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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Dec 21. 2017

중간을 받아들이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Oliver Sacks

과거 어느 날, 저녁에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런 얘길 했다.

"예전엔 회사에서 일하다가 무언가 선택을 안 하고 뭉개는 사람을 보면 짜증 났는데, 지금은 양극단을 선택하지 않는 게 현명한 건가 싶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전보다 성장했구나'하는 생각이 든 건 양극단이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였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로 분류하고 반드시 좋은 것 안에 속해야지만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드는 건 참 손쉬운 일이라는 걸 느낀다. 악당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영웅이 되기도 쉽고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 무리에 편승해 선택하고 나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아 잠시나마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어느 것 하나 옳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한 상태가 더 오래가곤 했는데, 이런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마 그때가 양극단이 아닌 것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 아닌가 싶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by. Oliver Sacks, 원제 :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12월 책으로 고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2부 과잉에 실린 [큐피드 병]이라는 챕터를 읽다가 문득 '병이라는 게 꼭 고쳐내야지만 하는 나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그 덕분에 이십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원기를 느끼고 기운까지 팔팔하니 말이에요. 신나는 경험이었어요. 정도가 지나치면 좋은 것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아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충동까지 솟구친답니다.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엉뚱하고 바보 같은 충동이랍니다. 처음에는 조금 취한 듯한 기분이었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도를 넘어선다면...."
코카인을 흡입하고 느끼는 충족감과 행복감은 건강한 사람이 느끼는 정상적인 행복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 상태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약물에 의한 효과 때문이라고 믿기 힘든 것이다.
뇌에 대한 전기자극에 대해서도 역시 똑같은 역설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간질 가운데는 흥분성과 중독성을 띤 것이 있다. 간질이 자주 일어나는 환자의 경우에는 증상이 되풀이되어 자기유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도 있다. 마치 뇌에 전극이 설치된 쥐가 충동강박을 통해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하는 것과 매일반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과 순수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간질도 있다. 설령 병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이기는 하지만 행복감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한 역설적인 행복감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지속적인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삶의 시작부터 이미 그 질병과 함께 한 사람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병증을 가진 사람은 나름대로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간다.

우리네 삶이 그런게 아닐까.


정말로 세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두 가지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을까?

오히려 양극단을 모두 알고 적절히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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