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 물린 헬퍼
며칠만 자고 나면 횅하던 공터가 잡풀로 우거지고 머리칼을 빡빡 민 듯 잔인하리 만치 가지치기를 짧게 해 놓아도 어느새 나무는 다시 무성 해지는 걸 보면 더운 나라에서의 생명력이란 참으로 억새 고도 푸릇푸릇한 것이구나 싶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 뒤 안에 뱀까지 살고 있다는 건 너무 한 일 아닌가?
주말 아침 느긋한 아침을 챙겨 먹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자니 헬퍼 아가씨 린이 뭔가를 발목에 바르고 있는 게 보인다.
뭐냐 물었더니 마늘 즙이라고 했다.
마늘이 곰도 사람으로 바꾼 마법의 만병통치약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발목에까지 왜 바르나 의아해 이유를 물었더니 어젯밤 늦게 맨발로 뒤 안에 내려갔다가 뭐에 살짝 물렸는데 알고 보니 작은 뱀이었다며, 아프지는 않지만 혹시 몰라 마늘 즙을 발라놓는 거라고 했다.
뱀이라는 한 글자는 사실 태고의 이야기 속에서부터 얼마나 치명적이고 위험하게 들리는가
그런데 그 뱀에게 그것도 집에서 물렸다면서 어찌 저리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지.
깜짝 놀라 발목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물린 자국은 개미한테 물린 흔적보다 큰 것도 아니었다.
린의 말로는 뱀의 크기도 조금 큰 지렁이 정도였으며 모양을 봐도 그렇고, 아무 징후 없는 자신의 발목을 봐도 독사는 아니니 큰일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도 전문가에게 보이는 것이 나을듯하여, 어젯밤에 바로 얘기하지 않은 그녀를 나무라며 빌리지 안 클리닉으로 갔다.
입주민을 위한 간호사 한 명이 상주하고 있는 무료 클리닉에는 마침 침구사의 진료 및 상담이 있는 날이어서 그의 마사지와 시술을 받으려는 할머니 몇 분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뱀에게 물린다는 말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것인지 간호사, 침구사는 물린 지 12시간이 지난, 육안으로는 아무 흔적 없는 린의 발목을 여드름 짜듯 비틀어 짜내기도 하고, 알코올을 뿌려대며 부산스러웠다.
클리닉 안에 있던 할머니들뿐 아니라 옆 관리사무실 직원 몇몇도 들어와서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고 있는 린과 뜻하지 않는 주목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나를 아래 위로 번갈아 훑어보았다.
따갈로그로 주고받는 대화를 내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뱀이 아니라 내가 린을 위험하게 한 범인이라고 그들은 말하는 듯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도 자신의 무탈함을 계속 주장하는 관계로 그들이 특별히 더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뭔가를 계속 우적우적 먹어가며 린의 발을 살피던 살집 있는 침구사는 처치비로 나에게 천 페소를 청구했다.
린의 눈은 아마 뱀에 물렸을 때보다 그 금액을 들었을 때 더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천 페소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린은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무료 클리닉이지 않느냐, 해준 것도 없이 왜 그리 비싸게 받느냐 등등.
나는 그들 눈에 당황한 외국인 여자로 보인 것이고, 그것은 가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쩌지 못하는 아주 좋은 약점이라고 부족한 영어로 떠듬떠듬 설명해주었다.
오후가 되자 집주인, 관리 사무소 직원, 경비, 입주민 대표까지 전화와 방문을 번갈아 해 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린은 보아뱀쯤에게 물린 것이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광견병 주사도 안 맞히고 있는 악덕 외국인 고용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구글링과 네이버에 확인까지 한 ‘광견병은 포유류 및 설치류에 물렸을 경우에 발생한다’는 내 지식을 전문가에게 재차 확인받고자 나는 손사래를 치는 린을 데리고 이름도 거창한 ‘열대 풍토병 전문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 한 대를 맞히고 왔다.
오고 가는 동안 운전하는 내 옆에서 린은 다사다난한 그녀의 인생을 어제 본 TV 드라마 얘기하듯 조잘조잘 들려주었다.
우리 집으로 일하러 온 첫날 그녀의 모습이 기억난다. 시골에서 마닐라로 온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일하던 동네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에 마닐라 지리를 전혀 모르는 그녀는 초행인 우리 동네를 찾아오느라 힘이 들었는지 지쳐 보였다.
그러나 외국인 집에서는 처음 일해보는 거라며 상기된 얼굴로 수줍게 나와 눈 마주치던 모습이 순진한 아이 같았다.
그 까만 눈동자가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그전에 우리 집을 스쳐갔던 가사도우미들 중에는 다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물건도 잃어버리고 가불 해줬던 돈도 떼이는 등 나도 상처가 나름 있었기에 그 호감을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외출하는 나를 보며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고, 더운 날씨에 피곤해 돌아온 나를 보고는 말하지 않아도 먼저 시원한 물 한 컵을 조심스레 내밀어주는 그녀의 살가움에 내 마음은 점점 해제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집에 도착하자 린은 결연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빌리지 클리닉에 다녀오겠다고, 우리가 갔다 온 큰 병원에서 주사까지 맞았는데도 얼마 안 하는 처치비를 천 페소나 받은 그 침구사를 용서할 수 없다며 돌려받으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받은 부당함을 항변해주겠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나 정해진 원칙도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까지는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사는 ‘소심한 외국인’인 나는 당황하며 그녀를 말렸다.
그 돈을 지불한 것은 나이고, 네가 그 돈을 받으러 가면 내가 시킨 줄 알 것이며, 그렇게 됐을 경우에 생기게 될 오해나 예상치 못한 반응 같은 것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한국말로 풀어놓으니 아주 그럴 싸 하게 들리나 사실 그녀와 나는 단어 몇 개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문장으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눈동자를 보며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해석했었던 것 같다.
지내 온 시간과는 상관없이 늘 주변인 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 항의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냥 참고 마는 반벙어리인 나의 근심을 그녀가 읽었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침구사가 늘 상주하는 것도 아니었던 탓에 두 번이나 시간을 맞춰가며 방문해서는 결국 절반인 500페소를 린은 돌려받아왔다. 꽤 집요하고 용기 있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과도한 청구를 한 침구사의 입장도 민망해지지 않고, 본인의 돈도 아니면서 굳이 그 부당함을 따지고 드는 린의 정의 실현에도 흠집을 내지 않는 적당한 절충, 나의 입장도 어색해지지 않은 현명한 싸움이었다.
고맙다며, 넌 진정한 파이터라고 웃어주며 검투사의 배당금 같은 그 500페소를 그녀에게 쥐어주었다.
혹여 그 침구사의 어깃장으로 빈 손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그 마음이 나에게는 커다란 상금이 되었을 것이다.
그 미궁의 꼬마 뱀은 잡초제거에 소홀하고 가지치기한 나무장작을 마당에 방치해 놓은 우리 뒷집으로부터 넘어왔을 확률이 많다고 결론이 났으며, 우리 집주인은 그 집과 통하는 뒷마당 한쪽에 시멘트로 방어막을 해주었다.
나는 정체 모를 그 꼬마 뱀 때문에 뒷마당에만 시멘트 방어막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생긴 기분이었다.
외국인이라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바가지요금을 나보다 더 부당하다 느끼고,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용감한 친구의 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 후로도 휴가를 나갔다 오는 날이면 가끔 그녀는 장바구니에 나를 위해 로컬 시장에서 현지인 가격으로 산 채소들을 한두 가지씩 담아 오곤 했다.
따뜻한 그녀 덕에 이방인의 밥상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얼마나 풍성해졌었는지 그녀는 알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