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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야기 >> 수업사례 특집2 – 고등학교 전문교과

수업이야기 >> 수업사례 특집2 – 고등학교 전문교과 ‘세계문제와 미래사회’ 수업 사례


≫ 편집부 정리(담당에디터:노슬아)


편집자주] 이 글은 의정부고등학교-의정부여자고등학교의 교육과정클러스터 수업 준비를 위하여 맹수용 선생님(의정부고등학교 역사 담당)과 염운옥 선생님(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이 나누신 메일 내용을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수업 기획의 출발점이 지난 가을호 <특집 – 2020 블랙페이스 논란에 대한 역사교사 잡담회>(이하 <잡담회>)였으니, 겨울호 <초협력교실>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수업 기록은 연구자인 염운옥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 간 <초협력교실>의 맥락으로도, 교육과정클러스터로 진행된 고교 학점제 ‘전문교과’ 역사 수업 사례의 맥락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으시며 편년체 중심의 역사 수업 너머의 가능성을 보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와 연구자의 따뜻한 협력의 기록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는 이 수업 기록을 통하여 독자 선생님들의 역사 수업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 상상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0년 8월 18일 늦은 9시 <블랙페이스 졸업사진 촬영 논란 관련 잡담회>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bangsoon87/132(2020 가을호, 130호 대담 정리 참조)


당시 맹수용 선생님은 블랙페이스 논란이 “결과적으로 잘못을 외부로부터 비판을 받은 이후 단절적인 과정을 통해 종결”된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며 “이걸(블랙페이스 논란) 하나의 교육적 계기로 삼아서 회복적으로 이끌 수는 없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으로부터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맹수용 선생님은 이미 9월 7일부터 의정부고등학교(8명)-의정부여자고등학교(7명)의 교육과정클러스터 수업인 ‘세계문제와 미래사회’에서 인종차별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업 계획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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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1주차 수업을 마친 후, 맹수용 선생님이 수업 고민을 담은 글을 염운옥 선생님 메일로 전합니다. 역사교육 코너 <초협력교실>에 역시 의정부고등학교 역사 담당인 이건주 선생님께서도 함께 하기로 한 상황이었습니다. 두 선생님의 고민에 염운옥 선생님이 답하는 방식으로 세 선생님은 블랙페이스 논란 이후 받았던 고민과 상처를 나누었습니다.(이건주 선생님의 고민은 <초협력교실> 원고 초반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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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에서 맹수용 선생님은 9월 7일에 진행했던 1차시 수업 시나리오를 공유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을 정리하여 보냈습니다. 1차시 수업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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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쩌면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 인종갈등이 제도권에서 논의되어야 된다는 신호탄으로 느껴집니다”라면서도 “즐기기 위해 졸업사진을 찍었을 순수한 학생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 웃고 넘겼다면 좋았을 텐데”라든가 오취리의 SNS에 “학생들 얼굴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맹수용 선생님은 “어떤 텍스트와 질문으로 학생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어보는 것이 적절할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염운옥 선생님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맹수용 선생님, 학생들 모둠별 토론하기 잘 읽었습니다. 학생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논란 초기에 샘 오취리 제안대로 학생들과 만남이 성사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커지네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소수의견 반대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 너무 중요하고, 정답을 정해놓고 그리로 유도하기 보다는 충분히 말하게 한 다음, 자신들의 논리 속에 있는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게 이끌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이 있을 때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차별은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KOREA BOO를 아시나요?’라는 기사1)를 재료로 삼아 보시면 어떨까요? 또, 몇몇 학생들은 샘 오취리가 SNS에 허락 없이 학생들 얼굴을 가리지 않고 태그 했다고 비판했네요. 그런데 졸업앨범에 실릴 사진이잖아요?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할 예정인 사진인데, 얼굴 드러난 것을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순 아닌가요? 라고 반문해 보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방어적 자세를 벗어나 샘 오취리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에게 발언권을 주는 일은 백인과 흑인에게 결코 동등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박노자 선생님이 한국에 대해 비판했을 때와 샘 오취리가 비판했을 때 반응의 차이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생각하게 해보면 어떨까요?

/ 염운옥 교수 이메일 중에서

1) KOREA BOO를 아시나요?: 친절함과 사랑을 가정한 인종차별 https://ppss.kr/archives/225952




9월 23일 2주차 수업을 마친 맹수용 선생님이 다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샘 오취리가 졸업사진을 허락 없이 태그한 부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공유되었습니다. 맹수용 선생님은 “당사자들은 자기의사로 졸업앨범에 올린 것이지, 타인의 SNS에 올리라고 한 적은 없다”는 학생들의 반응을 공유하며 반문이 쉽지 않지 않은 상황과 학생들의 생각이 정말 잘못된 것일지에 대해 고민을 나눕니다. 아울러 9월 17일에 진행한 2주차 수업을 공유하였습니다. COVID-19로 인하여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기에 과제를 내고 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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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용 선생님께서는 2주차 수업의 시작을 1주차 학생들이 보여준 인식의 균열에서 찾았다고 설명했습니다. 1주차 수업에서 학생들이 문제제기하였던 ‘졸업사진에서 블랙페이스를 한 학생들의 의도가 차별에 있지 않았다’는 점에 포착하여 수업을 기획해 본 것입니다. 이를 졸업사진 논란에서 잠시 벗어나 텍스트를 (린네의 분류학,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으로) 바꾸어 이야기해 보고자 했습니다. 분류학과 골상학 자체에는 차별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후대에는 분류학과 골상학을 이용하여 인간을 차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실재 역사를 통하여 방어적이던 학생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방어적 태도에는 아직 커다란 변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맹수용 선생님은 “차별 의도와 관계없이 차별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해보기를 원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학생들에게 혹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5개년 개발계획”의 방식으로 접근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공감대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접근해본다면 어떨까. 그렇지만 맹수용 선생님은 “마음 한편으로는 비판의 논조로 짚을 건 짚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 나온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합니다. 그러면서도 ‘블랙페이스’ 문화 자체에 대해서 아이들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내며, 염운옥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Korea Boo’(각주 1 참조)와 함께 수업에 활용할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통해 학생들에게 던질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맹수용 선생님께서 계획하신 3주차 수업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Q1. 외국 유학생들의 ‘블랙페이스’ 간담회를 보고 떠오른 생각은?

- 선생님이 눈여겨본 대화 : '한국인들이 오취리를 대한 태도'(갈루), '백인으로서 느끼는 긍정적인 인종차별(세자르)', '국적에 따라 다른 태도(갈루)', '한국은 과거의 ‘한민족’ 개념을 내려놓고 세계화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세자르)'

Q2. 만약 현민이가 우리 교실에 있었다면? 현민이는 '관짝 소년단' 패러디를 어떻게 느꼈을까? 학생들은 '관짝 소년단' 패러디를 했을까?

Q3. 'KOREA BOO'와 관련된 글에 담긴 '불편함'은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과 연결이 될까?



같은 날인 9월 23일 염운옥 선생님의 답변이 왔습니다. 염운옥 선생님은 졸업사진 논란을 계기로 “길게 보면 한국 사회에 이정표 하나”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그리고 비판의 초점은 학생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필리핀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여성 활동가의 글을 소개하며 졸업사진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찰해 볼 지점을 제안합니다.3)

이어 3주차 수업에서 Korea Boo, 외국인 유학생 ‘블랙페이스’ 간담회, 한현민이 느끼는 블랙페이스 사례와 함께 접근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안합니다. 염운옥 선생님께서 제안한 사례는 베트남 일식당에 욱일기를 내리게 한 한국인 이야기였습니다.4) 염운옥 선생님은 “욱일기 반대는 민족주의 문제가 아니라 반파시즘의 문제이죠. 블랙페이스도 위안부 피해도 '인권'이라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해 문제 바라보자는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염운옥 선생님은 3주차에서 다뤄지게 될 ‘블랙페이스’를 한국 사회의 유난한 블랙에 대한 차별과 블랙페이스 자체의 역사적 논점으로 나누어 접근합니다. 먼저 한국 내에서 유난히 블랙 차별이 가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염운옥 선생님은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아프리카 문화를 좀 더 알기 위하여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한-아프리카 재단, 아프리카인사이트, 제주 아프리카 박물관과 같은 기관을 소개하는 한편 5), 최근에 읽으신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의 소설 『울지마 아이야』를 소개하면서 “장기적으로 세계사 교육에서 아프리카에 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BBC의 20부작 아프리카 역사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UNESCO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에 의한 아프리카 역사 서술 프로젝트’의 결과물 『아프리카 통사(General History of Africa)』 (전8권)를 저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인류의 기원부터 노예무역, 식민화, 탈식민화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를 아프리카인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습니다.6)


2)외국 유학생들의 '블랙 페이스' 간담회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l?idxno=21410

2001년생 한현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4460.html

3) 강슬기(워킹그룹 소속, 엑소더스), 『난민혐오대응워킹그룹 월간 언론 모니터링』 no.7, 2020년 8월.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235483236831705&id=702999573413410

4) 韓 공무원 집념에 베트남 식당 '욱일기 간판' 교체 https://news.v.daum.net/v/20200923101244216

5) 최근 한-아프리카재단에서 진행한 ‘문화예술로 만나는 새로운 아프리카-2020 아프리카 주간’ https://blog.naver.com/kafoundation/222085816055

6)History of Africa with Zeinab Badawi https://www.bbc.co.uk/programmes/n3ct3gqn

프리젠터 자이넵 바다위(Zeinab Badawi)는 수단 출신으로 아프리카계 영국인 최초로 BBC 메인 앵커를 지낸 저널리스트입니다. 현재 1~20 전편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한글자막이 없어서 아쉽지만 아름다운 영상만으로도 빈곤과 기아의 검은 대륙이라는 아프리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깨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한-아프리카재단의 2020년 아프리카 주간 행사 가운데 한복을 입고 판소리를 부르는 카메룬 출신 소리꾼 로르마포의 공연을 소개합니다.


“만일, 흑인을 더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는 반론이 있다면 예로 들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판소리 부르는데 어울리게 한다고 얼굴을 한국인에 가깝게(?) 노랗게(?) 칠하지는 않죠. 멋진 문화를 인류가 함께 즐기는 시대, 어떤 자세로 타 문화를 대해야 할까 생각하게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보고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염운옥 교수 이메일 중에서


이어 블랙페이스 자체의 논점에 대해서는 블랙페이스 공연의 역사적 배경, 노예제 폐지운동과의 관계, 블랙페이스 공연 배우가 짐 크로(웃음거리가 된 흑인 노예)와 엉클 톰(불쌍한 피해자 흑인 노예)을 동시에 연기했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이와 함께 학생들에게 무조건 “블랙페이스는 나빠”가 아니라 상세한 역사적인 맥락을 가르쳐주고 학생들에게 판단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국의 사례를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미국에서는 1865년에 노예가 해방되고, 블랙페이스 공연으로 흑인을 비하하는 동시에, 남부에서는 린치로 흑인 살해가 일어났습니다. 흑인 중산층들이 일으킨 상점과 사업은 파괴당했습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철저히 무너뜨린 것이죠.따라서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아주 정확하게 계급문제입니다. 흑인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조직적으로 막는 과정과 블랙페이스는 함께 진행되었던 겁니다. 흑인 린치에 관해서는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의 슬픈 노래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s)’가 있습니다. 블랙페이스는 이 모든 걸 떠올리게 하는 기호이자 상징입니다." / 염운옥 교수 이메일 중에서



9월 26일 3주차 수업을 마친 맹수용 선생님이 다시 염운옥 선생님께 대화를 신청했습니다. 염운옥 선생님이 공유해주신 사례에 대한 감상과 함께 한현민과 라디 친구들이 토로한 한국사회의 아프리카 인식을 공유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역사교사지만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네요. 한현민, 라디 친구들이 출연한 BBC영상에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 TV에서 아프리카에 대해 소개해주면 초원이랑 옷 벗고 있는 사람들만 나온다’, ‘아프리카에도 여러 지역이 있는데 아프리카로 퉁친다, 유럽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라고 하는데’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그렇네?

앞으로 세계사 교육에서 힘써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사 교육과정에서 아프리카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사를 어떤 관점에서 다룰 것인지도 역사교육계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를 한 적이 없는 듯 하네요.”
/ 맹수용 교사 이메일 중에서


이와 함께 맹수용 선생님은 3주차 수업 내용을 공유합니다. 아래는 3주차 수업 시나리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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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용 선생님은 이 수업에서 발견한 인상 깊은 장면 네 가지를 나누어 줍니다.


“첫째, 학생들은 대체로 유학생들의 대화에 공감하였습니다.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과 관련해 되돌아볼 점이 있다는 말들을 많이 했더라고요. 하지만 그중에는 외국인들의 주장이 확대해석이라며 불편함을 토로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 학생의 논리는 어떠한 이미지, 선입견으로 상대방을 판단 내리는 행위는 실제로 분류되는 대상들이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부 사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테레오 타입을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대화를 걸 경우, 웃어넘길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대표적인 사례로 다음을 들었습니다. “‘전라도 출신치고는 보수적이시네요’, ‘경상도 출신치고는 진보적이시네요’ 이런 말은 차별이 아니라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경향이 짙으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 말을 들어보고, 제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의정부’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느냐고요. 아이들은 부대찌개, 미군, ‘학력이 낮다’를 말하더라고요. ‘학력이 낮다’는 말에 좀 놀라긴 했는데. 그 다음 그렇다면 “의정부 출신치고는 똑똑하구나!”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들릴 것 같니?라고 물어봤어요. 근데 아이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더라고요.

하여튼 갈등 상황을 겪은 건데, 학생이 한 20분 정도 뾰루퉁하게 있더라고요. 근데 주변 친구들하고 저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 풀렸는데요. 그러고 나니까 저도 다음 시간에 서로의 다른 생각을 지속적으로 대화를 통해 나눌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좀 생겼습니다.

둘째, 아이들은 조나단, 라디, 한현민, 필명 '샤에바'가 받은 상처에는 공통적으로 '스테레오 타입, 선입견, 편견에 근거한 섣부른 판단, 그리고 상대방을 잘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작용했다고 짚어내더라고요.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자신이 겪은 상처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학생들도 경험이 있더군요. 한 학생은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 근무하셔서 찾아갔다가 미국인이 '눈 찢음'을 하는 걸 보았고, 한 학생은 온라인상 영어회화 수업을 하는데 동남아 출신의 선생님이 나이가 어린 자신에게 '오빠'라는 단어로 불러서 당황했다는 경험을 하였다고, 그게 korea boo 사례와 비슷한 것 같다는 말을 하였어요. 어떤 아이는 피부가 하얗다고 할 때 '백인처럼 하얗다'라는 표현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여학생은 자신이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데, 짧은 머리는 남성의 머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많이 화가 난다고.

셋째, 마지막 활동으로 “스테레오 타입, 선입견, 편견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판단했을 때,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차별로 볼 수 있나?”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그리고 네이버 단어사전에서 '차별'을 검색해서 보여주었고요. 학생들은 위에 나타난 사례들이 모두 차별에 해당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이 경우, 유학생의 대화에서 의견을 달리했던 아이도 동의했어요. 근데 이 아이는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차별 사례만을 보고 동의했더라고요.ㅠㅠ 이 아이와는 나중에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시간의 텀을 두어 보기로.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어떤 행위를 '차별'로 본다면, 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볼 수 있나요? 상처로 다가오는 행위가 차별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해볼 수 있을까요? 위에서 학생들과 함께 도출한 '스테레오 타입, 선입견, 편견에 따라 상대방을 재단하고, 그 판단으로 상대방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경우'가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생각도 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업 마치고 학생들이랑 같이 학교 문밖을 나가다가, 한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친구는 이번에 의정부고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친구예요. 학생은 의정부고 학생회장 당선자로서 페이스 북을 넘겨받았다고 해요. 그리고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졸업앨범에 대한 다양한 제안 메시지들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네요. 그 중 BBC 기자의 제안도 있었어요. 오취리와 만나서 대화하는 기획을 함께 해보자는.

그 학생에게 이런 기획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어요. 학생이 그러더라고요. 1. BBC라는 언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루어질지 걱정이 된 점이 좀 있고, 2. 오취리와의 만남과 대화는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게 보도가 되었을 때 밑에 댓글들이 걱정된다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아이들에게도 없었나 봅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SNS상에 노출되었을 때 달릴 댓글을 상상해보면, 아이들이 가질 걱정에 공감이 되더라구요. 저는 초기에 학교의 대처가 가장 많이 아쉬웠고, 학생회 아이들이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점도 아쉬워했었거든요.

이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번의 수업이 남아 있습니다. 2시간의 수업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 지어야할지 고민이 되네요. 블랙 페이스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긴 한데요. 다다음주에 있을 마지막 수업에 대해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어요. 결국 흑인에 대한 차별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차별 자체를 두고 수업을 진행하게 된 셈인데요.” / 맹수용 교사의 이메일 중에서


아래는 맹수용 선생님이 3주차까지 수업을 진행한 감상입니다. 조금 길지만 깊은 감동이 있는 내용이라 독자 선생님들께도 전문을 소개합니다.


한국사회에 은밀하게 내재한 인종차별 문화,

'블랙페이스'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보편적 가치 추구로 확장할 수 있을까?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교육의 단계, 천천히!"


1. 주변의 인종차별 문화가 '차별'임을 인지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대를 확산하는 과정을 경험해보면 좋겠다. 차별은 행위자의 의도/목적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느끼는 배제/소외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학생들은 주변의 말과 행동이 특정 사람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인지적 사고과정'이 필요하다.


2.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에 감정이입해보는 행위도 필요하다. 인지적인 사고과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지만,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무딘 학생에게는 감정적인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학생이 차별을 성찰하는 수업을 PC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차별행위로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는 교육활동이 필요하다. '나에겐 차별이 아닌 행위가 상대방에겐 차별로 느껴질 수 있나?',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 차별이 된다면, 차별의 경험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나 또한 이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나눠보기.


3.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나 자신에게 묻기. '나는 나여서 기분이 상해본 적이 있나?' 이 질문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중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나는 지구인/아시아인/대한민국 국민/경기도민이자 의정부 시민/시스젠더 남성/역사교사/30대/기혼자 등등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이 정체성들은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외부로부터 규정되기도 하는 것.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을 이유로 배제나 소외를 경험해본 적이 있나?(예: 유럽에서 아시아인으로서 느꼈던 차별의 경험) 또한 상대방이 규정한 편협한 정체성으로 판단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있나?(예: 부산 지역 출신의 사람에게, '주변에 배 타시는 분 계시지 않아?', '경상도 사람치고는 진보적이시네요.')


4. 상대방이 규정한 편협한 정체성으로 판단의 대상이 되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그리고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심지어 상대방이 규정한 정체성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왔던 정체성이라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 것인가?


5. 이런 맥락에서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 소년단 패러디'를 비판한 행위를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샘 오취리는 왜 학생들을 비판하였나?', '그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나?'라는 질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반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얼마나 부담되고 상처가 되는데, 샘 오취리가 너무 심했다.'라는 질문에 응대해야 함. '블랙페이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배려하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러한 의견들이 묵살 당하거나 무시 받을 경우, 인종차별 논의는 학생들에게 PC로 뭉뚱그려질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온당치 않은 것 같다.


6. '차별'논의 이전에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논의가 인종차별의 역사적 맥락, 특수성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교실의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상처'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켜볼 필요가 있다. 말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샘 오취리가 받은 상처는 무엇이었나?', '동시에 의정부고 학생들이 받은 상처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으로 전환해보는 것은 어떨까?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배려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7. "배려와 공감은 관용을 낳는다." 서로 받은 상처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협애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논의에 관용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함께 주고받은 공감과 배려, 그리고 관용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의 맥락을 따스한 공감의 눈길로 바라보고, 내가 경험한 소외의 감정과 동일시하며, 그 공감을 연대로 피워낼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 수업 후 맹수용 교사가 남긴 감상의 기록(전문)


9월 27일 염운옥 선생님은 이 메일에 대해 답을 주었습니다. “인종주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원론적 공부라면 이번 블랙페이스 사태는 실전 모의고사 같은 느낌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 안 하면 문제 못 풀겠구나, 그런 깨달음이랄까요.”


이와 함께 번역서를 한 권 추천하였습니다.

캡처.JPG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김충선 역, 오찬호 해제 『하얀 폭력 검은 저항』, 돌베개, 2016.


염운옥 선생님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책은 블랙페이스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아닙니다만, 블랙페이스가 유행하던 동시대에 미국 남부에서 극성을 부리던 KKK단의 폭력에 관한 책”이고 “번역서이지만, 청소년용으로 쉽게 쓴 책이라 참고할 만 합니다.”


그리고 국내 학자들이 쓴 차별 관련 책과 논문도 추가적으로 소개합니다. 아래는 책과 논문 정보입니다.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2013.

전의령, 「‘선량한 이주민, 불량한 이주민’ - 한국의 주류 이주・다문화 담론과 반다문화 담론」, 『경제와사회』 106, 2015. 6.
____ ,인터넷 반다문화 담론의 우익 포퓰리즘과 배제의 정치」, 『경제와사회』, 2017. 12.
____ ,「타자의 본질화 안에서의 우연한 연대 : 한국의 반다문화와 난민 반대의 젠더 정치」, 『경제와사회』, 2020. 3.


10월 9일 4주간의 수업 여정을 마친 맹수용 선생님이 다시 4주차 수업을 공유하였습니다. 4주차 수업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습니다.

캡처.JPG


맹수용 선생님은 수업을 마친 당일인 10월 8일, 수업일기를 작성하여 염운옥 선생님과 공유하였습니다. 이 내용 또한 유의미하게 읽히는 부분이 많기에 독자 선생님들께도 공유합니다.


오늘은 인종차별을 주제로 수업했던 마지막 날. 한 달 간 공부했던 과정을 돌아보는 나눔 시간을 가졌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을 시작으로 사회에서 논의되었던 인종차별은 성찰할 점이 많은 교육의 계기이기도 하였지만, 이제 막 인종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한국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생각의 차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불편함과 상처를 겪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은 말할 나위 없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지만, 차별문제에 대해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묘한 긴장감은 수업 내내 유지되었음을 떠올려보게 된다.


나는 섣부르게 수업 전 아이들과 마지막에 나눌 질문을 마련해 두었다. 다시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함, 내가 그리는 건강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아이들과 최근 우리학교가 겪은 일과 이를 두고 오고 간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무거운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Q1. 나는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이 어떤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Q2.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 인종차별을 주제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면?
Q3. 내가 바라는 한국사회, 나아가 미래 사회는 어땠으면 좋겠나?

우리는 수업에서 먼저 브래디 미카코의 책 『나는 화이트에 옐로에 약간은 블루』에 담긴 「스쿨 폴리틱스」라는 글을 먼저 읽었다. 이 책은 일본계 영국인인 저자가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겪은 일, 이를 두고 아들과 대화 나눈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 중 「스쿨 폴리틱스」는 서로 다른 출신, 사회문화적 환경을 지닌 아들의 두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상기하는 글이었다.

헝가리계 친구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친구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엄마와 아들이 이야기를 나눈 내용이 참 깊다. 이 글이 신의 한수였나 보다. 책의 소챕터 「스쿨 폴리틱스」를 읽은 아이들은 글에 담긴 마음의 깊이를 느꼈는지, 인상 깊은 구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자신의 경험담,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 등을 공유하였다.


아이들이 인상 깊은 구절로 가장 많이 꼽은 부분은 이것이었다.


“물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게 중요하지만, 선생님은 좀 달랐어. 어느 차별이 나쁘다고 하기 전에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건 뭐든 좋지 않다고 했어. 그래서 두 사람을 평등하게 혼낸 거 아닐까.”


이를 두고 A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고 문제의 해결방법은 이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서로 차별하고 상처받은 거에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건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서로 상처주지 말고 차별하지 말라고 쉽게 배웠는데, 지금은 어떤 차별, 상처가 더 심한가를 두고 싸우는 것 같아요.“

같은 구절을 두고 B는 "이야기에서 나타난 친구들 간 갈등 문제를 보고 동생과 일상적인 말다툼을 할 때, 서로의 부족한 면을 꼬집고 끌어내리는 것과 닮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진심이 섞여 있지 않은 말이지만 폭력은 말로도 휘두를 수 있고, 때로는 신체를 맞는 것보다 더 아플 때도 있다는 작가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어렸을 땐 참 쉽게 배운 건데, 나이를 먹을수록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된 걸까?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한 모둠에서 나를 찾았다. 자기들이 나누고 있는 질문에 대해 선생님이 생각이 궁금하다는 질문하였다.


"책에서도 말하는데, 10년 사이에도 차별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말하던데요.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지금의 논쟁거리가 후대에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는데, 이게 포괄적으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여러 종류의 차별 하나 하나를 이야기하며 싸우고 있잖아요.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어른이 되었을 때,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면 참 좋은 일이겠다. 인종차별, 젠더차별, 계급차별 등등.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중요한 문제로 안 만들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


옆에 있던 C도 말을 보탰다.


"우리처럼 이렇게 토론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후대에 문제 거리가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이 오고가는 순간의 감정이 왜 이리 좋을까?


드디어 수업의 마지막. 한달 간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공부에 대해 소감 나누기. 몇몇 아이들은 수업의 진행과정 자체가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고 말하였다. 착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왠지 선생님 앞에서 좋은 말, 착한 거짓말(?)을 해주고 있노라 생각했다. 이 친구들의 말은 솔직한 자기 생각일까 라며 의문을 가질 때쯤 D의 차례가 되었다.


D는 공부의 소감을 말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사과하겠다는 말을 건넸다. 무슨 사과일지 생각하려던 찰나, 지난 시간에 자신이 했던 발언 중에는 '지역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이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지난 시간 수업에서 D는 "차별이라 불리는 말들 중에는 실제로 대상의 특징이 그러해서 말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웃고 넘기지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은 경상도 사람에게 '경상도 사람치고는 진보적이시네요'라든가 진보적인 사람이 다수 있는 전라도 사람에게 '전라도 사람치고는 보수적이시네요'라는 말을 건네면, 웃고 넘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나는 곰곰이 듣다가 D에게 반문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 사람들이 '의정부 지역'하면 무엇을 떠올리니?" 이에 옆에 친구들이 "미군요", "부대찌개", "공부 못한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공부를 못한다니. 조금은 충격이었지만 여튼, 이와 관련해서 나는 "의정부 학생 치고는 공부 잘하네요?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떨 것 같니?"라고 반문했던 것이다. D는 약간은 굳어진 표정으로 "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묘한 긴장감, 내가 또 옳고 그름의 문제를 학생에게 지나치게 따진 것일까? D는 그 수업에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저 2주 동안 계속 제가 했던 말을 생각했어요. 지난 수업 때도 제가 말했던 거 생각했고요. 제 말은 특정 지역 사람들을 차별했던 말이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친구들한테도 미안하단 말 하고 싶습니다."

D의 고백은 교실에 잠깐의 침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 "괜찮아",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친구들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잠깐의 고민 뒤, "선생님도 실은 너에게 질문으로 상처준 것 같아서 2주 동안 생각을 꽤나 많이 했어. 상처받았을 텐데 미안해~" D의 소감은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수업의 마지막 소감은 자신없어 하는 E가 장식했다. 모둠 친구들이 E가 만든 질문을 전체 친구들에게 공유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였기에, 실은 E의 질문을 두고 이야기하려고 가장 마지막에 들으려 했는데, 벌써 집에 갈 시간이라니. 여튼 E는 마지막 소감의 기회를 자신에게 주어서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서 말했다.


"친구들이 아까 어떤 걸 이야기한 거냐면, 제가 친구들과 나누었던 질문인데요. 그 질문을 읽어볼게요.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 서로 정체성이 하나뿐인 사람은 없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에요.


우리 클러스터 수업 자체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거잖아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문제, 난민 문제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해야 해결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이 질문이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사회가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저도 주변의 친구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배우고 점점 사회, 세계라는 큰 범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헐, 이 친구 뭐지? 왜 이렇게 멋있어? 순간 이 교실에 있는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뻑을 느껴버렸다. 나는 순간 함박웃음을 지어버렸다. 그리고 '이 질문으로 이야기 나누고 가자고 아이들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일까?' 생각하며 수업시간보다 20분이 더 늦은 시계를 바라보고 아쉬움을 마음 한켠에 쓸어 담았다. 그렇게 한 달 간의 수업은 끝났다.


수업을 마치자 D가 나에게 오더니 "선생님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고맙지." 옆에 있던 F는 나에게 "오늘은 D랑 오붓한 시간 보내시게 저희는 빠질게요." 헐. 이 상황은 뭐지?!

D와 교실 뒷정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걱정되고 조심스러웠던 나의 마음을 건네어도 될까? 솔직한 내 마음. "아까 어떤 모둠에서도 이야기 하던데, 옳고 그름을 곧 선과 악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말야. 나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되, 사람을 선과 악으로 판단내리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공격받는 느낌을 주거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조심스러웠어. 그 과정에서 D가 상처받았던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해. 선생님의 말과 질문도 D에게는 불편했을 것 같고. 선생님이 그 부분은 사과하고 싶어."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잖아요? 지금 결말이 좋으니까 된 거죠." D가 답변을 툭 건넨다. 아 이런 서울 중심적인 말! 그런데 왜 이 순간에 이런 말이 좋을까? 그 동안의 묘한 긴장감이 씻겨내려갈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


E의 말이 떠오른다. 서로 잘 이해하기 위해 정체성이 하나뿐인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나? 그 말을 곱씹게 되었다. 나는 수업 이전에는 이 말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였다. 수업을 마치니 말장난 같지만 반대의 말도 맞는 말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체성, 마음, 생각은 흐르기에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나?


10월 11일 염운옥 선생님은 메일 답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8월 18일 맹수용 선생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수업은 이렇게 하나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마지막 수업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네요. 사실 읽으면서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선생님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 그걸 알아주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어른이 배운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모든 아이들이 이 아이들 같으면 한국 사회 미래는 걱정 없겠어요! 이 이야기 강연에 글에 인용해도 되겠죠? 앞으로도 여러 번 특강이 예정되어 있어요. 대학 연구소, 교사모임 등등. 마구 마구 이야기하고 다니고 싶어요.

브레디 미카코의 책 인용이 신의 한 수였군요.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나는 화이트에 옐로에 약간은 블루』도 좋군요. 얼른 주문해 오늘 받았답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이렇게 소통하면서 추상적이던 제 공부가 교육현장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계속 잘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염운옥 교수의 이메일 중에서





이어 2021 봄호에서는 수업 이후 학생들이 작성한 에세이 기록과 염운옥 선생님의 독서토론 강연 후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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