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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n 27. 2019

어쩌겠는가, 감정이 흐르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되는 중요한 정보이거나 이후 확장시켜야할 생각의 단초도 아닌데 반복적으로 생각을 복기하게 될 때가 있다.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려 하면 마치 맨홀에 빠지듯, 계속 그 언저리에 생각이 멈추고 오토리버스에 걸린 테이프처럼 반복 재생하게 된다.

오고간 수많은 대화속에 나의 언어를 더듬어 보며 그 시점에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넘 크게 웃었던 건 아닐까, 목소리가 왜 그렇게 컸을까, 내 표정이 이상하진 않았을까, 평소같지 않은 내 모습을 들키진 않았는지 점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혹시 많은 호흡 속에 어느 하나쯤은 아무도 모르게 그에게 날아가진 않았을까, 그래서 그도 나처럼 머릿속에 생각이 걸리는 작은 맨홀 하나 생기지 않았을까 슬쩍 기대도 품어본게 된다.




전날 늦은 귀가에도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모임의 연장이었는지, 꿈이었는지 모를 상황들로 잠을 설쳤다.

대부분의 일상은 숙취로 물을 찾거나 화장실을 드나드는 둥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아쉬움, 설레임 뭐 그런 감정이 흐를 때...

푸석하고 건조한 일상에서 잠시 달큰하고 촉촉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일찍 눈이 떠진 김에 아침운동 겸 산책에 나섰다.

마음이 동하는 음악을 틀고 몸을 움직인다.

땀을 흘리며 계속 머무는 생각을 흔들어 깨운다.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거울을 보며 눈가의 주름을 살펴보고 목의 탄력이며 피부의 상태를 본다.

자랄대로 자란 눈썹에 시선이 가고 허리의 늘어진 살을 만져본다.

나이는 숫자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탄력이 줄고 삶의 긴장이 줄고 그 자리에 편안함과 체념이 들어앉는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바라보던 눈을 떠올리고 이야기할 때 가지런한 치아를 떠올린다.

그에게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삶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어쩌지 못하는 체념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일상을 그려보고, 삶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결혼을 해도 중년이어도 여전히 감정은 흐른다.

예상치 못한 순간, 가끔 설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하지만 곧 실존의 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더 설레고 슬프다. 마음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란 얼마나 짧은지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생각속에서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건넨다. 어차피 스쳐가는 랜덤의 인연일뿐이었다. 굳이 애써 털어버리기보다는 그런 나를 그냥 바라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질테고 어느 시점엔 지금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냥 그렇게 감정이 맥락없이 흐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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