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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컷 일지

이안경원도 모르는 지역 잡지 기자

by 반고

우편함에서 월간 토마토 164호를 꺼내왔다. 이번 호는 흑백 지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컬러 표지가 있다. 컬러와 흑백은 사진에서 그 차이가 크기에, 얼른 잡지를 열어서 내가 취재한 대전트래블라운지와 유구섬유역사전시관 기사를 찾아보았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잿거리’에서 대전트래블라운지에 우연히 발을 디딘 이야기와 그곳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을 취재했다고 언급했었다. 기대 없이 들렸던 곳에서 3월 취잿감을 두 개 다 찾은 경우였다.


트래블라운지에서 얻은 것이 또 있었다. 인터뷰이가 대전 관광에서 꼭 보았으면 하는 곳으로 소제동과 대동 하늘공원을 추천했는데, 이 과정에서 진돌투어에 대해 알려주었다. 진돌투어는 로컬에서 나고 자란 기획자와 걸어서 해당 지역을 여행하는 상품이라고 했다. 편집장에게 이야기했더니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음 호에 취재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진돌투어에 연락했더니 겨울이라 관광비수기기도 하고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잠시 투어를 중단하고 있지만, 여행 성수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였다.


무궁무진한 대전 여행 상품

트래블라운지에서 취재를 끝내고 1층에 위치한 관광기념품 판매장을 둘러보았다. 설 연휴에 만날 친척들에게 선물 줄 만한 게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아직 미입고된 물품도 많고, 가격표가 붙지 않은 것도 있어 개선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대전을 상징하는 참신한 기념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담당자는 여기에 있는 물건은 대전 소재 소기업이나 공방에서 온 것으로 심사를 통해서 선발된 것이라고 하였다.



천천히 공예품을 둘러보니 이런 작품을 만든 공방의 모습은 어떨지, 만든 이는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원도심 근처 공방을 몇 군데 방문하는 투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예가의 작업 공간이라는 것이 안전상이나 미관상 방문자를 맞이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잘 구상해본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미술관 기념품 샵과 개인이 운영하는 소품샵의 중간 정도인 대전트래블라운지의 공예품 판매장이 향후 어떻게 자리 잡을지 고민 하다 보면 예술성이 묻어나는 도보 투어가 생길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나는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그 지역의 독립서점을 찾아간다. 서점방문이 나에겐 놀이인 셈인데, 타 도시에 가면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책과 굿즈가 좋은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대전에도 이런 서점이 수십 개 있는데, 동네 책방 투어도 좋은 투어가 될 것 같았다.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지 알아봐야 하겠지만, 대전 공방 투어나 동네서점 투어가 있으면 나부터 신청하고 싶은 상품이라는 말을 담당자에게 하였다. 담당자는 대전에 독립서점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관심을 보였다. 트래블라운지는 이미 옛 교복 입고 인증샷 찍기나 VR zone 같이 보이는 체험과 콘텐츠는 잘 조성해두었기에, 문화와 사유가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한 것이다. 이런 서비스가 생기면 또 이곳을 방문해서 투어에 동행하여 취재하는 나를 상상을 해본다.


프로다운 친절함

매번 대전트래블라운지를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받은 느낌은 프로다운 친절함이었다. 관광안내사는 마음에는 없는데 그래야만 하니까 제공하는 과한 친절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에 능숙한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간결함과 상대에게 진짜 관심을 가지고 안내한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나를 응대해 준 관광안내사는 내가 별도로 요청한 자료를 검색, 출력해서 형광펜으로 표시해 주는 센스까지 발휘해 주었다. 라운지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걸어서 가는 방법을 문의했더니, 내가 들어온 정문에서는 해당 골목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며 뒷문으로 안내하여 건물 밖으로 한 발짝 나서서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집어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길을 익히기 위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그녀의 이런 수고가 고마웠다. 출력된 지도를 가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나의 지인은 누가 이런 약도를 준비해주었냐며 신기해했다.


이안경원에서 만나!

2월에 트래블라운지 담당자를 인터뷰하다 이안경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사람들이 흔히 약속장소를 정할 때, 이안경원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는 일화였는데, 대전트래블라운지 1층 만남의 광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속 장소가 되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이안경원 광고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번화가에 있으니 랜드마크로 쓰이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대화 중에 그 이름이 여러 번 나와서 취재가 끝나고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올 때는 대전역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통과해 대전트래블라운지에 왔는데, 인터뷰와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중앙로역으로 향했다. 이는 대전 시내를 알아가고자 하는 나의 적은 노력으로, 시간이 조금 더 들더라도 대전역, 중앙로역, 중구청역을 번갈아 이용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익히고 지형지물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중앙로역 쪽으로 걸어가다가 무심결에 왼쪽을 보았는데, 거짓말처럼 이안경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나는 그 존재를 몰랐다. 그냥 평범한 안경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각인된 상호이고, 위치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코너에 있었다. 시내에 와서 안경을 맞출 일이 없었고, 젊은이의 놀이터인 으능정이거리를 방문할 일도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 빈약한 변명 같았다. 이안경원을 모르는 내가 대전을 취재하고 다닌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나에게도 이안경원 같은 장소가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온 나는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면, “뉴욕제과에서 만나”를 외쳤다. 정확히는 뉴욕제과 앞에서 만나는 것이다. 친구 중에는 졸업 후에도 계속 그 동네에 살고 있어서 걸어오는 이들이 많았는데, 인원이 다 모일 때까지 인도에서 혹은 계단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인파 속에서 밀리고 밀리면서 어떻게 친구들과 길에 서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보니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바로 옆 건물인 이곳은 지금도 옛 뉴욕제과 건물로 불리며, 40~50대의 추억의 장소라는 설명이 나온다.


며칠 후 나의 동네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하였다. 취재 중에 이안경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냥 아는 척하고 있었다고 실토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에 한바탕 웃으면서도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다. 내가 이안경원을 모를지라도, 대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색다른 관점은 앞으로 대전을 관찰하고 글로 표현하는데 재산이 될 거라고 하였다.

대전 사람들이 다 안다는 이안경원은 몰랐지만, 내가 나고 자란 좀 더 익숙한 도시에는 이런 추억의 장소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취재를 하면서 이 도시의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된 만큼, 이제부터라도 대전의 좋은 곳, 대전에서 내가 사랑하는 곳을 설명할 수 있는 대전의 감성 꿈나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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