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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시면 뇌가 혀로 쓴맛을 전달하는 기분이야

by 반고

대학 첫 학기를 마친 준호가 방학이라 집에 왔다. 택배 상자를 풀던 아들은 투명한 초록 물병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준호 은호가 입학할 때 색깔만 다르게 구매하여 가지고 갔던 1.3리터 플라스틱 용기였다.

아들은 물병을 식탁에 올려놓더니 “아, 이거 진짜 못 쓰겠어.”라고 했다. 동생한테 바꾸자고 한다길래, 네가 못 쓰는 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쓰겠냐고 했다. “걔는 미성년자라 괜찮아.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학기 초에 조금 쓰다 말아서 거의 새 거야. ”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교환 요청을 받은 은호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자신의 회색 물병을 챙겨 와서는 “근데 왜?”라고 물었다. 나도 그 까닭을 알고 싶었다.

“이거 한번 쳐다봐 봐. 딱 생각나는 거 있지?” 준호가 말했다.

은호와 나는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준호 얼굴에 ‘어떻게 이걸 못 맞추지?’ 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보자마자 앗, 이건 소주병인데 하는 느낌 없어?”

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난, 모르겠는데…”라고 했다.

원기둥 물병과 위로 갈수록 날렵한 술병의 닮은 점을 찾지 못한 내가 물었다.

“준호야, 소주병이 훨씬 작은데 어디가 비슷한 거야? 게다가 이건 플라스틱이고 소주는 유리라서 재질부터 다르잖아.”

“엄마가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초록색 페트병에 든 큰 소주가 있어. 엠티 갈 때 왕창 사는 제일 싼 술.”

구매한 적은 없어도 그런 제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순간 준호가 어떤 일로 초록 물병을 꺼리게 되었는지 상상이 갔다. “너, 혹시, 소주병을 물병인 줄 착각하고 마신 거 아니야?”

“그건 아니고, 내 물병이 대용량 소주병이랑 거의 똑같아서 물을 마시면 뇌가 혀로 쓴맛을 전달하는 기분이야. 술 냄새도 나는 것 같고. 토하는 줄 알았어.”

용기만 봐도 몸이 기억할 만큼 술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스무 살의 술자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면서도 알기가 두렵다.

어느 여름밤, 준호와 나는 차가 지나가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연석에 앉아 큰 소리로 대화하는 취객 두 명을 보았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더니, 내 마음을 읽은 아들이 말했다.

“저 사람들 앉아서 떠드는 걸 보면 아직 정신이 있는 거야, 홍대 앞에 가면 조용한 길거리 투숙객이 많아. 필름 끊겨서 아무 데나 누워 자는 사람.”

“투숙객? 설마, 밤새도록 그러고 있어?”라고 하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걸. 난 지하철 끊기기 전까지만 있었으니까 그 뒤로는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지만. 예측해 본다면, 아침까지 거기서 잔다는 것에 한 표 걸겠어.”

문득 아들의 귀갓길이 궁금해져 마지막 열차 시간을 물어보았다. 열두 시 팔 분이라니 꽤 늦었다. 하지만 준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엄마의 염려보다 막차 시간이므로 말을 아끼기로 했다.

나는 준호의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술 마신 다음 날 속이 아프다길래 많이 마셨구나 한 적은 있지만, 대개 먼저 잠들어서 귀가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어떤 음주 생활을 했는지는 더욱 알지 못한다.

아들을 통해 심하게 취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들은 적이 있다. 기숙사 1층에 짐 운반용 접이식 대차가 있는데, 심야에는 사람을 싣는 용도로 변한다는 이야기였다. 술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당직자는 해당 입소자의 호실에 연락을 취한다. 룸메이트들이 내려와 한 사람은 카트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를 끌어올리고, 한 사람은 대차를 밀어서 마지막 귀가자를 침대에 눕힌다. 학생들은 술 취한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도움받기도 하며 기숙사 안에서 일종의 안전한 귀가 장치를 가동하고 있었다.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술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가정을 꾸린 후에는 술 못 하는 배우자를 만나 더 멀어졌다. 준호는 술과 친하지 않은 집에서 자라 선행학습을 못 했지만, 또래의 음주 문화를 따라가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술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니 오히려 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이 사회 생활한다는 명분 아래 고삐 풀린 음주 문화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길 바란다. 본인의 주량과 취향을 알고, 어떤 때 술이 생각나고 어떤 때 피하고 싶은지 감정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축배의 장소에서 상황에 맞는 축하주를 준비하는 센스 있는 사람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런 경지는 중심이 단단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 술과 담쌓고 지내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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