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야기 >> 고민보다Go! : 걱정만 하긴 꽤 젊은교사들의 수업에세이
≫ 박해경(경남 해운중)
편집자주] 이번 여름호에서는 교실에서 처음으로 역사과 2015 개정(2018 부분개정) 교육과정을 맞닥트린 박해경(경남 해운중)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처음 적용되는 교육과정으로 수업하는 일은 여느 선생님에게나 어려운 일일 테지만 세계사 중심으로 편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더욱 다가가기 힘들어 보인다. 임용시험 때는 분명 공부했던 세계사인데, 수업 속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 공감하며 글을 읽었다. 같은 초보 교사로서 ‘나는 하루하루 역사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멈춰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편집자에게 이 글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 만난 교육과정이 어색한 선생님들께, 세계사 수업으로 고민이 많은 선생님들께 박해경 선생님의 고군분투가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싣는다.
올해 처음 2015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신 전국의 중학교 역사 선생님들, 어떠신가요? 저는 이 글을 통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수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무수히 논의되었던 새 교육과정이 실제로 교실에 적용되었을 때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떤 문제를 겪게 되는지 저의 경우를 이야기하며 여러 선생님의 경험과 조언을 듣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거야.”라는 믿음으로요. ^^
저는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초보 교사로, 현재 경남 창원시에 있는 남중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교 규모가 큰 편이 아니어서 중학교 2학년, 3학년 역사를 혼자 전담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2학년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1 교과서로, 3학년은 2009 개정 교육과정 역사2 교과서로 수업을 하는 나름대로 특별(?)한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학교생활은 수업, 생활 지도, 업무 모든 면에서 초보인 저로 하여금 매일 ‘생존’을 고민하게 합니다만,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교실에 등장하면서 올해의 생존 키워드는 단연 수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새 교육과정에 대한 제 고민과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새 교육과정으로 한 학기를 공부한 실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어 보려 합니다. 이 글이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공감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의 경우 ‘역사’라는 과목을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교사인 저는 현장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경험 자체가 올해 처음이었습니다.(이전까지는 한국사만 맡았습니다.) 때마침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중학교 2학년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교육과정과 교과서도 모두 서로 낯선 존재였죠. 그래서 저는 낯설다는 이유로 거부하지 않는 것, 학생들이 역사와 “친해지는 것”을 올해 역사 교실의 목표로 정했습니다.
우선 교사인 제가 교육과정, 교과서와 친해져야 했습니다. 새 교과서, 임용시험 이후 오랜만에 보는 개론서들과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서양사개론과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다루고 있는 키워드가 거의 비슷한 것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이걸 다 가르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용을 골라낸다면 무엇을 빼야 하는 것인지 많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수업 준비 과정에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적극 활용했는데, 특히 그림 자료나 ‘청소년의 삶과 꿈’ 부분이 학생들의 지루함을 깨고 수업을 환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3월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과 교과서 목차를 펼쳐두고 세계사 흐름의 전반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각 대단원 제목의 핵심 키워드를 찾아보게 했습니다. 1단원은 문명, 2단원은 종교, 3단원은 교류 등 키워드를 찾고, 그 키워드를 연결해 나가며 세계사 내용을 이야기하듯 설명했습니다. 각 단원에 대해 아는 내용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하며 세계사가 그렇게까지 낯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님을 학생들이 인식하게끔 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는 전반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썼습니다. 학생들이 한 대단원 안에서 여러 지역을 오가며 학습하는 데서 많은 부담과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해 중단원을 시작할 때마다 ‘지도를 활용한 전시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백지도를 펼쳐 지난 시간까지 배운 지역을 표시해 보고, 이번 시간부터 공부할 지역을 표시해 보고, 흥미 유발을 위해 뜬금없는 국가 찾기 퀴즈나 국경선 따라서 예쁘게 국가 색칠하기도 해 보고요.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역사가 어느 지역의 것인지, 적어도 위치는 알고 가자는 마음에서 지도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전시 내용을 끌어와서 내용의 연계성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세계사 교과서가 담고 있는 많은 키워드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키워드를 활용한 활동을 수업에 자주 넣으려 노력했습니다. 먼저 이미 많은 선생님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키워드 빙고 게임이나 카훗, 클래스 카드 등의 퀴즈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키워드 빙고의 경우 대단원을 시작하기 전에 이번 단원에서 중요해 보이는 단어를 스스로 고르게 하고 빙고를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교과서를 읽고, 중요한 단어를 추려보는 작업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 이후 수업을 하면서 ‘이거 빙고 할 때 봤던 단어에요!’라며 내용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데에서 수업 목표 달성에 아주 유익한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원을 마무리할 때는 퀴즈 프로그램이나 미니 골든벨 활동으로 주요 키워드를 정리했습니다. 그 외에 단어 분리수거, 십자말풀이, 숨은 글자 찾기 등 키워드 활용 수업을 중단원에 한 번씩은 꼭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중국사나 서양사처럼 전체 흐름이 커다란 부분은 왕조 단어 카드를 제작했습니다. 중국의 주요 왕조들을 단어 카드로 제작해 자석으로 칠판에 붙이고, 중국사 단원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들에게 직접 순서대로 나열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카드를 배열하며 흥미도 유발하고, 반복 학습을 통해 흐름 파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워드를 최대한 줄이고, 다양한 게임이나 활동을 통해 수업을 해도 결국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학생들이 파악하기 어려워하고, 학습량이 너무 많아서 학생들이 내용을 전부 다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의지가 있는데 내용이 너무 버거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교사인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불어 나의 수업 준비 미숙이 아닐까, 좀 더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며 기억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교사인 나도 이렇게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해 혼란스러운데,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이 수업을 마주하고 있는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새 교육과정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의 솔직한 의견을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싶어 몇 가지 질문을 위주로 소개해 보려 합니다.
“세계사가 어려워? (네!!!!!!!!) ...그럼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야?”
“사람 이름이 너무해요! 그 말이 그 말 같고,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많은 선생님들이 짐작하시겠지만, 학생들은 용어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세 글자에서 끝이 나는 한국사의 이름들과 달리 서양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길고 비슷해서 구분하기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름이나 사건 명칭만큼 지역 이름도 어려워했습니다. 길고 어려운 지역 이름도 문제지만, 세계의 주요 산맥이나 강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필요한 점에서도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3월 첫 주에 세계지도와 함께 대략적인 위치 학습을 했었는데, 단순히 대륙 명칭이나 주요 국가 위치뿐만 아니라 산맥, 강, 바다 등 주요 위치에 대한 학습이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세계사를 먼저 배우고 한국사를 배울까?”
“근데, 우리 역사를 먼저 배우고 더 넓은 세계를 배우는 게 순서가 맞지 않아요?”
우선, 대부분 학생들은 한국사를 먼저 배우고 세계사를 배우는 순서가 자연스럽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초등학생 때 배웠던 한국사를 복습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 역사를 먼저 배우고 나서 주변으로 점점 영역을 넓히는 것이 맥락상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세계사를 먼저 배운다하더라도 그 안에 한국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게 낯설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도 결국 세계 역사의 일부인데, 왜 전혀 우리나라와 상관이 없는 다른 나라들만 공부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럼 한국사랑 세계사를 아예 섞어서 공부하는 건 어때?”
“그건 절대 안 돼요. 헷갈려서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통합한 교육과정이 시행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연대기 순으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전부 다 통합해서 학습하면 한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으니, 역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세계사와 한국사를 분절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둘을 연결시키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대단원 안에서 여러 지역을 공부하는 순서는 어때?”
“그냥 한 지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배우고 싶어요. 그래야 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이 질문에 의외로 학생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대단원 안에 여러 지역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니, 머릿속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중국이면 중국, 유럽이면 유럽 한 지역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고 다른 지역을 다시 처음부터 배우는 게 공부하는 데 더 좋을 것 같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했을 때 앞뒤 내용이 연관성이 생기고, 흐름을 이해하는 게 훨씬 쉬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교과서의 내용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지역을 빠른 템포로 이동하고, 같은 대단원 안에서도 인도는 기원전, 유럽은 400년대 등 시기가 모두 다르다 보니 학생들이 지금 배우는 내용이 어느 지역, 어느 시기에 위치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위에서 소개드렸던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교과서가 제시하는 목차를 순서대로 따르는 중입니다. 재구성을 통한 능동적인 교육과정 조직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교과서가 제시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하게 되면서 키워드의 압박에 교사와 학생 모두가 억눌리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학생들의 단순 흥미뿐만 아니라, 역사적 탐구력과 사고력을 자극하는 수업이 필요한데 키워드로 대표되는 내용 전달에 대해서만 연구하느라 궁극적인 역사 교과의 목적은 잊고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학습량이 너무나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핵심 용어 위주의 내용 간소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새로운 역사1 교과서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여전히 많았습니다. 내용의 간소화를 위해서는 키워드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키워드는 남아있고 그 키워드를 연결하는 인과 관계, 배경 설명 등이 생략되다 보니 내용 전개에 더욱 큰 어려움이 생기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인과 관계가 필요하다 보니, 설명이 길어지고 교사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서양 중세를 수업하다 보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서로마 황제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이 나온 후, 바로 다음 장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교황의 카노사의 굴욕이 등장합니다. 이때 학생들이, 프랑크 왕국은 언제 사라졌고 신성 로마 제국은 갑자기 어디서 등장한 건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생각보다 세계사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특히 대단원 2단원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크리스트교의 네 종교를 중심으로 세계 역사를 학습하면서는 학생들이 각 종교가 현재 미치고 있는 사회적 영향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종교 분쟁과 관련된 뉴스를 함께 보기도 하고, 그 분쟁의 기원을 역사 교과서에서 찾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사 학습을 하며 세계 전반의 사회 문제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단순한 역사적 내용 학습뿐만이 아닌 사회 문제 탐구와 해결책 제안과 같은 고차원적 학습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교실에 도입되었을 때, 교사와 학생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기억나는 일들을 써보았습니다만, 사실 명확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시작할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어딘가에는 계실 거라 믿으며, 선생님들의 고민과 생각과 아이디어를 여쭤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이 글을 보냅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고 계실 존경하는 선생님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