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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사라져 가는 날.

상황도, 익숙함도 흐려진다.

by 반하다

전화가 옵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는데 이거 할라는데..."

이것저것 대충 떠오르는 단어와 상황을 조합해서 답을 던져봤지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그리 이야기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목소리도 높여봤지요.

"내가 진짜 미치겠다. 내가 왜 이라노...?"

울음 섞인 당신의 짜증을 끝으로 전화는 끊깁니다.

그리고 오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전화가 오는 건 익숙한 일이지요.


이제는 당황하는 당신을 기다려줍니다.

"응, 그냥 말해봐."

듣다 보면 정리가 되는 날도 있고,

"별거 아닐 거야, 집에 가서 내가 볼게."라고 안심시키고 다독이는 법도 알게 되었지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래. 그러면 니를 그래 본다.

알았제? 미안하다."

당신의 전화 마무리는 언제나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으로 인해 나를 그래 볼까 봐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고 절망적이고 눈물 나는 순간에,

당신은 따스한 품으로, 그 말로 나를 안아줍니다.

내 엄마.


이름이 사라집니다.

상황도 사라집니다.

기억만이 아니라 모든 익숙했던 것들에 외면을 받는 느낌은 어떨까요...?

전화 너머 놓인 내가 마음속으로 울먹이는 나날들이 당신만은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티브이를 바꿨습니다.

당신은 복잡한 리모컨 조작에 어느 날부터인가 처음 틀어진 화면을 퇴근까지 보고 있는 날도 있지요.

"요즘엔 맨날 하던 것만 또 해. 재미없다."

유일하게 시선을 두는 곳에 하루종일 같은 화면이 나오니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세탁기를 바꿨습니다.

당신은 세탁기 앞에서 옷만 만지작 거리다, 화를 내다, 베란다에 옷을 던져둔 체 자책하고 미안해했지요.

"내가 빨래를 못하겠다... 이런 건 내가 해야 하는데..."


익숙한 것도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하지만 하루는 매일 같은 듯 다른데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되고, 포기하게 될까요?

가끔 나는 마음이 툭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당산의 세상이 사라지고, 그 안에서 당신의 웃음을 찾지 못하게 되는 날이 너무 빠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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