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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티로스 Aug 26. 2023

아들, 아빠 한번 안아줄래?

가정에서 아빠 자리 만들기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는 서먹할 때가 많다. 초3 아들은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하교 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는 자주 이야기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나랑은 관계가 서먹한 관계였다. 아들이 갓난아기 엿을 때, 갓난아기를 대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갓난아기를 어떻게 봐야 할 줄 몰랐다. 물론, 내 새끼에 대한 기쁨과 경외감이 있었지만, 갓난아기를 케어하기에는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갓난아기가 울면서 보챌 때는, 나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짜증이 났고 또 그 짜증을 표출했었다. 고스란히 그 짜증과 화는 아이에게 전달되었고,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아빠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어린 시절, 아빠의 다정했던 모습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마다 아빠는 존재감을 드러내셨던 것 같다. 물론 한 번씩 반장이 되었다거나 상장을 받아가면 "잘했다"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나에게 아빠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아빠는 무서웠고 다가가기 힘들었다'. 나도 아버지께 편하게 다가가지 못했고, 아버지도 먼저 나에게 다가오시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아빠와 살을 부대껴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탓인지 아니면 전적으로 내 스타일인지, 아들과의 스킨십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가 아들에게 무섭게 대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것이라, '내가 아들 키우게 되면 저렇게 안 해야지'라고 총각 때부터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을 낳고 키우게 되니,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 잘 못하는 것에만, 집중되었고 바르지 않은 행동할 때마다 큰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아들에게 큰소리 지를 때마다, 내 마음이 찝찝했다.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들에게 올바르게 행동하게 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행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터득하게 되는 것 일 텐데, 어른의 시선으로만 아이를 가르치려고 했으니, 참 어리석었다.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런 죄책감이 아들에겐 늘 존재해 왔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이 내게 남아있으니, 예전에 아들과 둘만 있을 땐 어색했다. 엄마가 있어야 뭔가에 대한 어색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또한, 아들과의 스킨십 자체에도 어색함이 있었다. 나 어릴 때, 아빠와의 스킨십이 없이 자라왔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보면 아이와 침대에서 뒹구는 부자의 모습, 몸대 몸으로 심하게 장난치는 부자의 모습들은 솔직히 많이 해보지 못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 몸으로 치대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어색해서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이렇게 뭔가 어색해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으니, 가정에서 나의 자리는 그렇게 확고하지 못했다. 어느 일요일 출근하지 않고 거실에  가족이 앉아 있으면, 나만 혼자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었다. 가정에서의 나의 자리는 좁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었다. 아빠는 그저 학원에 출근해서 돈 벌어오는 존재로 인식되긴 싫었다. 아이들과 침대에서 뒹굴지는 못해도 계속 어색한 사이로 지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좀 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위해서 '일요일 가족마사지'를 생각했었고, 어느 정도 꾸준히 실천해 온 결과, 이제 아이들이 먼저 '아빠 마사지'를 먼저 찾을 정도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해서, 언젠가부터는 아침에도 아이들을 좀 더 챙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평상시에는 늦게까지 일 하고 늦게 퇴근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 평일에는 아이들 볼 시간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작년 말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너무 황망하고 슬펐는데, 나도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너무 앞서가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아이들 볼 시간을 더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근시간도 새벽 2~3시에서, 늦어도 새벽 1시 전으로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들. 마사지로 먼저 몸에 혈을 돌게 한 다음 아들을 깨우게 된다. 그렇게 하면, 아들은 등교준비가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그리고 현관문 마중하면서, 엘베 올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잘 다녀와~"라고 처음에는 인사만 했는데, 최근에는 한 가지 의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들 이마에 성호를 그으며 짧게 기도를 한다.


한 신부님께서 유아세례식 중 이마에 성호경을 그으시는 모습


성호경의 의미

저희 부부가 원래 가톨릭 가족인데, 코로나 3년 동안 냉담(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기간)을 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코로나가 풀리기 시작했고,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라서, 첫 영성체라는 성당의식이 있는데, 아들이 초3이라, 올해는 그것을 해야 하는 해이기 때문에, 성당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 있는 유아 세례식에서 신부님께서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등교하는 아들 이마에 약식으로 성호를 그어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님, 우리 시완이에게 좋은 하루를 허락하소서"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기도를 한다. 그리고 멘트 마지막에는


"아들, 아빠 한 번 안아 줄래?"


이러면, 아들이 한 번 안아주는데, 이제는 꽉~~ 안아준다. 솔직히 예전에도 서로 한 번씩 안아주고 했었는데, 서로 어색하게 감질나게 안아주곤 했었다. 이제는 아들이 먼저 꽉~~ 안아준다. 그러면 내가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다. 물론, 이런 의식이 언제까지 이어질 진 아무도 모른다. 이 의식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른 형태의 무엇으로도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친구들이 좋아서 스스로 약속 잡고 나갈 시기가 오면 서서히 사춘기가 온다면, 분명히 지금의 분위기와는 달라지겠지만, 그때도 또한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련다.


왜? 독립하기 전까지는 든든한 사랑을 주고 싶어서이다. 혼자서 자립할 때, 힘들어서 넘어지더라도 혼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그 힘, 즉 부모의 사랑. 그것을 주고 싶어서이다.



cf. [글루틴 동료작가. 조아작가님의 댓글에 공감이 되어 옮겨봅니다]

조아작가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롤모델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후 한국은 폐허나 다름없었고 먹고사는 것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었기에 자상한 아버지보다는 먹을 것을 가져오는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했죠. 산업화 시대에는 야근으로 성실함을 증명하며 자녀교육의 밑천을 버는 역할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미덕이었기에 자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는 어색함이 넘쳐 날 수밖에 없었죠.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작가님께서 직접 롤모델이 되셔서 훗날 아드님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잘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애티로스: 네 명심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의 말을 들으니, 아버지의 그 당시 상황을 많이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갑자기 더 미안해집니다. 저는 제 기준에서만 생각했지, 아버지 상황은 미처 생각을 못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상황을 다 못 헤아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커서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저희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드리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글루틴 #팀라이트 #건강한 가족 만들기 #사랑 #가정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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