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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백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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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 Feb 08. 2022

그녀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짱아.

만화 주인공 짱구처럼 개구쟁이인 둘째 아들의 동생으로 왔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었다.

그렇게 아들녀석의 친구가 될 줄 알고 데려왔던 아이가 나의 절친이 되어 동거동락한지 벌써 11년.



꼬불꼬불한 털에 흑진주 눈, 보드랍고 쫀득한 젤리 발바닥을 가졌던 천방지축 아기 강아지는 

이제 내 목소리만 들어도 지금 간식을 얻어 먹을 수 있는 타이밍인지, 구석으로 숨어야 할 타이밍인지를 

알아채는 눈치 빠른 개가 되었다.




더운 나라에서 태어나 선풍기 바람, 에어컨 냉기를 즐기던 그녀는 

올해 우리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맛있는 간식도 많고, 애견 놀이터, 유치원에 수영장까지 한번쯤 가 볼 곳도 많다.

이것저것 살 것 많은 엄마와 오빠 때문에 생전 처음 유모차를 타고 쇼핑센터도 돌아다녀봤다.


짱아


그러나  늘 우리집의 막내인 그녀이지만 병원 검진을 가거나 애견미용샵을 갈 때면 이젠 노견 취급을 당한다.

사실 요즘 들어 반짝거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슬슬 혼탁해지고 뒷다리의 힘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최근의  의학과 복지 발전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반려 동물의 수명도 이전과 비교하면 꽤 길어졌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짱아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중장년에서 노년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하겠다.

나의 애기로 왔던 그녀가 슬슬 나보다 더 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없는 나의 공간을 가끔 상상해본다.

나 좀 보라며 앞발로 내 무릎을 슬쩍 긁거나 

밤이면 기어이 같이 자겠다고 침대 속으로 뛰어 올라오는 

그 아이의 온기가 없는 나의 공간을 그려보는 것은 많이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그녀와 헤어지려 한다.



곧 헤어질 것처럼 아쉬운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떠나는 길인 것 마냥 산책을 나가 새로운 것들을 함께 보고 싶다 

쫄랑대며 나보다 한 발 앞서 걸어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여러 프레임에 담아두고 싶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는 연습을 하려 한다.



그녀와의 이별이 금새 올 것 같지는 않다. 

나를 위해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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