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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와 역사 수업이 만났을 때

책이야기> 서평(2) : 박성호, 『화투, 꽃들의 전쟁』, 세창미디어

≫김택(전남 진도군내중학교)




필자는 한반도 남쪽 끝 진도의 시골 중학교에서 4년째 근무 중인 역사 교사다. 이곳은 3개 학급에 전교생이 37명으로 매주 11가지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고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본인은 지난 3년 동안 수업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여 그럴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다양한 수업을 비축하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주제들은 호기심과 금기 그 중간쯤 있는 것들이었는데, 가령 [XX학교 도굴계획 세우기] 같은 것이다. (폐교가 예상되는 학교인데, 원래 백제시대 절터였다. 폐교되어 건물이 허물어진 날 밤, 해뜨기 전에 보물이 묻혔을 곳으로 예상되는 땅만 빠르게 도굴하고 도망치기 위해 비싼 불교예술품과 사찰가람배치에 대해 배워보자는 취지의 실용적인 수업이었다.)


화투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초부터였다. 2015 개정교육과정(2018 부분 개정)으로 ‘업데이트’된 �역사1� 교과서가 올해 현장에 도입되면서 매주 2학년 수업 준비하기가 벅찼다. 내일 수업할 2학년 PPT를 제작하고 나면 밤을 새워야 1학년, 3학년 수업을 다 준비할 수 있었다. 밤늦게 3학년 수업을 준비하던 중 화투가 개항기에 조선에 들어와 일제강점기 내내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잘만 이용하면 3학년의 동기 유발 자료로 활용하고, 학습 도구로 사용하고, 수행평가 도구로도 써먹고 마지막으로 1학년 자유학년제에서 극락을 누릴 수 있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책을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머릿속에 많은 콘텐츠를 비축해놓는 것 또한 역사 교사의 바람직한 미덕이니까.   


  

화투의 기원 : 일본 귀족의 짝맞추기 놀이


“일본의 화투, 하나후다(花札)는 와카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시를 조개나 종이에 그려 넣어 짝맞추던 헤이안시대 귀족들의 전통적인 짝맞추기 놀이와 서구카드가 만나 탄생했다”     


필자는 첫 단원의 이 문장을 읽고 화투를 수업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화투의 기본 아이디어가 일본 귀족의 짝맞추기 게임에서 출발했다는 부분을 주목했다. 일본 귀족의 교양 중 하나는 고전시 와카(和歌)를 노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와카를 암기하기 위해 조개 껍데기 한쌍을 쪼개 와카의 한 구절을 두 개로 나눠 적어놓고 수많은 조개 껍데기들 중 맞는 한 쌍을 찾아 와카를 바르게 연결하는 놀이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필자에게는 역사 수업에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소재처럼 보였다.


역사 교사의 입장에서 짝맞추기 게임은 두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 교육용이므로 화투가 본래 건전한 게임이라고 주장하기 용이했다. 두 번째, 학습자가 화투의 위험한 매력에 빠질 위험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학교 선생님들을 공모자로 끌어들여 짝맞추기 게임을 수차례 함께해본 결과, 처음에는 재미있어하셨지만 서너 판 째에 들어서는 게임의 단순함으로부터 서서히 지루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짝맞추기 게임을 화투를 어깨 너머로만 구경해본 순수한 중학생들에게 화투의 기초 지식을 학습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화투의 형성과 발전


이후 일본과 포르투갈과의 교류 과정에서 화투는 서양의 인물과 상징이 담긴 트럼프 카드의 영향을 받아 에도시대~메이지유신에 걸쳐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변화했다. 따라서 이후 만들어진 화투의 모습은 이런 식이다. 1) 화투와 트럼프 카드가 결합되었거나, 2) 화투에 서양의 상징과 인물대신 일본의 와카, 사계절, 전설, 세시풍속을 담아내는 식이다. 화투의 이러한 측면은 사회/역사교과의 수행평가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해보였다.         

트럼프 카드와 결합된 형태의 화투


일본의 문화를 담아낸 화투는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개항기에 조선 사회에 유입된 뒤 빠르게 확산되어 100년에 걸쳐 조선의 문화로, 나아가 한국인의 문화로 정착했다. 하지만 화투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일본인의 문화뿐이다. 화투에 한국인의 문화와 이야기를 담아 디자인을 재구성한다면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유의미한 활동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화투가 들어와 유행했던 개항기~일제강점기에 쓰인 문학작품을 활용한다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심화학습을 촉진할 뿐 아니라 국어 교과와의 융합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최근 들어 화투를 한국적으로 재디자인한 상품들이 다수 출시되고 있다는 점 또한 좋은 참고사례가 됐다. 이러한 수업목표를 위해서는 교사가 화투 속 그림이 담고 있는 배경지식을 숙지하고 학생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 



화투 속 그림의 정체와 그 배경


이 책은 정체를 알기 어려운 화투 속 그림의 정체와 그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화투 안에는 계절별로 다채로운 일본의 꽃과 새, 와카와 세시풍속, 이야기와 전설을 담고 있다.     


먼저 대부분의 화투에는 일본의 와카의 전통을 담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4월이다. 화투의 4월은 한국인이 [흑싸리]라 부르지만 실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 꽃과 잎사귀를 아래로 드리우는 [등나무]이다. 등나무와 두견새를 4월에 넣은 것은 고전시 와카를 학습하고자 했던 귀족적 전통의 영향으로 보인다. 실제로 등나무와 두견새는 일본 와카의 여름의 상징물로 빈번하게 사용됐다. 가령 <고금화가집>에는 ‘우리 집 연못 끝에 있는 등나무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구나. 산두견새는 언제 와 우는 것일까. 벌써 올 때가 된 것 같은데’라는 구절이 있다.

옛 화투 4월 [등나무] 도안


    두 번째로 화투에는 일본의 세시풍속이 담겨있는데 푸른 소나무 위에 학이 앉아 있는 1월 [송학]은 일본의 고마쓰히키라는 풍습과 관련이 있다. 이는 중국에서 전해진 풍습인데 일본 귀족들은 장수와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로 어린 소나무를 뽑아 집에 심었던 것이다. 9월 [국화]에는 국화와 술잔이 조합되어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유래된 세시풍속인 중양절(重陽節)과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는 국화 물을 마시면 장수하고 병을 치료한다고 전해지는데 화투의 술잔에 수(壽)자가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중양절 풍속 또한 당풍을 타고 일본 귀족들 사이에도 유행하여 화투에 흔적까지 남기게 된 것이다.    

국화와 술잔

    세 번째로 에도시대의 역사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에도시대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화투가 확립됨과 동시에, 막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었던 시기였다. 실제로 화투에는 히데요시에 대한 다양한 상징물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똥]이라 불리는 12월은 실은 오동나무로서 천황의 상징일 뿐 아니라 도요토미 가문의 문장이기도 하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머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제왕의 상징으로 인식됐는데 이에 따라 12월 오동나무에는 봉황이 날아오는 모습을 담아 새로운 군주가 도래하리라는 염원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3월 [벚꽃]의 광패는 히데요시가 개최했던 ‘요시노 꽃구경’을 묘사하고 있다. 꽃구경은 종래 일본 귀족들에 의해 행해지곤 했지만 일본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벚꽃 향연을 개최하여 꽃구경을 정치적 이벤트로 만든 것은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는 오사카를 거쳐 요시노의 벚꽃을 보러가는 길 일대에 찻집을 설치하고 연못에는 장난감 배를 띄우고 예능꾼 장사꾼 등을 모이게 했다. 멋부린 사람들이 통과하는 거리에는 말을 고정할 울타리가 설치되고 오색단자에 휘장이 쳐졌다고 한다. 이후 휘장을 두르고 향연을 즐기는 것은 절대권력을 소유하고 과시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12월 오동나무(좌), 3월 벚꽃(우)


    

추천 : “몰라도 되는데 써먹긴 좋아요”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화투를 이용하여 짝맞추기 게임을 진행하고, 화투를 한국적으로 재구성하는 활동을 부여했다. 도박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소중하니까.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만큼 호감을 보였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였다.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등의 우려가 걱정됐지만 다행히도 이해해주시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3일 동안 수업준비 걱정도 덜고,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사사로이 필자의 지적 호기심도 충족했으니 7000원으로 최대의 행복을 뽑아냈다고 자평하겠다.

본 글에 묘사한 정보 외에도 화투에는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함축되어 있어 있다. 이 책을 이용하여 색다르고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수업을 구성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넓다고 본다. 몰라도 되지만 써먹긴 좋다. 색다른 수업을 구성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자. 에도 막부부터 현대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화투 도안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 및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s://japanplayingcard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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