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 하루답사 참가기
>> 이아린(경기 저동중)
봄 하루 답사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을 하루 답사 공지가 올라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 하루 답사의 주제는 ‘3.1운동과 북촌’으로, 안국 및 종로 일대를 살펴보는 일정이었다. 마침 하루 답사로부터 열흘 뒤 현장체험학습으로 아이들과 종로에 가기로 했던 터라, 이번 답사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부끄럽게도 종로 3가와 안국역, 북촌 한옥마을은 나에게 역사보다는 맛집 답사를 하던 단골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익숙한 장소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답사 날을 기다렸다.
답사를 위해 모인 장소는 조계사 우정총국 터였다. 답사를 하며 계속 느꼈지만, 갑신정변을 공부할 때 말로만 들었던 우정총국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중에 근현대사를 가르치게 되면 아이들에게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임 장소에서 전역모 선생님들께서 준비해주신 물과 간식을 받고, 처음 보는 최첨단 장비인 무선 송수신기(?)와 함께, 하루 답사를 이끌어주실 은정태 선생님의 안내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우정총국 내부를 잠시 살펴본 뒤, 뒤쪽으로 향하자 구석진 자리에 있는 민영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민영환 동상은 안국동 로터리에 세워졌다가, 여기까지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동상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어 안타까웠다.
우정총국 바로 옆에 있는 조계사로 향했다. 오늘 답사 코스에 조계사가 포함되어있는 이유는 조계사가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인쇄소 ‘보성사’의 옛터였기 때문이었다. (조계사의 대웅전이 정읍에서부터 올라왔다는 데에 한 번 더 놀랐다.) 천도교계 출판사였던 보성사는 보성고보 안에 있었던 건물로, 1919년에 불에 타 현재 남아있지는 않았다. 답사지에 실린 사진 속 나무를 힌트 삼아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의 보성사를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조계사 뒤쪽에는 수송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넓지 않은 이 공원에는 수많은 기념비가 놓여있었다.
중동학교 옛터, 숙명여학교 옛터, 신흥대학 터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대한매일신보의 현장에 와있다니! 수업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뒤편에는 보성사 이종일 사장의 동상이 있었고 독립선언서 인쇄와 관련한 이종일 사장과 경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덕성여중이었는데, 덕성여중 자리에는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계 지도자들이 모여 3.1운동을 계획했던 것이다. 보성사에서 이곳 천도교 중앙총부 터까지, 3.1운동을 준비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기 위해 이곳을 오가셨을 분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가회동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는 김옥균 집터가 있던 곳을 확인하고, 백인제가옥이라는 한옥을 잠시 구경하였다. 골목골목마다 쉴 틈 없이 역사의 흔적들이 나타났다.
담임반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창 영화 ‘말모이’를 보고 있었을 때라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조선어학회 터가 반갑기도, 놀랍기도 하였다. 아주 좁다란 골목 옆에 덜렁 놓인 조선어학회 터를 알리는 비석을 보고, 조선어학회 사건을 상상해보며 몸을 떨었다.
가회동에는 손병희 집터와 김성수 집터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아웃사이더(필자의 표현)였던 천도교의 지도자와 호남 출신 양반이 이곳 북촌에 진출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길을 쭉 올라가다 보면 중앙고등학교, 옛 중앙고보가 나타나는데, 교정이 너무나 예쁜 곳이었다. 이곳의 숙직실에서 3.1운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2.8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3.1운동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유에서 학교에는 ‘3.1운동 책원비’가 세워져 있었다.
3.1운동 당시 불교 잡지인 ‘유심’을 발행하던 유심사 터에는 벽에 붙어있는 작은 안내문이 이곳이 유심사 터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며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한용운과 최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가회동, 재동 골목을 내려와, 낮에는 처음 와보는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두 사람의 집터를 확인했는데, 최린과 박규수의 집터였다. 박규수의 집이 이곳에 있었기에, 북촌에 살고 있던 김옥균 등의 젊은 북촌 양반 자제들이 쉽게 모일 수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이렇게 같은 동네에 모여 살면서 박규수로부터 개화의 영향을 받은 북촌 양반 자제들은 박규수의 집을 지나, 오늘 답사의 출발지였던 우정총국으로 향했을까.
점심으로 순두부를 맛있게 먹고 인사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맞은편에 보이던 운현궁은 원래 규모가 더 컸는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축소되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운현궁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일본문화원이었다. 운현궁을 맞은편에 두고 내려가는 이 길의 이름이 삼일대로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고, 길 이름에 걸맞게 3.1독립선언서 배부터가 나타났다. 민족대표 33인을 알리는 현수막을 살펴보며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찾았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독립기금 마련을 위해 건축을 시작했는데 3.1운동 때 건축비를 자금으로 사용하게 되어 공사가 늦어졌다고 한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지나 태화관이 있던 태화빌딩에도 가보았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없었더라면, 빌딩만 보고는 이곳이 태화관이 있던 자리인지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것 같다. 태화빌딩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는 민족대표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현대식 빌딩에서 1919년 태화관의 모습이 선뜻 떠오르지는 않았다. 태화관은 음식점이 되기 전에 이완용의 별장이었다는데, 그곳에서 독립선언을 하다니,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승동교회는 학생들이 모여서 3.1운동을 준비했던 장소라고 한다. 승동교회 입구에 붙어있던 사진들을 통해 교회의 오랜 역사와 함께, 과거와 달라진 모습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학생들이 이 교회에 모여 독립운동을 논의하였다는데, 3.1운동에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동교회에서 은정태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추가 답사인 익선동 답사에는 개인 사정상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다.
가을 하루 답사를 통해 북촌과 종로 일대를 돌아보며 3.1운동의 움직임을 되짚어 보았다. 오늘 살펴본 곳은 3.1운동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겠지만, 세도가부터 개화파, 그리고 독립운동가들 까지 여러 세대를 거쳐 다양한 사람들이 숨 쉬었을 공간을 걸어보며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가 무엇인지 잠깐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맛 집만 찾아보고 무심코 지나친 공간 사이사이마다 독립운동가의 집이, 그리고 친일파의 집이 있었다. 도심 곳곳에 무심한 듯 숨어있는 옛터들, 여기에 있었음을 알리는 표식들을 찾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은정태 선생님께서 집의 터, 집의 주인, 지번의 의미 등등 자세한 부분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신 덕분에 더욱 많은 것을 배워가는 답사였다. 아직 신규교사라 경험도 실력도 모자라지만, 머지않아 나도 아이들과 공간 공간을 직접 밟으며 함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부족한 글 솜씨와 기억력으로 인해 그날의 배움을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답사를 이끌어주신 은정태 선생님과 답사를 준비해주신 전역모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