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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티로스 Aug 21. 2023

이놈에 종내가~!

어릴 때 할머니집에서 오줌싸개

오늘 #글루틴 #글향 작가님께서 소개해주신 글감은 '사투리'입니다. 저도 고향은 경상도 지역이라 어릴 때, 사투리를 많이 썼었고, 대구 삼촌, 부산 고모들로부터 구수한 사투리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입니다. 그러한 시간이 어느덧 흘러, 40대 후반이 되자, 점차 사투리도 아닌 듯이 표준말도 아닌 듯한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어서, 사투리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글루틴 작가님들과 단톡에서, 먼저 글감에 대한 얘기들을 하다가, 글향 작가님의 '애린 왕자'의 갱상도 버젼으로 낭독해 주신 음성파일을 듣고, 각자 사투리에 대한 향수가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런 타이밍에 사투리에 대한 기억이 하나 떠 올랐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의 기억입니다.


저는 70년대 중반생이어서, 격동의 80년대를 거쳐 살아왔습니다. 왜 어느 다큐에서처럼, 흑백사진의 보도자료가 나오는 세대는 아니지만, 국민학교 운동회 때 인간 피라미드, 대중 버스에서 안내양 누나(많이 본 건 아님,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버스 토큰 등의 어렴풋한 기억들이 있는 세대입니다.


 

ㅎㅎ너무 거리가 먼 사진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기억들도 어렴풋하게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80년대 성장기에 있으신 분들은 아마 모두 여유롭게 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도 슬레이트 집, 방 한 칸 있고, 마루방 하나 있고, 정지(부엌) 하나 있는 공동 주택? 에 살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밑에 4형제가 아옹다옹 살았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네 형제 먹여 살리라고 하면, 두 분이서 맞벌이를 하셔야 하는데, 자식들 네 명을 학교 보내고, 회사도 다니시고, 아마 힘드셔서, 방학 때마다 두서너 명을 할머니댁으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7살부터는 한 번씩 할머니댁으로 한 두 달씩 지내고 왔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 집은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었던 버스 안에 안내양 누나의 기억도, 할머니집까지 가기 위해서는 3~4번 갈아탔던 것 같은데, 그 기억 중에 아주 어렴풋이 있습니다. 마지막 버스 노선에서는, 비포장 길에 버스 지나가면, 먼지가 막 일어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버스에서 내려서도 짐을 들고 한참을 걸어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할머니집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너무 좋으신 분이셨으나,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 일찍 여의시고, 혼자서 사시는데,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으셨던지, 우리가 가는 것을 그렇게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도 경상도 시골분이시라, 그렇게 다정하지도 않으셨고, 우리가 가는 것을 반기지 않으셔서, 우리가 뭐 할 때마다, 혼을 내셨습니다. 


저희가 어릴 때니까, 마당 뛰어다니고 하다 보면, 물건도 넘어뜨리고 고추 말려 놓은 거 밟기도 하고 농작물 상하게 하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이놈에 손아~~!! 이놈에 종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를 부르실 때, 종내가~종내가~ 하시니, 정확한 뜻은 모르고 우리를 그냥 부르시는 건지 싶었는데, 경상도 사투리에 사전 뜻까지 나오더라고요.




겨울방학이었던지, 한참 추운 날씨에 온돌방을 따뜻하게 한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곤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께서 불을 지피시고 했지만, 저와 동생이 따뜻하고 재미나니깐 옆에 있다가 솔방을 하나씩 던지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일을 하려 가시고, 우리는 재미있어서 계속 솔방을 던지며 불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야이~손들아~불 장난하면 자다가 오줌 싼다"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좀 더 하다가, 마지막에 할머니의 불호령을 한번 더 듣고서야, 자러 들어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이불자리에 온도가 다른 겁니다. '클났다'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겁니다.


"아이고야, 와이카노~! 이 큰 이불에다 오줌을 싸노!! 이놈에 종내가~~~!!

윗집 가서 소금 얻어 온나~!!"


저는 할 말도 없고 이유도 모른채, 키를 머리에 덮어쓰고 윗집으로 갑니다.



윗집에 도착하자마자, 윗집 할머니께서는 오줌싸개 왔다면서, 빗자루를 들고 키를 두들겨 패시고 소금을 뿌리십니다. "와 오줌 싸고 하노~~!! 으잉 으잉~~"




물론 100%의 기억으로 적은 글을 아니지만, 그런 잔상만을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오늘 글감으로 한 40년 전 기억으로 소환해 봤습니다. 한 5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살기 힘들어서 어릴 때, 서로 좋은 기억들은 없지만, 시간이 흘러서 부모님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시고는, 할머니의 정도 많이 느끼면서 자라기도 했답니다.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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