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야기 >> 고등학생 역사 동아리 활동의 기록
>>황세현, 엄민식(경기 상현고 2학년 학생)
황세현 : 나는 평소 일제강점기 전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세계적인 격변기이기도 하고, 식민 지배라는 다시없을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으며, 냉전을 배경으로 독재를 경험한 다사다난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핑계로 역사 관련 책을 읽거나 탐구 활동을 하는 것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러던 중 1학년 말 역사 선생님께서 역사 탐구 동아리 참여를 권유하셨다. 나는 평소 하지 못한 토론 활동과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역사 동아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엄민식 :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봤을 만한 문구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문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과거의 사실에 근접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역사가 힘의 논리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되어 본래의 역사적 진실에서 멀어져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역사가 다루어지는 방식을 보게 되면 사람들의 바램대로 역사적 사실이 ‘사실’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유튜브와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의견들이 사회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 같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혼란한 정보화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내가 역사 탐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이다.
황세현 : 역사 탐구 동아리 활동은 시작도 전에 난관에 부딪쳤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거의 1학기 동안 역사 탐구 동아리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야심차게 준비했던 선거 캠페인 등 여러 활동들이 무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등교하는 일수가 줄어들며 수행평가와 지필고사 준비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7월 초, 드디어 제대로 된 첫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다.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라는 책을 읽고 발제문도 써보고, 함께 모여 의견 교환도 하였다. 독서토론 후 책의 저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님을 초청하여 저자특강도 열기로 하였다. 기대했던 첫 동아리 활동이었지만 책 제목이 어려워서인지, 공부가 바빠서인지 이 책을 완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특히 주목해서 읽은 부분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로 촉발된 역사 전쟁 이야기와 역사 수정주의 그리고 반일종족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역사 교과서 문제와 반일종족주의는 뉴스에서 여러번 들었으나 전혀 관심 밖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역사 교과서 문제와 역사 수정주의에 관한 부분은 내가 무시해서는 안 될,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요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충분히 의심되는, 특정 사람들의 이념이 담긴 역사 재해석 및 수정주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가 아닌 특정 부분만을 발췌하거나 편향된 자료를 사용하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으로서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개하였다. 어떤 연구자는 위안부는 돈잘버는 매춘부였다고 말하며 그 근거로서 일본군 점령지에서 일한 어떤 위안부의 임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자료는 일본군 점령지의 초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액수만을 보고 주장하는 잘못된 자료라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책을 읽고 나서 역사 왜곡과 역사 부정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진실이 묻혀지고 조작된 역사, 수정된 역사가 정설이 되어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루해 보이는’ 역사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 같았고, 이런 사람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 역사 부정문제에 실천적으로 대응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독서토론 활동의 연장으로 계획된 저자특강을 더 열심히 준비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정되어 기획된 저자특강은 1학년과의 공조로 진행되었다. 줌(ZOOM) 온라인 화상 회의를 이용해서 어떤 역할이 필요할지를 회의한 후, 2학년을 중심으로 홍보팀, 출석팀, 사회팀, 질문팀, 소감문팀 등으로 모둠을 구성하여 1학년에서 각 팀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이 합류하였다. 내가 속한 홍보부에서는 이번 저자특강을 홍보하는 팜플렛이나 포스터 등 홍보물을 만들고 학교에 설치하거나 각반 반톡에 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역사 저자특강을 준비하면서 저자특강을 들으려는 학생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심지어 원격수업 중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참여율이 더 낮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홍보부의 역할에 더욱 책임을 느꼈다.
홍보부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부원들에게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 어떤 것을 홍보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1학년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1학년들은 미술 수행평가로 미리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고 했고, 우리는 미리캔버스 팀과 포스터 팀으로 팀을 다시 한번 나누고 작업을 시작했다.
회의 결과 홍보물에 들어갈 내용으로서 저자에 대한 정보와 온라인 저자특강 참여 방법, 생기부 입력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나름 열심히 포스터와 카드뉴스를 제작하였다. 오프라인에서 거의 만난적이 없는 동아리 부원들이었지만 예상외로 서로 협조가 잘 되어 시의적절하게 포스터도 완성되었고 1, 2학년 각 반 반톡에도 홍보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다.
저자특강 당일, 역사동아리 부원들은 각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기를 가지고 학교에 모였다. 강의 시작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나와 동아리 부원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시작도 전에 걱정부터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저자특강에 참여했다. 옥의 티처럼 중간에 동아리 부원들이 준비한 기기의 배터리가 다되는 일이 발생하기는 했으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저자특강에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님께서는 위안부 문제의 의미와 당시 일본의 전쟁 상황과 위안부의 연관성,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실제 위안부의 실상 등을 설명해 주셨다. 이번 저자특강을 통해 역사적 진실이 잊혀지고 묻히지 않도록 ‘기억’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엄민식 : 우리가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책 읽고 저자특강 준비하기’였다. 우리는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라는 제목의 책을 각자 읽고 함께 독서 토론 하면서 느꼈던 점을 공유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정확하고 편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였으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책을 출판하였다.
학생이 주체가 되어 역사 저자특강을 준비하며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번의 회의를 거치며 각자가 할 역할을 배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가운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무더운 여름방학을 지나며 갑자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 심각해진 것이다. 저자분을 직접 만나 한 공간에서 생생하게 강연을 듣는 것이 우리가 가장 원하는 바였다. 하지만 역사부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역사 저자특강을 진행하려 했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 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저자분께서 직접 오시는 게 아니라, ZOOM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강연자를 만나기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니까 각자가 맡은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회자와 출결 팀 팀장을 맡았다. ‘두 가지 일을 맡는 게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컸다. 그래서 역사 선생님께 많은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고, 팀 내에서의 역할 배분을 통해서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저자특강 당일, 저자 분께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의를 멋지게 진행하셨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읽은 책을 쓰신 분의 강연을 직접 들으니, 책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할 수 있었고 저자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탈진실의 시대, 역사 부정을 묻는다.’를 읽고 저자 강연을 들은 후에, 나는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 동시에, 자료 해석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자료를 선별적으로 골라서 자신의 주장에 맞게 재조합하는 행위,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이 보고 싶은 내용만을 보면서 그 내용만을 토대로 역사를 해석하여 이끌어 낸 주장은 타당성이 전혀 없으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이렇게 역사를 제대로 마주 보지 않으며 역사를 평가하려 드는 것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엄민식 : 역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름방학을 앞두고 구술사에 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구술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구술 면담을 해야 할지 전혀 알수 없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에게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교실’이라는 책을 주셨다. 그 책에서는 구술사에 대한 여러 사례들과 구술 면담 과정들도 나와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구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교실’이라는 책에서는 구술 면담 활용이 지역사를 알아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 주변에서 용인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신 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역이 신도시여서, 개발되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 사셨던 분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버지와 구술 면담을 결정했다. 이 지역의 변천 과정을 아는 분을 찾기는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이 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면담을 전개해 나가는 것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 했는지에 주목하는 게 용이했기 때문이다. 면담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대학생이 되서야 학내에서 열린 사진전과 대자보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게 되셨다고 한다. 그 당시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들으며, 나는 그 때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개학 후 우리는 용인에서 출생하신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의 증손자분을 구술 면담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김혁 장군이 용인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라고는 하지만,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아 친근하면서도 생소했다. 따라서 구술 면담 전에 미리 독립운동가 김혁에 대해서 조사하였다. 이러한 문헌조사를 통해 김혁이라는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구술 면담 과정에서 나는 문헌조사를 하면서 생겼던 의문점을 질문드렸다. 내가 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구술 면담 과정에서 나는 문헌조사를 하면서 생겼던 의문점을 질문드렸다. 내가 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은 당시에 협박을 많이 받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시 가족의 삶은 어떠하였나요?
2. 자유시 참변에 대해 김혁은 어떤 입장이었나요?
3. 용인 출신이였던 김혁이 어떻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었나요?
이 중에서 특히 자유시 참변에 대한 김혁의 입장이 궁금했다. 왜냐하면 자유시 참변은 한국사 시간에 이미 배운 사건이기도 했고, 만주 무장투쟁의 역사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여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구술 면담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대한 지식을 보다 더 확장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무장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직접 만나 구술 면담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무장 독립 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동아리 활동 시간이 부족해 온라인 상에서 자료 조사를 공유하고 질문지를 작성하며 의견을 조율하여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렵게 구술 면담을 준비하고 면담 기술에는 부족함이 많았어도 원만하게 구술 면담이 마무리 되었다.
황세현 : 구술 면담은 단순히 구술자 분에 대해서, 그리고 구술자 분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질문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술 면담 전, 동아리 단체 카톡방으로 구술자 분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었다. “만주 독립군으로 활약하신 김혁장군의 증손자분” 나름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독립운동가 의 성함에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다. 구술 면담 준비를 위해 김혁장군에 대한 인터넷 조사를 하기 전까지 ‘과연 내가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김혁 장군에 대한 정보는 꽤 많이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었다.
김혁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 정위로 근무 하시던 중,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흥업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시며 무장투쟁을 전개 하셨다. 이후 북로군정서와 통의부에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하셨던 분이었다. 또 기록은 없지만 그 유명한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를 이끈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나와 동아리 부원들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구술자분에게 드릴 질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김혁 장군은 언제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하셨나요?
2. 면담자께서는 김혁 장군에 대한 자료 조사를 아버지(김혁 장군의 손자)와 함께 열심히 하셨는데 어떻게 자료 수집을 하셨나요?
3. 김혁 장군의 비석과 추모비에 오류가 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오류는 수정되었나요?
4.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가족들의 삶은 어떠하였나요?
5. 돌아가신 김혁 장군에 대한 기억 중에 인상깊은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만들고 나서 사전조사를 계속 하는 과정에서 어이없게도 김혁 장군은 출소후 몇 년뒤에 돌아가셔서 구술 면담자분과는 단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5번과 같은 질문은 삭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정된 질문들을 토대로 구술 면담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구술 면담 기술은 어설프기 그지없었고, 면담자분이 한번도 김혁장군과 만난적이 없다보니 질문에 제약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구술 면담이 시작되자 면담자분께서 정말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미처 질문을 준비하지 못한 내용까지 설명해 주셔서 면담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보면 그 가족이나 독립운동가 분이 일제로부터 회유나 협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데 혹시 가족분들이 이런 일을 겪으셨냐’는 질문에는 김혁장군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신 후 고향인 기흥으로 돌아 오셨는데 면담자의 할머니 진술에 의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기흥땅을 전부 주겠다고 까지 하며 회유를 시도했지만 김혁장군이 모두 뿌리치셨다고 하셨다. 또 김혁장군은 고종황제의 최측근에서 경호하는 시종무관이셨고 625때 면담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경제적으로 정말 많이 어려웠다고 하셨다.
면담자 분은 김혁장군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 일, 비석과 기념비의 오류를 바로 잡은 일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특히 청산리 대첩에서 김좌진 장군만 강조되는 것은 만주 무장투쟁의 역사가 축소되어 이름없이 투쟁하신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잊혀지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셨다.
구술 면담은 우리의 우려와 달리 면담자분께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면담자께서 많은 준비를 해오셔서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김혁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황세현 :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보면서, 이외에도 ‘현재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역사 탐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 답을 찾은 것 같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지키고, 조작되고 날조되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고 알려서 과거의 일을 잊지않는 것이 우리 나라를 위한 일이고 일제에 의해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또한 구술 면담을 진행하며 정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면담한 분처럼 독립운동가에 대해 깊이 연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잘 알려지지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 소개하고 추모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활동일 것이다.
엄민식 :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역사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지배자의 역사만을 역사라고 착각하였다. 따라서 지배자의 역사만을 접하다보니 정작 피지배층인 다수의 사람들이 겪었던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 일련의 역사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지배자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보았던 나의 좁은 시선을 보다 넓게 확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역사 탐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야 할 것 같다. ‘혼란한 정보화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솔직히 아직도 자신 있게 답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관계 확인을 바탕으로 의심이 날 때 다양한 자료 조사를 하며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문헌 조사를 통해서든 구술 면담을 통해서든 말이다. 특히 독서토론 후 학생이 주체가 되어 저자특강을 준비하며 ‘맥락을 통한 자료 해석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왜곡된 역사적 사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가 지나면 역사 탐구 프로젝트가 끝이 난다. 하지만 나의 역사 탐구 활동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