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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크샐러드 Oct 24. 2017

주식 거래시장의 기원, 존과 메리의 이야기 (1)

어렵기만한 주식이야기 재미나게 소개해드립니다.


# 이전 이야기

17세기 네덜란드의 여성 사업가 베네딕타. 동인도에 배를 보내 후추를 들여와 네덜란드에 파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그녀는 요즘 고민이 크다. 지난번에 동인도로 보낸 ‘산 호세’호가 피랍되는 통에 쩐주들이 등을 돌려, 배를 만들기 위한 막대한 돈을 조달할 방법이 당최 없었던 것. 

지혜로운 여성 사업가 베네딕타는 동인도회사를 설립, ‘주식’을 발행해 시장의 소액투자자들을 대거 모집하는데 성공했고, 5억원을 조달해 막강한 화력과 내구력을 지닌 ‘산타마리아 호’를 건조해 동인도로 출항시킨다. 그 무렵, 시장에서는 그녀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베네딕타가 만든 동인도회사의 사례는 주식이 발행되는 시장을 보여줍니다. ‘주식 발행가격’이 5천원 이라는 것이죠. 요즘 세상에서는 ‘액면가격’으로 표현됩니다. 동인도회사 주식의 액면가격은 5천원이고, 그로 인해 모인 5억원은 자본금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주식시장은 ‘주식이 거래되는’ 시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식의 가격이 얼마인가’라고 물었을 때에는 액면가격이 아닌 현재의 주식 거래가격, 즉 ‘현재 주가’로 대답하죠. 삼성전자의 주가는 2백만원이고, 액면가는 5천원입니다. 동인도회사를 처음 세운 베네딕타와 그 주주들에게는 현재 주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낸 돈은 5천원이고, 나중에 배가 돌아왔을 때 주 당 얼마를 배당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베네딕타는 주식을 중간에 팔아야 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산 사람들 중, 산타마리아 호가 입항하기 전에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사 줘야 하겠죠? 팔려고 하는 사람과 사려고 하는 사람이 만나서, 주식의 ‘거래시장’이 생겨납니다. ‘매도’하려는 사람에게는 주식의 가격 변동이 중요합니다. 부동산과 같죠. 평생 그 집에서 살 사람은 내 아파트의 현재 가격이 중요치 않지만, 이사를 자주하는 사람이라면 집값의 변동에 민감한 것과 같습니다.




현대의 ‘주식거래소’는 말 그대로 주식이 거래되는 곳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거래소는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점잖게 앉아서 마우스 클릭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흡사 ‘시장 좌판떼기’와 비슷했습니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고, 온갖 수신호들이 즐비한 시장통이었죠. 현대의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주식이나 선물옵션과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면 종잇조각과 유선전화기를 들고 소리를 질러대는 거래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주식거래시장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픽션을 소개합니다.



이번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향수집 비정규직 노동자인 존과, 쓰러져가는 백작 집안의 귀부인 메리입니다.

베네딕타가 만든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주식을 산 사람들, “주주”들은 단 꿈에 젖어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산타마리아 호만 돌아오면, 내 5천원짜리 주식이 5만원이 되겠구나!’ 



향수 가게의 도제였던 ‘존’과, 백작 가문의 귀부인이었던 ‘메리’도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샀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사들인 주식수는 무려 천 주. 5백만원 이라는 같은 값의 주식을 샀지만, 두 사람이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산 계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은 악덕 사장 밑에서 10년간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죽어라 일만 한 지 10년, 파릇파릇하던 그의 나이는 불혹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느때처럼 애들 먹일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간 존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산타마리아 호의 주인이 되자”며 종잇조각들을 사고 있는 뜻밖의 광경을 마주합니다. 존은 문득 악덕 사장이 가게에서 손님과 나누던 이야기를 기억해 냅니다. 기억하기로, 손님의 이름은 ‘베네딕타’였습니다. 그녀는 사장에게 자신이 하는 사업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


“동인도에 갈 ‘산타마리아 호’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세웠어요. 쩐주들이 움직이질 않으니, 시장 좌판에서 주식이라는 종잇조각을 만들어 돈을 모을 예정이랍니다.”

“산타마리아 호는 역대 최강의 배가 될 거에요. 그리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다 줄 게 확실하죠. 배는 온통 철갑으로 둘러쳐 태풍에도 끄떡없을 것이고, 은퇴한 해군 대장 브리앙이 경비를 맡는 이상 해적들은 산타마리아 호의 깃발만 봐도 오금이 저릴 거에요. 아무 탈 없이 인도에 다녀올 우리 동인도회사의 멋진 배 덕분에, 난 투자자금의 10배를 돌려받게 될 거에요.”



존은 가슴이 뜁니다. 죽을 각오로 모은 돈을 10배로 부풀릴 기회가 생긴 거죠. 사실 존은 베네딕타를 자주 봐 왔습니다. 향수 중독자였던 그녀는 자주 존이 일하는 가게에 드나들었고, 그녀가 평상시 해 오던 이야기들은 한치의 거짓이 없었거든요. 장바구니를 내팽개친 존은 그 길로 은행에서 그가 모은 모든 돈 5백만원을 인출합니다. 동인도회사의 주식 천 주를 산 존은 남루한 반지하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보, 우리의 고행은 끝이 났소”


귀부인 메리는 네덜란드의 소문난 ‘팔랑귀’ 였습니다. 백작 부인인 메리의 집안 사정은 사실 썩 여의치 않았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몇 번이나 사업을 말아먹은 그의 백작 남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팔랑귀인 자신의 투자 실패도 꽤나 일조했죠. 결정적으로, 최근 튤립 파동 때 사들인 튤립의 가격이 대거 폭락하면서, 그녀의 집안에 남은 돈은 고작 5백만원이 전부였습니다.

백작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메리는 도무지 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배운 것이라곤 오로지 ‘소문에 근거한 투자’. 메리는 튤립 파동 때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로사’의 집에 거의 살다시피 합니다. 허드렛일까지 도맡을 각오로 들러 붙는 메리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던 로사는 끝내, 그녀에게 한 가지 아이템을 던집니다.


“시장에 가 보면 동인도회사의 주식이라는 종잇조각을 팔고 있을 거에요. 그거나 좀 사 보시고, 더 이상 이 집에 드나들지 않도록 해요”



메리의 팔랑귀가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합니다. 메리 역시 그 길로 남아 있는 현금 5백만원을 긁어 모아 시장통으로 향합니다. 길게 늘어선 줄에 다급해진 메리는 품위를 잊은 채 새치기까지 해 가며 동인도회사의 주식 천 주를 사들입니다. 그날 메리는 하인들을 시켜 파티를 엽니다. 어리둥절한 백작 남편에게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여보, 이번엔 틀림없을거야!”



며칠이 지나, 산타마리아 호의 진수식이 열렸습니다. 존과 메리는 위풍당당히 출항하는 배를 보려 애써 시간을 냈습니다. 존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강철에 둘러싸인 배는 어떤 태풍에도 굴하지 않을만큼 위용이 있었고, 선두에서 포병들을 지휘하는 브리앙의 뒷모습은 후광에 쌓여 있었죠. 존은 남루한 차림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서 배의 위용을 설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배! 저 위용을 보세요!”



한편, 메리는 그저 기분이 좋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무거운 철갑선을 보고 괜히 침몰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고, 늙은 퇴역군인이 선수에 서 있는 게 못마땅했죠. 존의 열변을 보면서도 당최 산타마리아 호가 어떤 배인지 몰랐던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비바람이 거세던 어느 날, 흉흉한 소문이 시장에 돌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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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종헌
동부증권에서 영업직원의 삶을 시작한 이종헌씨는 언제부턴가 마케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틀에 박힌 일에는 전혀 재미를 얻지 못한다는 그는, 별 것도 아닌데 어려워 보이는 증권사 금융상품을 쉽게 풀어주는 강의를 하기도 하고, "단기매매"에 빠져 있는 고객들을 위해 주식의 "진짜 모습"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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