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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티로스 Aug 10. 2023

월급... 얼마 받아요?

아내 식구들 첫 대면에서

글루틴 #글향 작가님의 글감이 소개되었다. '입금'이었다. 입금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월급이었다. 월급 때문에 웃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늦은 나이까지 결혼 준비도 못하고 있다가, 운이 좋게도 지인의 소개로, 가정어린이집을 10년 이상 운영하고 있다던 지금의 아내를 소개팅으로 해서 만났다. 나는 그 당시 영어학원에 학원강사 생활을 한 지 1년도 채 안 된 상태였다. 하지만, 둘이 만나면 대화도 너무 잘 되었고, 요즘 말로 티키타카가 잘 되었다. 그래서 서로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원장 대 강사였다. 누가 봐도, 그 여자가 저 남자를 왜 만나지? 할 정도로, 현실적으로는 짝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와이프 어린이집 근처로 신혼집을 장만했었는데, 그 동네에서 아내는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나를 만나고 결혼할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까지 결혼 안 하던 어린이집 원장님이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도니까, 결혼할 남자 집안에 엄청 부자라는 소문까지 낫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얘기하면서, 신혼 초에 둘이 엄청 웃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런 내용은 전혀 아니다. 그 반대였다. 가진 것 하나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만 살아가는 노땅이었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이번생은 글렀다'라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지금 아내를 만난 것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까지 말하고 싶다.


아무튼, 그렇게 아내와 나는 8개월 이상 연애를 잘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정 설날쯤이었나, 그때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가족들 한번 만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고민 1도 없이 "좋지"라고 말해버렸다.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도 못 한채, 그저 '우와 가족들 보자는 얘기는 결혼하자는 이야기 아니야? 우와 결혼하겠는데?!'이런 설레발을 치면서 약속 날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들 만나면, 다들 좋아하는 편이라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하는 것에는 이력이 나 있었다.


약속된 날이 왔다. (지금의) 큰 처형, 큰 형님, 셋째 처형 이렇게 세 분이서 대표로 나오셨다. 큰 형님께서, 그냥 편하게 소주 한 잔 하면서, 막내 처제가 남자 친구 생겼다고 하니까,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영광이라고 말씀드리고, 나도 술을 어느 정도 먹는 편이기 때문에, 와이프 식구분들께 아주 예의 있게 깍듯하게 서글서글한 표정 지으면서 분위기를 무르익어 갔다.


그때, 큰 처형께서 "지금 강사 하신다고 들었는데, 월급.... 얼마 받아요?" 라며 현실질문이 훅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무 꾸밈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200요!!" 그 당시, 나는 술을 못 마신 상태라서, 좀 더 꾸미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말해 버렸다.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남자가 월급 200 받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는지, 웃으면서 "200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지금 보면 상당히 부끄럽다. 그 당시 나는 술이 좀 취했기 때문에, 처형들의 얼굴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서로 얼굴 보면서 황당하고 '이거, 아니다'라며, 서로 몰래 눈빛으로 얘기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는 그날 좋은 기억들만 챙기도 집에 돌아왔고, 이제 결혼 날짜 얘기가 나오겠지, 하면서 그다음 날 와이프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 다음날 아내가...


"우리....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왜?"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남자에게 귀한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처가댁이 어디 있으랴. 그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그때 헤어짐은 충격이었고, 아픔이었다. 많이 아팠다.


그 이후로 어떻게 해서, 다시 만나서 결혼은 하게 되었지만, 그때 일 때문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게 마냥 즐겁게만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끼고 그 이후로 삶을 더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없다.


또 삶이 힘들어질만하면, 그때 질문을 생각한다.


"월급이... 얼마예요?"



※ 참고로 아내 가족분들, 처형분들, 형님들과 너무 잘 지냅니다^^ 참 좋으신 분들이세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ㅎㅎㅎ♡♡♡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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