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만에 다시 온 이 곳!
작년 오늘도 휴가를 내고 Maker Faire Bay Area 2016에 참석했었는데, 1년 만에 다시 같은 장소에 오니 감회가 남다르다.
Maker Faire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만든 작품과 과정을 뽐내는 잔치이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행사라서 보통 본인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Maker Faire 중에서도 가장 크게 열리는 곳은 flagship이라 불리는데, Bay Area(미국 서부에서 가장 크게 열림), New York(미국 동부에서 가장 크게 열림), Shenzhen(중국 심천), Rome(이탈리아 로마,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크게 열림) 등이 가장 유명하다. 그 중 Bay Area는 Maker Faire가 처음 생긴 곳이라서 메이커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전까지 다녀온 Maker Faire를 비교하여 기고했던 글 : https://brunch.co.kr/@banglab/57 )
다시 온 이곳엔 어떤 작품들이 나왔을지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행사장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이미 줄이 한참 길었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이 많았다. 작년에도 30분 정도 일찍 왔었는데 줄이 더 긴 것을 보니 작년보다 더 인기가 많아진 것 같은 Maker Faire.
국내 메이커 중 세계 Maker Faire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메이커로 알려진 덕에 작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Maker Faire Seoul에 주최측에서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 받았던 티셔츠를 입고 갔다. 혹시나 참가한 한국인들 만나면 알아보기 쉬워지라는 의미로.
입장하고 30분쯤 됐으려나. 관심 있는 작품이 눈에 띄어서 메이커랑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뒤를 돌아봤더니 Maker Faire Seoul 기획자 분이었다. 본인들이 만든 티셔츠라서 더 빨리 알아본 모양이다.
덕후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이런 것이 즐거워서 자꾸 오게 되는 Maker Faire!!!
입장 후 가장 처음 만난건 Maker Faire Bay Area의 마스코트 같은 작품인 Electric Giraffe 였다.
해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되어 Maker Faire에 선보이는 이 기린은 Tamiya 사에서 나온 움직이는 작은 기린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얻어 실제 사이즈 기린으로 제작한 것이다.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기린 장난감과 같다.
이외에도 이처럼 커다랗고 움직이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잠시 살펴보면,
앞으로 느릿느릿 기어가는 로봇 달팽이로, 달팽이 위에 아이들을 태워주고 불을 한 번씩 뿜어줬다
아이들을 위에 태우고 다녔다. 관절 하나하나가 움직였는데, 어떻게 조립했는지 들여다 보다가, 따로따로 어떻게 움직이게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음.
나무로 하나하나 깎고, 마디를 연결하고, 본딩한 작품.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Maker Faire에는 꽤 많은 움직이는 로봇 장르의 작품이 나오는데, 이런 작품이 의미있는 이유는 기계 공학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로봇의 핵심은 관절의 움직임이다. 얼마나 관절의 움직임이 부드러운지, 넘어지지 않고 잘 걷는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는지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잘 콜라보를 이뤄야 가능한 것. 즉, 메이커들이 그 작품을 만드는 바탕에는 기계공학적인 관점이 숨어있다.
MS 부스에서는 그들이 개발 중인 cognitive service 시연을 위해 How-Old.Net 서비스를 런칭했다. 22세가 나온 것을 보며 역시 정확하다고 했으나, 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같이 간 수석님은 중딩이 되었고..
How-Old.Net 서비스에 사용된 Microsoft Cognitive Service에 사용된 기술은 이렇다.
Azure Machine Learning
Cortana Intelligent Suite
Microsoft Cognitive Service
별거 없어 보이는 이 서비스가 사실은 구현하기가 참 까다롭다.
예를 들면, 화면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은 카운트하면 안되고. 측면 정보, 뒤로 돌아섰을 때 동선 추적, 인종에 따른 연령 결정 요소의 다양성, 안면 정보 추출을 위한 최소 정보 임계치 등등..
그런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여 거듭난 cognitive service를 누가 사용해도 재밌을 “얼굴 나이 인식”이라는 서비스로 표현한 것은 UX 적으로 좋은 접근이다.
작년과 비슷한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 훨씬 재밌었다. 어린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워크숍이 더 늘어난 느낌.
3-4년쯤 전에 한참 붐이었다가 가라앉았었는데 왜 다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 아무래도 손으로 깎고 오리는 대신 반듯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는 3D 프린터나 CNC 머신, 레이저 컷팅 머신이 제격인 것 같다.
땡볕에 자전거가 잔뜩 둥그렇게 놓여있어서 그 정체가 궁금했는데, 실상은 이랬다.
아이들이 페달을 열심히 밟아 만들어진 전기로 연주를 하는 것!!! 아이들은 신나서 페달을 밟았다. 어른들은 하지 않을 것….
(미국에서 연예인 처음봐서 찍어봄)
메이커 문화의 시작은 차고였다. 차고에 차를 안세우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용도로 쓴다.
이 말은, 차고가 있을 정도로 큰 집에서 살아야 하고, 취미생활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중산층은 돼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반대로 중산층이 몰락하면 메이커 문화도 사라질지 모르겠다.
Maker Faire엔 정말 다양한 작품이 나온다. Needle Arts Zone 이란 곳은 작년에도 방문했던 곳이라 주인장인 백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뭐든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워크숍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메이커 씬에서는 전자 기기 위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메이커로의 입문이 어려운 편이다. 아두이노같은 것은 비전공자들이 이해하기엔 그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리기 때문에.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의 Maker Faire를 다녀보면 메이커의 개념을 더 넓혀서 뭐든 만드는 사람이면 메이커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이 공예를 하거나 비누를 만들거나, 잼을 만든다거나 하는 것도 모두.
게다가 이번엔 사진 속 맨 오른쪽에 있는 11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뜨개질을 배웠다. 언제부터 했냐고 물었더니 어제부터 했단다. 하루 배우고 나서 재미있어서 자청하여 Needle Arts Zone의 뜨개질 선생님이 된 것. 물론 자발적으로 아침부터 나와 있던 것이고, 내가 좀 가르쳐달라고 하니 천천히 자세히도 가르쳐줬다. 난 이미 뜨개질을 할인 줄 알아서 혼자 막 다른 걸 뜨고 있었더니, ‘너 뜨개질 할 줄 아는구나? 근데 오늘은 cozy (머그잔 싸개 같은 것) 만드는 날이야.’ 하고 단호하게 말하며 다 풀어버리더라.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하니 다른 걸 만들고 있는 날 보면서, ‘앗 저건 뭐지? 나 저거 못하는데?’ 하고 당황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해야 할 것이 뭔지 상기시키고 집중하게 만드는 것을 보니 이게 미국의 힘인가 싶기도…
Homegrown zone에 갔더니 하우스 앞에서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는 사람이 많아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자리가 있어서 앉았다. 양배추 절임을 만드는 워크숍이었다.
되게 뜬금없어 보이는 양배추 절임. 이유는 이렇다.
매실이 나오는 철이 되면 엄마들이 매실을 잔뜩 사다가 설탕에 절여 매실액을 만들거나 매실 장아찌를 담그는데, 설탕에 절이고 며칠 지나면 부글부글 거품이 나면서 뚜껑이 폭발할 때가 있다. 그건 식재료에 있던 박테리아와 설탕/소금이 만나 발효되면서 가스가 생겨서 그런 것인데, 그렇다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외부에서 세균이 더 들어가서 곰팡이가 피게 된다. 그래서 참 난감한 상황이 발생…
양배추 절임 워크숍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만든 제품은 절임 음식을 만들 때 가스로 인해 병이 터지거나 폭발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제품인데, 뚜껑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스포이트 병 같은 것들 달아둔 것이다. 그것에도 뚜껑이 있는 스포이트.
사실 어제 Homegrown zone에 들어갔다가 이 사람들이 피칭하는 것을 봤는데,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만 30분 정도 설명했다. 마치 홈쇼핑을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인들에게 흔한 피클은 식초에 절인 것인데, 이게 소금에 절인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발효의 원리가 어떤건지 등등 갑자기 들어와서 앉은 사람은 뭔 말을 하는건지 이해 못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어찌 보면 ‘내 제품을 사가’라는 말을 이게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팔고 싶은 내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을 먼저 고려한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Maker Faire는 내게 조금 특별했다. Traveler라는 프로그램이 생겼기에, 난 기꺼이 traveler를 신청했다.
행사를 보고 싶은데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외국 학생들, 기꺼이 이런 메이커 행사에 자원봉사하고자 하는 남녀노소에게 one day ticket을 제공하고 일손이 필요한 곳곳에서 자원봉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포데스크나 굿즈 판매대, 메이커 부스는 늘 일손이 부족하므로 자원 봉사자가 많을수록 좋다.
난 이미 weekend pass를 구매해놔서 티켓을 공짜로 받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이렇게 멀리까지 계속 행사를 보러온다는 것의 의미 확장이었다. 영어를 썩 잘하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메이커로써 다른 메이커들과 교류하고, 국내외 메이커 문화에 일조하고 싶어서 참가했다고 했더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썸!"하며 응원해줬다.
사실 몇 년 전부터 Maker Faire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서 다니고 있는데, 작년 Maker Faire Bay Area에 와서는 다른 나라에서 온 메이커를 위해서 뭔가 따로 제공하는 게 없는지 행사 당일 주최 측에 문의를 하기도 했었다. 또, 행사가 끝난 후 받은 survey에 어디 어디 가봤냐길래 다녀온 곳을 모두 적으면서, 나처럼 투어하는 메이커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지 올해는 traveler라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 그래서 특별했다.
다음엔 또 어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