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회사 생활을 2009년 3월에 처음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15년 차이다. 그동안 이직을 두 번 하여 지금이 세 번째 회사인데 두 달 전 하루 간격으로 두 친구를 만났다.
한 명은 첫 회사의 첫 팀에서 함께 일하며 벌써 12년 지기가 된 남자 후배이고, 다른 한 명은 15개월 밖에 안 지내고 나온 두 번째 회사의 여자 동료 에이미다. 참 재미있게도 두 친구 모두 올해 아기가 태어나서 우리 셋 다 육아 동지가 됐다. (와, 두 달 전에 만났다니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작은 아이가 있는 엄마의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간다)
남자 후배는 입사했을 때 석박사를 모두 마치고 왔음에도 가장 어려서 내가 꼬마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엘전에서 잘 나가는 조직의 팀장님이 되었고 우리가 서로 연애 얘기를 넘어 육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질 않아서 하하 웃었다.
십 년 전 내가 조직이동을 하면서 우리는 다른 길을 가게 됐고 내가 퇴사한 이후로 연락이 뜸해져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이런 말을 했다.
나 : "넌 내가 참 못하는 걸 잘하네?! 난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냥 있는 걸 잘 못해. 시작을 내가 했으면 끝도 내가 내려고 해. 그래서 좀 버티면 나한테도 꽤 좋은 보상들이 떨어질걸 아는 게 그걸 버리고 나오는 일이 많더라 ㅋㅋ"
후배 : "게을러서 그렇죠 뭐, 하하"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한 저 말은 그가 십 년 전에도 똑같이 했던 말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으니 저 말이 단순히 게으르다로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다닌 세 군데 직장 중 에이미와 인연이 있는 두 번째 직장은 내게 일적으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고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굉장히 짧은 기간 지내고 나왔지만, 좋은 친구들 몇 명 남았다. 일하는 사이에는 일이 잘돼야 관계도 좋아진다고 믿는 나에겐 이건 실로 흥미로운 광경임에 틀림없는데, 생각해 보니 회사 자체가 모두에게 그리 녹록지 않은 곳이어서 함께 일로 엮였던 우리가 서로가 더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이미와 나는 이전 경력 때문에 기대를 많이 받고 입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이전에 우리가 일해온 방식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는 회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진 사이로, 지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에 내 이야기를 전파하며 내 팬을 만들어주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며 내 손에 선물 상자 하나를 들려주었다. 순전히 자기 욕심으로 산 선물이라며 마실 때마다 자기 생각하라고 자기 이름과 똑같은 선물을 골랐다며 활짝 웃었다. 그 친구처럼 귀여운 패키지의 차였다. 집에 돌아와 그 친구가 준 책을 펼쳤더니 직접 쓴 카드도 들어있었다.
육아 휴직 중에 힘든 어떤 순간에 문득 내가 건네었던 어떤 말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오래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고마웠다. ‘내가 건넨 말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됐구나’ 하는 걸 내가 알 수 있게 나에게 그 마음을 전해온 것이 고마웠다. (마음만큼 글씨도 예쁨)
나는 에세이에 약간의 편견을 갖고 있어서 책을 많이 읽는 지인들에게 검증된 에세이가 아니면 들춰보지도 않는다. 아마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내가 아는 게 없으니 일단 내 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지 하며 일과 관련된 책만 읽던 버릇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내 손으로 직접 에세이를 고르는 일은 잘 없으므로 책장에 있는 대부분의 에세이는 선물 받은 것들인데, 하나같이 좋아서 두고두고 다시 읽는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게 벌써 한 달 전이라 이 책도 한 번 더 읽었다.
다시 펼친 이유는 할머니의 단어 때문이었다.
언어의 미니멀리스트였다던 저자의 할머니께서 쓰시던 마법 같은 표현이 '그려, 안뒤야, 뒤얐어, 몰러, 워쪄'였다는데,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저런'이라는 표현이 하나 더 나온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 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표현으로 쓸 수 있는 표현, '저런'.
나는 다음날부터 집에서고 회사에서고 상황이 닿으면 '저런'을 써보기 시작했다. 때마침 내가 운영하던 리더십 브라운백 미팅의 멤버들과 원온원을 하던 중이라서 그때도 써봤다. 그리곤 이걸 내가 왜 쓰는지 부연 설명도 덧붙이며 그들에게도 전파했다.
작은 사람을 양육하는 중이다 보니 육아와 관련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접하는데, 아무래도 근래의 육아에서 화두는 아이들의 마음 읽기였다. 일터에서 코칭이란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시의 적절한 말을 해야 하는데, 성인이다 보니 마음 읽기 같은 건 보통은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허나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가 상담을 받으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나의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걸 해보고 있던 터라 이 또한 기회만 되면 써보곤 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걸 하면 할수록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나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읽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꼈고, 그건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일관된 행동에서 느낀 거였는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음 읽기가 필요한 순간에 아이의 마음이 이렇구나~ 저렇구나~ 하는 걸 엄마가 말로 대신 설명해 주는 일이 아이가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분명 필요하겠으나, 그 뒤에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 행동에 대한 통제는 어딜 가고? 싶다.
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키울 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게 바로 마음 읽기 뒤에 따라붙는 훈육이었다는 걸 육아하면서 깨달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 읽기를 꼭 저렇게 구구절절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물론 내 아기는 아직 한 살이기 때문에 구구절절해주어야 하는 시기는 맞다. 다만 내가 이걸 연습한다고 성인들에게도 마음 읽기를 해주는 경우들이 간혹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어린아이 다루듯 한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저런"으로 갈음하고 있다.
처음엔 할머니 단어 때문에 이 책이 흥미로웠는데, 정작 이걸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따로 있다.
"아이는 부모의 빈 틈에서 자란다"는 문장이었다.
처음 보는 말도 아닌데 왜 그렇게 꽂힌 거지... 싶었으나 아마도 내가 근래에 공적으로, 사적으로 처한 상황이 떠올라서였지 싶다. 그리고 난 이 말이 꼭 가정 안에서만 성립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이나 조직이나 돌아가는 핵심적인 맥락은 같다. 때문에 조직 안에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하 직원들에게 자신의 수족이 될 것을 요구하며 숙제를 빽빽이 내주고 팔짱 끼고 앉아 숙제를 해오면 검사를 할게 아니라 큰 방향성만 맞다면 그 안을 꾸려가는 건 직원들이 생각해 낼 여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도 아이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
아이의 모든 여백을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내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아이에게 투영하는 건, 내가 살아보지 않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대비하는 방식은 아닐 게다.
일터에서의 상사가 숙제를 자꾸 내주는 것과 부모가 자식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려는 것은 그저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