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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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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 김성우-엄기호, 따비, 2002

>> 박영진(경기 덕정고등학교)

-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따비, 2020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등교할 때 밖에 볼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 유독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때때로 우린 수업에서 분노하곤한다. 아이들이 내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였을 때, 그리고 해마다 떨어지는 아이들의 학력을 볼 때마다 주변 선생님들과 모여 아이들의 험담을 나누기 일쑤다.


  2년차 교사인 나도 비슷한 분노를 경험해보곤한다. 올해는 포트폴리오로 글쓰기 수업을 계획했다. 나는 수업 과정에서 아이들이 현대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마음으로 온 열과 성을 쏟아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는데…. 아이들의 글을 살펴보기 전에 방금전 가르친 내용과 관련된 사료와 기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선 소위 현타(?)가 왔다. 그간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열심히 자료를 찾았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서 수업을 준비했는가…. ‘한나라’ 하나만 3시간을 이야기하고 한 무제를 그렇게 언급했다. 그러던 세 번째 시간, 바디맵 그리기 활동 중에 내게 ‘흉노’가 누구냐고 묻던 그 학생의 표정과 이름을 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는 대체 어디서 올까? 학생들의 집중력 문제? 또는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의 부족? 다양한 가설을 세워볼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은 나는 ‘문해력의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본다. ‘역사의 언어’로 만들어진 역사책과 역사교과서 그리고 더 나아가 교사의 역사 설명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거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는 이러한 학생들의 기본적 문해능력의 하락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리터러시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책은 두 학자들의 대담으로 이뤄져있다. 영어교육을 기반으로 언어연구를 하는 김성우 교수와 문화연구를 하는 엄기호 교수가 그들이다. 사실 필자는 최근에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리터러시와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소 기대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보다 높은 리터러시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을 갖고 읽고싶어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다소간 거리가 느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앞으로 시대 변천에 따라 어떤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 나갈 것인가’보다, ‘시대를 관통하는 문해력 증진방안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보다 우리에게 혜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미디어’라는 매체에 의해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매체’라는 그릇이 변한 것일 뿐, 언어를 통해서 의미가 전달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문학에 조예가 있는 학식있는 사람’으로, 중세에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종교 개혁 이후에는 ‘자신의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 역사적 사회적 맥락마다 리터러시에 대한 태도나 그에 대한 가치 부여 방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불변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의미가 구성되어 온 것이죠. 책 속에서 pp.17 – pp.18.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의 등장도 위 문장 속에서 ‘문해력을 지닌 사람’의 의미가 변해가듯, 21C에 필요한 사람도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방점이 찍힌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기서 우리는 ‘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게된다.


  그렇다면, 읽는 것과 역사교육이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에 온라인 수업상황이 계속 지속되면서 학생들에게 정보매체를 활용한 수업을 몇 번 시도해봤다. 단순히 많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위키 등의 자료를 검색해서 최근의 세계 현대사적 내용을 찾아보도록 수업을 해봤다. 그러나 현실은 낭패. 학생들은 하이퍼링크의 늪에 빠졌고, 성공적인 역사학습이 아닌 표류하는 역사학습을 했다. ‘검색하면 다 나오지’라고 생각했는데…. 모 선생님의 말처럼 검색해서 나오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였지, 학생들은 ‘데이터’를 ‘지식과 정보’로 만드는 능력이 부족했다.


  수 많은 내용 속에서도 선별된 의미있는 데이터들을 정보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에서 읽기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저자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으로 ‘읽기와 쓰기’를 꼽았다. 국어와 영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과 읽기와 쓰기는 매우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도 대개 ‘교과서’나 ‘책’을 통해 전달받고, 아이들이 배우고 알게된 내용을 ‘씀으로써 표현’하곤한다. 문해력을 읽음으로써 가지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역사를 배우면 역사적 언어를 이해하고 이를 나의 역사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인터넷 시대의 리터러시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징후적인 표현이 있는데, 바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뭐하러 책을 읽어요”라는 말이에요. 찾으면 나오긴 하겠죠. 근데 문제가 되는게, … 정말로 우리가 지식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쓸만한 지식이 검색한다고 바로 나오지는 않아요. … 두 번째는, 특정한 상황에서 쓸 만한 정보가 바로바로 나오는가라는 문제가 있어요.  … 수업을 하다 말고 “3분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검색해서 정리해줄게요.”라고 대처할 수는 없는 거죠. 지식은 대개 어느 정도 소화를 해서 내면화해야만 바로바로 공유하고 적용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단답식으로 연도를 묻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검색하면, 찾아보면 다 나온다’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 책 속에서 pp.163 – pp.164.


객관식을 잘 푸는 아이들, 외워푸는걸 잘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맹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공정성의 잣대로 ‘객관식 평가’를 지향하곤한다.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답과 깔끔한 성적처리가 그의 묘미이다. 그러나 “ ‘학생들이 진짜로 알고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사뭇 의문이 든다. 며칠 전 논술 수행평가를 채점하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쉽게 말해 ‘원말명초의 상황을 통해 홍무제가 해결하고자 한 당시 사회 문제와 홍무제의 대책’을 학생들의 언어로 물어본 논술이었는데, 몇몇 학생들은 이를 쓰는 과정 중에서 홍무제가 제시한 ‘육유’를 정말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 부모에게 효도해야한다….’ 등 하나하나를 외워 쓰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은 교사가 만든 프린트와 교과서의 내용을 시험을 보는 재료로 삼고 이를 외우기 바쁜 것이지, 역사적 내용을 당시 상황에 맞춰서 의미부여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출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시험의 재료’로써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문이 정보와 경험을 제공하고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기보다는 ‘다양한 출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시험의 재료’로 기능하게 돼요. 글을 잘 읽으라고 문제가 있는 건데, 도리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읽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 책 속에서 p. 117


이 책은 앞서 논의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단서는 ‘연결성’에 있다. 잠시 딴 소리를 하자면 나는 쉴 때 나무위키를 자주 보곤한다. 해당 사이트를 보다보면 시간 가는건 금방이다. 어찌보면, 단순히 새로이 데이터와 정보를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시간이 흐른다. 거기에는 파란 글씨 즉, ‘하이퍼링크’의 묘미가 숨어있다. 하이퍼링크가 정보와 정보를 연결함으로써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논문이건 교과서건 다 비슷하다. 논문은 ‘인용’이라는 형태로, 교과서는 선진 지식의 집약체의 형태로 우리에게 ‘하이퍼링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 아닌 연결되어있을 때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수업과 평가 배움과 삶이 연결되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된다. 이번 시간에 배운 내용이 다음 시간을 궁금하게 만들고, 다음 시간의 내용이 다음 평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역사로 동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 삶과 연관되어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 


  책의 제목에서는 유튜브와 책을 대비시킴으로써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리터러시에 대해서 말하는 듯 하지만, 결국 저자는 리터러시를 통해서 연결성의 증진 방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 그리고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과거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어떻게 ‘문해할 것인가’를 담고 있는 책이다. 부제 ‘삶의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라는 문구는 그런 부분에서 따온 책을 관통하는 내용이라 말할만하다. 


  지금까지 장황한 논조를 풀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학생들의 다양한 리터러시 증진’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은 역사교육계에서도 깊은 함의를 준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가 앞으로 계속 성찰하고 고민해야봐야할 깊은 고민거리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해서 답은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대신 ‘무엇이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읽는다’에 방점을 두고, 학생들을 이해하고 읽기 기술에 관심이 있는 역사교사라면 추천하고 싶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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