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 정욱식의 피스코리아 (6화, 끝)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병역제도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직접적인 계기는 더불어민주당의 4.7 재보궐선거 참패였다. 민주당의 여러 의원들이 ‘이대남’로 불리는 2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국민의힘 후보들을 지지하자 20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의 원천인 군대 문제를 다시 호출한 것이다. 여러 대선 후보들도 다양한 형태의 병역 제도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병역제도 개편 주장은 모병제로의 전환에서부터 남녀평등복무제와 군가산점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군가산점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으로 이미 폐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제도의 부활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 군(예비) 복무자에겐 아무런 도움을 못 주면서 공연히 젠더 갈등만 부추길 소지가 큰 것이다.
여성도 징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2년 안팎의 공백은 군복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학업이나 취업 등 남성의 사회진출이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탈감은 ‘기회비용의 상실’에 따른 ‘역차별’로 표현되면서 ‘여성 징병제 도입’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평등과 공정의 관점에서 본다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동시에 생각해봐야할 문제들도 많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18개월을 복무할 경우 사병수 만도 50만명 안팎에 달하게 된다. 이렇듯 병력수가 크게 늘어나면 군사적 합리성은 더더욱 떨어지고 국방비는 더더욱 올라가게 된다. 반면 군복무기간을 대폭 단축하면 현대식 군대에서 더욱 중시되는 전문성과 숙련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울러 여성 징집은 여성의 사회 진출 시기를 더욱 늦추게 되어 경제와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 유지에도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진단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군대에 징집된 인구집단의 크기가 사회에 남아 있는 인구의 크기를 결정”한다며, 인구절벽 시대에 징병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바 있다.1) 그런데 여성까지 징집하면 사회에 남게 되는 인구는 더더욱 줄게 된다. 이렇게 되면 존폐 위기에 처한 대학들은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에 내몰리고 소비시장과 생산시장의 동시적 위축도 불가피해진다.
1) 조영태 지음, 『정해진 미래』 (북스톤, 2016년), 94-96쪽.
무엇보다도 젠더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세대에 비해 20대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또 부와 학력의 세습으로 청년 세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 성별과 관계없이 많은 청년들이 불행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남성 징병제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여성도 징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젠더와 관계없이 원하는 사람이 군대에 가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모병제가 바로 그것이다.
모병제 도입에 따른 다양한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모병제를 도입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과연 모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국방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안보에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들 우려를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필자가 제안하는 점진적인 모병제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징병-모병 혼합제이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이듬해인 2023년부터 복무기간을 12개월 이내로 단축해 의무병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군필자 가운데 지원병의 선발을 늘려가자는 것이다. 사병과 간부를 합한 총병력 규모는 2023년에는 40만 명으로 정하고 매년 1-2만 명을 감축해 2025년에는 35만 명 규모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갑작스러운 전환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완전한 모병제로 가는 토대를 닦을 수 있다.
다음으론 완전 모병제로의 이행이다. 시기적으로는 2026년부터이고 총병력 규모는 사병 15만 명과 간부 15만 명(장교 4만 명, 부사관 11만 명)을 합쳐 30만 명으로 상정한다. 사병의 근무기간은 24개월이고, 평균 연봉은 3600만원으로 정한다. 병력수가 너무 적은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30만 병력도 인구 대비 0.6%에 달해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또 군인의 비전투 업무를 크게 줄이기 위해 민간인 채용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30만 병력에 국방 분야에 종사하는 군무원과 공무원을 합할 경우 총 국방인력은 35-36만 명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병역 제도를 개혁하면 상기한 우려들은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우선 원활한 모병이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모병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근거는 임기제 부사관의 운영 현황에 대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2) 실제로 이 제도 도입 이후 2017년까지 선발 인원은 전체 목표의 50% 이하인 5천 명을 밑돌았다. 그러나 2019년에는 6,700명을 넘겼고 2020년에는 7,369명으로 늘어났다. 2020년 선발 인원이 2018년에 비해 62% 늘어난 것이다. 부사관 지원자가 늘어난 데에는 부대와 특기의 지속성, 병영문화 및 처우 개선과 더불어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3) 이러한 변화를 볼 때, 모병제 도입 시 모병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과거의 통계를 근거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2) 과거 유급지원병으로 불렸던 임기제 부사관은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현역 복무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일정 절차를 거쳐 하사로 선발해 6~48개월 복무토록 하는 제도이다.
3) 국방일보, 2021년 1월 17일.
모병제 도입 시 모병이 원활할 것이라는 근거는 또 있다. 우선 상기한 방식으로 모병제를 도입할 경우 징병제를 유지할 때에 비해 사병 인원은 절반으로 주는 반면에 잠재적인 모병 지원자는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여성에게도 지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흡사하게 남성 80%, 여성 20% 정도로 병력 구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2026년 기준으로 3,600만원의 연봉을 책정할 경우 동 연령대의 평균 소득에 비해 고소득과 직업 안정성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국방비 문제를 살펴보자. 모병제로 전환하면 국방비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팽배하지만, 상기한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면 오히려 국방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15만 명의 사병 연봉을 3600만원으로 정할 경우 사병 전체 인건비는 5조 4천억 원이다. 반면 2026년 이후에도 징병제를 유지해 30만 명의 사병을 두고 1인당 연간 급여를 1000만원으로 상정할 경우 인건비는 3조원이 된다. 이에 따라 모병제로의 전환 시 사병의 인건비 순 증가분은 2조 4천억 원이 된다.
그런데 2026년에 장교와 부사관을 각각 4만 명과 11만 명으로 정할 경우, 2020년에 비해 각각 약 3만 5천명과 2만 명가량을 감축할 수 있게 된다. 간부, 특히 장교가 전체 인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간부 감원은 상당한 예산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인건비를 제외한 병력운영비도 전체 국방비의 15% 안팎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병력 규모를 5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줄이면 비급여 병력운영비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아울러 병력 감축은 부대 규모의 축소, 무기와 장비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양적인 감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국방비 감축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모병제 도입에 따른 사병 인건비 증가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국방비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모병제는 징병제에 비해 군인의 동기 부여 및 숙련도와 전문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무기와 장비의 첨단화·현대화·자동화·기계화·무인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병력 감축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군인의 전문성과 무기·장비의 고도화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군사적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징모 혼합제와 모병제 도입이 간부 충원 구조의 개선으로 이어지면 이러한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임기제 부사관 선발 대상으로 직업 사병의 비율을 높이고 장교 가운데 일부를 직업 사병 가운데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병과 초급 간부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간부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병력 감축을 전제로 하는 모병제 도입과 이에 걸맞은 국방비의 하향 조정은 다양한 이익과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모병제 도입에 따른 군사력의 ‘질적’ 향상은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위협에도 적절한 억제 능력을 구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동시에 ‘양적’ 감축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기여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 활성화 및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병폐 완화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모병제는 군사안보와 인간안보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환기적 발상이 될 수 있다. 정치권과 군 당국이 ‘시기상조’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조속히 공론화와 제도 설계에 나서야 할 까닭이다.
우리가 병역 제도를 포함한 국방정책을 설계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제도 설계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병력 감축을 전제로 한 모병제 도입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은 타국이 침략하지 못하게 하고 침략하면 격퇴하고 응징하는 것을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상대국을 아예 없애버리는 걸 목표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전쟁을 봐도 그렇다. 미국은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지만, 이라크라는 나라는 여전히 존재한다.
2011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일부 국가들이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 카다피 정권이 종말을 고했지만, 리비아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남북한은 다르다. 전쟁을 막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무력으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맹위를 떨쳤었다. 여기서 북한 급변 사태는 북한의 남침보다는 북한 내부의 중대한 사태, 즉 쿠데타나 대규모의 대중 봉기, 심지어 심각한 자연 재해나 북한 지도자의 급사 등으로 야기되는 불안정한 상태를 일컫는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해 북한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면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흡수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 급변사태 대비론’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언론이나 전문가 등 단순히 민간 차원에서만 거론된 것이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시기에 한미 양국의 군 당국과 정부 차원에서도 깊숙이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당시 한미 양국의 군 당국은 북한 급변 사태 시 안정화 작전에 필요한 지상군을 46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그리고 미군의 역할은 해공군력을 동원한 지원 작전 및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와 탄도미사일을 확보하는 특수 작전 수준으로 한정하고, 한국군이 지상전이 주요 골자인 ‘안정화 작전’을 맡는다는 역할 분담 논의도 진행되었다.4)
4) https://www.cfr.org/report/preparing-sudden-change-north-korea
주목할 것은 이러한 무력 흡수통일론이 60만 명이 넘는 대군, 특히 대규모의 육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의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징병제와 대군 유지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육군 수뇌부가 병력 감축 및 모병제로의 전환을 한사코 거부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군복무 기간 단축 및 병력 감축 계획의 중단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국방개혁 2020’은 병력 규모를 군복무 기간 단축을 통해 2020년까지 68만 명에서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를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북한 급변 사태’의 범주에 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일의 사망이 한반도 정세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북한의 불안정 가능성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흡수통일을 추구했던 이명박 정부의 오판도 경계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에도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유행했었다. 반면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김정은 정권이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가급적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뒤이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흡수통일 배제 원칙을 분명히 해왔다. 또 ‘국방개혁 2.0’을 통해 10년 동안 중단되었던 군복무 기간 단축과 병력 감축안을 확정했다. 육군 기준으로 21개월이었던 군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2019년 60만명에 달했던 상비병력을 2022년까지 50만 명으로 감축키로 했다. 아울러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차원에서는 최초로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움직임인 이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단계적 군축 합의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을 단행해왔다. 그 결과 2017년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군사력은 2021년에는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1990년대 후반 이래 한미연합훈련은 연합훈련은 ‘방어’와 ‘반격’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어 왔는데,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이러한 계획은 유지되어왔다. 일례로 2019년 8월에 실시된 한미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까지 포함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유사시 북한 점령을 의미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한반도 유사시 무력 통일까지 추구하려는 작전 개념 및 전력이 문재인 정부시기에 증강되었다는 것이다. 미래합동작전개념에 따른 입체기동부대 창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주도한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송영무는 “적의 종심지역으로 신속하게 기동하여” “상대의 전쟁 수행 의지와 능력을 최단시간 내에 마비 및 무력화시키고 전승을 달성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입체기동부대는 공중에서 투입되는 공정사단, 지상에서 진격하는 기동군단, 해상에서 투입되는 해병대로 구성된다. 유사시 이들을 동시에 투입해 평양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것이 미래합동작전의 요체인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대폭적인 군비증강에 힘입어 이들 부대의 첨단무장화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혹자는 비핵화의 전망은 어두워지는 반면에 북한의 핵능력 강화는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상기한 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미래합동작전개념 및 대규모 전력 증강에 기반을 둔 국방개혁2.0을 재가한 시점은 2019년 1월이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직후이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비핵화 전망이 어느 때보다 밝다고 하면서 그 비핵화 전망을 어둡게 하는 조처를 취한 셈이다.
혹자는 또한 유사시 북한 점령 계획과 능력을 유지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무력 공격을 해오면 북한을 아예 끝장낼 수 있다는 의지와 능력을 각인시켜야 억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 억제는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하고 있다.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은 민생을 돌보는 데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유사시 북한 점령 계획은 징병제에 기초한 대군 유지의 근거가 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도 연결된다. 징병제 고수는 경제 불황, 사회경제적 불평등,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젠더 및 세대 갈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징벌적 사회복무 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시 무력 통일론이 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북한의 핵개발 동기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북한의 핵무장 동기에는 ‘제도통일’ 즉, 남한의 흡수통일을 저지하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또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가 벌어질수록 북한이 비핵화보다는 핵무력 증강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도 자명해졌다. 이는 거꾸로 한국이 유사시 북한 점령 계획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군사력도 이에 맞게 조정하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추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임을 말해준다.
이를 위한 대전제는 한국의 국방정책 목표를 재정립하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외부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 보위” 및 “평화통일 뒷받침”을 양대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국방정책의 1차 목표는 외부의 위협과 침략을 억제하고 억제 실패 시 격퇴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작전계획과 한국 정부의 국방정책에는 한반도 유사시나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무력 통일까지 추구하려는 목표도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의 국방정책이 억제와 격퇴를 넘어 무력 통일까지 염두에 두면 엄청난 병력과 무기 및 장비가 필요해지고 유사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동반하게 된다. 국방부는 미래합동작전의 목표가 “최단 시간 내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종결한다.”는 데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 및 북한의 저항 능력과 핵무장을 고려할 때, 대북 점령 및 안정화 작전은 ‘끝나는 않는 전쟁’을 초래하고 남측에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낙관주의가 전쟁에 투영되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세계 1·2차 대전, 북한의 남침에 의한 한국전쟁과 뒤이은 유엔군의 북진통일 시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등이 말해주는 교훈이 있다. 이들 전쟁은 하나 같이 낙관주의로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를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낳았다. 유사시 북한을 무력으로 흡수통일하겠다는 과도한 군사주의를 성찰해야 할 까닭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국방정책의 목표를 ‘방위, 혹은 억제 충분성’에 두고 전력 구조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병력 감축을 전제로 한 모병제 도입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하는 것이다. 필자가 제안한 것처럼, 모병제 도입을 통해 정규군 규모를 30만 명 정도로 감축하는 것은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동시에 모병제 도입을 통한 정예군 양성은 군인들의 숙련도와 전투력을 높여 대북 및 주변국에 대한 억제력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정욱식의 피스코리아’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고 고민하는 여정을 안내해주신 정욱식 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