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라 쓰고 여행이라 읽는다.
집주인과 소유주
지난달 인터뷰이였던 대전트래블라운지의 담당자로부터 박진석 진DoL 대표를 소개받았다. 진Dol은 공정여행사로, 주요 상품은 소제동과 대동의 도보 여행 프로그램이다. 나는 박 대표를 인터뷰하기 위해 마이리얼트립 홈페이지에서 해당 서비스를 신청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주인공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주말인 데다가 반나절 걸리는 투어에 혼자 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중2인 둘째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참가비가 일 인당 사 만 원이니 살짝 부담은 되지만 이용자 후기를 읽어보니 가족과 함께 가도 좋을 것 같았다. 아들은 취재차 가는 것이니 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본인은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대전역 동광장에서 출발하여 보존 가치가 높은 철도청 보급창고 3호를 보고 소제동 관사촌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몇 해 전 새로 꾸민 황색 벽면에 조명을 설치해놓고 대전 지역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지금처럼 외벽을 갤러리로 꾸민 것은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힌 고등학생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고 알려주었다. 한 청소년의 구상이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말에 둘째는 감탄을 하며 “참, 훌륭한 학생이네요.”라고 말하여 웃음을 자아내었다.
소제동은 현재 사람이 사는 구역과 외지인이 투기 목적으로 사 놓은 곳의 명암이 극명한 동네였다. 박 대표는 이 차이를 설명하며 ‘집주인’과 ‘소유주’라는 단어를 썼다. 둘이 어떻게 다른지 묻자 ‘집주인’은 그 공간에 살면서 집도 가꾸고 골목 청소도 하는 사람이고 소유주는 땅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재산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다 아는 용어지만 그의 설명은 재개발을 앞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현재 진행형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었다.
진짜 동구 토박이라면...
우리는 소제동을 떠나기 전에 ‘볕’이라는 카페에 들렸다. 투어 일정에 카페 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 인당 음료수를 한 잔씩 시키라고 하여 아들은 청포도 음료수를, 나는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카페에서 쉬면서 소제동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인터뷰 질문도 던졌다. 박진석 대표는 ‘볕’을 나오면서 이 집의 디저트인 수플레 팬케이크가 맛있다며 나중에 꼭 한번 먹어보라고 하였다. 아들은 걸어가며 작은 목소리로 “수플레를 강추한다면서 왜 우리에겐 시켜주지 않은 거야? 그게 더 비싼가?” 하며 내 귀에다 속삭였다.
대동에 가는 길에 우리는 대전옥이라는 한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박 대표가 투어를 진행하며 들르는 몇 군데 단골 식당이 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선택지가 제한적이라고 했다. 대전옥에 들어가면서 박 대표는 자기 어머니가 좋아하는 식당이라고 말해주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질문이 나왔다. 조금 전 카페에서 그는 동구보건소에서 태어나서 줄곧 동구에서 나고 자랐다고 말했었는데,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삶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던 것이다.
“대표님이 태어난 80년대에는 보건소에서 출산이 가능했던가 보네요?”
“아 그게 저희 어머니의 평생 한이에요. 저희 할머니가 형편이 어렵다고 산부인과에 가지 말고 보건소에 가라고 하셨대요. 그게 한이 되어, 제 동생은 산부인과에 가서 낳으셨어요.”
예전에는 보건소가 지금보다 더 규모 있고 포괄적인 진료를 제공했는지 물어본 것이었는데, 의외의 답을 듣게 되었다. 괜히 질문했나 싶어 후회되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동구보건소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동구 터줏대감, 소제동 전문가, 이 지역에 뿌리를 둔 진짜 토박이만이 가질 수 있는 근사한 훈장으로 들렸다.
색칠 공부
점심 후 대동 하늘공원까지 걸어가며 골목골목을 구경하고, 박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머물다가게에 도착하여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마지막 일정이었다. 체험활동이란 대동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동하늘공원 풍차를 색연필로 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박 대표에게 더 물어볼 질문이 있는지 살폈다. 아들은 상점을 한번 둘러보고 나를 쳐다보더니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재료를 꺼내 채색을 시작했다. 색칠 공부는 남자 중학생이 좋아할 만한 활동이 아니라서 아들 눈치가 보였는데, 의외로 말없이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활동지는 빈 종이로, 아들의 활동지는 절반 채워진 채로 가지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정말 특별한 여행이었다며,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어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전역 근처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색칠하는 거 피하고 싶었던 거 알지?”라고 말했다. 투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네 시간 동안 아이는 무려 6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들 덕분에 취재도 수월하게 하고 함께 추억도 쌓는 시간이 되었다.
기사 초고를 완성하고 박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 내용 중에 박 대표에게 불편함을 초래하는 점이 있을까 우려해서였다. 그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겪었던 힘든 점을 설명하며, 대전을 떠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기사에 썼는데, 이 말이 대전을 거점으로 일하는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염려하여 물어본 것이다. 내가 기사의 일부분을 읽어주었더니, 그는 정말 좋다며 누군가 대신 이런 말을 해주니 본인의 입장이 더 쉽게 설명된다고 하였다. 잡지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라며 기사를 잘 써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그는 쿨한 사람이었다.
인터뷰 vs. 동행
편집장과 상의 후 취재를 시작할 때 이 기사의 지면으로 구상한 것은 인물 인터뷰였다. 편집장은 내 원고를 보더니 ‘동행’이라는 꼭지로 변경하자고 하였다. 취재하면서 어디를 가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참가자의 입장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평소 편집장은 ‘나’를 빼는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람인데, 이 글은 아예 ‘나’를 드러내고 쓰라니? 때로는 화자가 등장하는 글이 더 따뜻하다고 생각한 걸까? 나는 편집장의 요청대로 재미있었던 여행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기사를 완성했다. 지금까지 인터뷰, 공간, 공간과 사람과 같은 꼭지를 썼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장르인 동행을 완성해보았다. 글을 쓰기 전에 늘 어떤 부대에 담을지 구상을 하고 쓰지만, 때로는 동료의 조언으로 새로운 부대에 담기도 한다. 내가 한 일은 결국 인터뷰이의 일터에 동행하여 여행참가자 겸 기록자로 하루를 보낸 것이었으니, 동행이라는 꼭지보다 더 적절한 지면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