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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n 27. 2019

아침 소나기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우산을 가져가야하나 말아야하나를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 속 일기예보를 보니 소나기는 낮 한시쯤 내린다고 한다. 

걱정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도착해서 개표를 하고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순간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급해진다. 

갑작스런 소나기다. 

몇 걸음만 늦었어도 난감했을텐데. 쏟아지는 플랫폼을 바라보자니 

영화<이터널 선샤인>의 짐캐리처럼 갑자기 다른행 전철을 타고 싶어진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괜히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하지만 어디로... 학창시절처럼 갑자기 전화해 보고싶다 말하면 달려올 그 누구도 없고. 

세월은 이런 낭만도 가져가버렸구나.

흙냄새가 밀려온다. 초등학교시절 밖에서 뛰어놀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갈때 나던 냄새.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씻고 갈아입었던 뽀송뽀송한 옷, 배를 깔고 파고들었던 아랫목. 

깨끗이 씻은 퉁퉁 불은 발이 닿았던 담요의 감촉. 

미숫가루에 설탕넣어 가루째 먹다가 기침으로 다 날려버렸던 기억...


큰 비가 내리던 이십대의 어느날.

얻어탄 낡은 지프에서 나오던 음악, 담배냄새와 뒤섞인 퀴퀴한 냄새, 

그래도 축축한 몸을 말릴 수 있어서 좋았던 냄새나는 히터. 천둥 번개속에서도 편안했던 작은 공간. 

그 시절의 나는 희미하지만 감촉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

요란했던 소리와는 달리 비는 오래가지 않았다. 휴대폰에선 견적서를 빨리 보내달라는 문자가 왔다.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구름사이로 맑은 하늘이 조각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낮에 한두차례 요란한 비가 더 내리면 좋겠다.

오늘밤 특선영화로 무간도를 한다. 양조위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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