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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크샐러드 Apr 24. 2017

'내 집 마련의 꿈'과 서프라임모기지②

서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재발을 막기위한 근원적인 힘?

정치인들이 공약에 매번 주택 관련 정책을 내놓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정치가들이 자신의 주요 정치 공약에 주택 정책을 빼놓지 않고 포함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1)편에서 이야기했듯, 일련의 역사적 상황들로 인해 사람들은 '토지 소유'에 남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삶에서 부동산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큼,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라도 매력적인 부동산·주택 정책 제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이 있었는지,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1. 대공황 시기 : 3~5년 단기 주택담보대출 ->15년까지 대출 가능하도록 주택담보시장 지원


대공황이 유발되기 이전인 1930년대 이전까지 미국의 자가 거주 비율은 40% 수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토지 내지 주택을 매입하였다.  


하지만 대공황이 닥치자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당시 주택 담보 대출은 통상적으로 3~5년 정도의 단기 대출이 대부분이었고,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형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공황으로 인해 실직한 많은 사람들은 원금은 커녕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주목한 정치가들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수준인 15년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주택담보시장을 적극 지원하였다.  





2. 경제 안정화 후, 1960년대까지 : '주택 소유의 꿈', 그러나 흑인에게는...


이후 경제가 안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은 지속되었다. 미국 정부는 연방주택 사업국을 통해서 주택 구입에 필요한 자금의 80%까지를 지원해주기 시작했으며, 대출 기한 또한 최장 20년까지 또 다시 늘려주었다. 많은 미국인들의 주택 소유의 꿈을 실현시켜 주려는 정치권의 지속적인 관심 덕분이었다. 이로 인해 1960년대 들어 주택소유 비율은 60%까지 상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정부의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철저히 백인만을 대상으로 집행되었다. 주로 흑인 내지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좀처럼 대출이 이루어지 않았다.  

명목상의 이유는 흑인은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과 흑인 거주 지역은 담보물건이 불확실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택 담보 대출을 집행하였던 연방은행에서 제작한 당시 지도를 보면, 백인 거주지의 경우 A, B, C 등급으로 표시된 반면, 흑인 거주 지역은 D 등급으로 표기되었다. 따라서 신용 등급이 낮은 지역의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흑인들에게 원천적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0년대 대출 관련 자료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가능하다. 당시 모기지 대출을 받은 흑인 5명 중 1명은 8%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받은데 반해, 8%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받은 백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0~60년대까지도 토지 소유에 대한 완벽한 기회균등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3. 1970년대 : 인종차별 철폐와 함께 진행된 '주택담보대출' 차별 철폐


1970년대까지 흑인 인종차별철폐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이와 함께 주택담보 대출 관련한 차별 또한 함께 시정되었다. 1977년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가 제정되면서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빈곤지역에도 대출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정부 지원책과 함께 1970년대 전개된 고공 물가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주택 소유가 결코 정서적인 차원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투자 면에서도 아주 유용한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1970년대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대부분은 6%를 웃돌았으며, 무려 14%를 넘긴 해도 많았다. 이에 반해 모기지 대출은 30년 만기 9% 이하의 고정이자 형태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결국 은행이 대출자에게 돈을 거져 준 셈이 되었다.  





4. 1980년대 : 주택담보대출 부실 발생, 그러나 정부는 관대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미국 대통령은 늘 그렇듯 부동산 정책에 대한 관대함을 저축대부조합(Savings & Loans Association) 문제 해결을 통해 드러냈다. 저축대부조합은 예금자들의 예금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장기 저리 주택담보대출을 수행해 왔다. 주택담보대출은 저축대부조합의 본사에서 반경 80km 이내에 사는 주택 구매자들을 대상으로만 가능했다.  

이들 저축대부조합은 1970년대 경기 호황 때 주택담보대출을 불리며 급성장했다가 1980년대 들어 미국 경기 하락으로 부동산시장이 급랭하면서 부실화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1979년부터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린 것이 결정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한 저축대부조합을 조기에 정리하기보다는 저축대부조합의 자기자본비율 완화, 세금 유예, 이자율제한 폐지 등 규제 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련 규제가 완화된 저축대부조합은 자신들이 보유한 자금을 텍사스 지방의 부동산 투기에 대거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전개되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일 뿐이라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1983년 이후 부실채권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는 텍사스 소재 280개 저축대부조합 중 약 60개가 지급불능상태에 처하였으며, 이후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들이 파산하여 정부의 대규모 자금지원을 통해서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5. 2000년대 : 저소득계층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 서브프라임 모기지


2000년대 들어서도 부동산을 매개로 한 유권자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2002년 10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들이 저마다 집을 소유하는 것을 희망한다.” 라는 연설과 함께 10년 내로 대출업체를 통해 소수 인종 550만 명에게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 지원법(American Dream Downpayment Act)에 서명한다. 이는 저소득 계층의 주택 구입을 보조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이 법안으로 인해 시중 은행은 저신용자들의 대출심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충분히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만 활성화되었다. 이로 인해 두 세기 전 미국에 흘러들어왔던 많은 흑인노예의 후손들과 역시 한 세기 전부터 불법이민자로 미국에 흘러들어왔던 많은 라틴계 사람들의 후손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보스턴 지역에서 서브프라임 대출을 차입한 사람들 중 55%는 흑인과 라틴계 사람들인데 반해, 백인은 13% 수준이었다. 워싱턴 역시 흑인과 라틴계 대출자 비중은 75% 이상인데 반해 백인은 17%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활성화시켰던 법안 통과가 소수민족 계층의 주택 소유 열망에 부합하고자 했던 것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영화"빅쇼트" 포스터: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하지만 결국 2000년대 들어 지속적인 호황을 누리던 미국 주택시장은 2006년 하반기부터 침체국면에 진입하게 되었고, 특히 2007년 들어서는 주택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주택가격 하락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택가격 하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화와 함께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져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초래하는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많은 금융전문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져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기본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화로 인해 이를 기반으로 관련 금융상품들의 부실화와 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정확하게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규제산업이다. 즉, 정부 당국의 관리 감독 아래 판매할 수 있는 금융상품의 내용과 방식이 제한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가져온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이러한 부실한 대출이 아무 제한 없이 전개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완화해 준 정부 당국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 소유의 주택을 갖고 싶어한 많은 투자자들의 감성적인 열망과 그러한 유권자로부터 표심을 얻고자 했던 정치가의 계산이 숨어 있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적극 도입해 왔다. 하지만 주택을 소유하고 싶다는 부동산에 대한 대중들의 감성적인 열망은 여전한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 또 다시 이러한 대중들의 감성적인 열망에 부합하여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가가 관련 규제를 완화해 줄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브 프라임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부동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객관적인 시각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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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을 KAIST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세종시 지역산업발전위원, 양성평등위원,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KBS1 〈아침마당〉, KBS2 〈여유만만〉, tvN 〈곽승준의 쿨까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경제 강의를 전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 2』, 『경제학 입다/먹다/짓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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