 남편을 뒤늦게 사랑하게 된 것을 알고 마음 아파한다. 어릴 때 퀴즈쇼에서 우승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도 그러길 바라며 스파르타로 교육하지만 정작 자신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다.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딸을 보러 가 사과를 하는데, 마약중독자인 딸은 이를 거절한다. 딱하고 처연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개구리 비가 내린다. 여러 해석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이것을 소란을 잠재우는 장치로 봤다. 어렸을 때 내가 눈과 비를 보면서 느꼈을 감정이 재현됐다.  


  매그놀리아에서 개구리 비는 영화적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냥 비는 좀 약하니까. 눈과 비는 소란스럽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세상사를 고요히 잠재우는 느낌이다. 지상의 것이 아닌 저 아득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기에 과장되게 말하면 종교적이기도 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비가 와서 큰 물이 난 후 냇가로 나가보면 물 바닥이 새것처럼 하얗다. 눈은 그 자체로 하얗기도 하고 벌거벗은 겨울을 따뜻하게 덮어주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그리고 감각/감성적으로도 나에겐 정화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멈추게 만든다. 하던 일과 생각들이 멈출 때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  


  도시에 살면서 느끼는 건 다르지만 적어도 시골에서 살았을 때 눈과 비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다소 감상적인 내용일 수 있겠지만 눈과 비가 좋다. 적당히 내리지 않는 것도 다 우리 인간들 탓일 것이다. 눈과 비를 피해라 생각하지 않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피해 가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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