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를 깨워서 뭐라도 먹이려면 지금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리맡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아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벽을 통해 딸아이의 휴대폰이 울리고 있다. 하긴 이렇게 휴대전화 벨소리를 듣고 스스로 일어나 본 적은 없다. 몸을 뒤척이며 책상다리를 붙잡고 겨우 일어난 나는 방문을 두드렸다.
“성현아! 일어나. 6:30분이야.”
성현이를 깨우는 소리에 둘째 수현과 아들 용하는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차례로 일어나 양치질하는 내 등을 껴안고 돌아가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이 셋에게 아침상을 차려주던 시절
칫솔에 치약을 발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오늘 하루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아토피를 앓고 있는 성현이의 손바닥은 트다 못해 갈라지고 있었다. 된장찌개를 내려놓으며 성현이에게 물었다.
“야자 끝나고 365일 병원이라도 갈까?”
한 손에 단어장을 들고 있던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던 성현이는 대답할 힘도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갈라진 입술 사이로 젓가락을 이용해 밥알을 밀어 넣었다. 하긴 수능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병원을 갈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나는 뒤늦게 포장된 김을 뜯어서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들은 냉장고에서 스팸을 꺼내 프라이팬에 굽고 있었다. 남편이 있는 방문을 열어보려고 방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지만 여기서 더 기분을 다운시키고 싶지 않았다.
국정감사기간에는 수많은 자료 요청이 왔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사단법인의 조그만 연구회 사무국장이라는 자리가 나의 직업이었다. 해양영토 수호라는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있는 단체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감정노동을 겪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날도 담당기관에서는 갖은 자료를 요청해왔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국회에서 요청받은 자료를 요청하는 것이지만 전화 한 통을 소화하는 데는 몇 십장의 서류를 복사하고 스캔하고 보내는 작업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와중에 이사장님은 전 교육감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에 태워달라고 하였고 거래은행에서는 법인인감증명서를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게다가 다음날은 이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사들은 국회의원, 대학교수, 변호사, 도의원, 지방건설사 회장 등이었다. 저녁 시간에 이렇게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사회는 늘 조찬모임으로 개최된다. 이사회에서 통과될 서류는 내년 예산(안)이었다. 여섯 분의 이사회 서류를 프린트하면서도 머릿속은 다음 할 일을 생각하며 계속 돌아가야 했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 말인지 실감을 하며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친정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미경이냐? 쌀 방아 찧었는데 찹쌀도 한 가마니 보낼까? 너 찹쌀밥 좋아하잖아. 팥도 한 중발 넣어서 보내야지?”
“엄마. 바빠서 그런 거 해먹을 시간이 없어요. 쌀만 보내주세요.”
“뭐가 그렇게 바쁘니? 참말로 팔자 도박은 못한다더니. 인물도 남에게 빠지지도 않고 어릴 때는 똑똑하다고 선생님이 동네까지 상장을 들고 왔는데 왜 복을 그렇게 짤릅게 갖고 태어났을까나잉. 팔자는 못 벗어나는가 벼. 네가 시(時만) 쪼까 늦었더라도 그렇게 동동거리지 않고 살아도 될 거인디. 암만해도 3월 초순이고 닭띠인디. 8시 반인 게 시간이 좀 일르제. 그 시간에 뭐 먹을 것이 있겄어. 동은 트니까 헤집고 다니면 뭐라도 건지기야 건지겄지만 날은 아직 춥고 먹잘 것은 없고 그러지.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평생 동동거리며 살아야 되는가 벼. 참말로 내가 짜던 베로 배를 잡아 묶고서라도 시를 좀 늦췄어야 되는디. 그때 베를 한자만 더 짜면 그 도투마리를 끝내것다 싶어서 암만 참을라고 해도 나오는 걸 어쩔 것이냐. 배틀넷서 내려와서 바로 몸을 풀었다니까.”
친정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태어난 시를 잘못 타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신다. 공부로 따지면 나랑은 댈 것도 없던 여동생은 돼지띠에 저녁에 태어나서 69평 아파트에 살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넓은 집에 살면서 티 하나 없이 산다고 비교하며 한 말이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남기며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그러니까요. 엄마가 조금만 늦게 낳지 그랬어요. 바쁘더라도 먹잘 것이라도 많게 하든지 먹잘 게 없으면 몸이라도 편케 하든지. 그만 끊어야 돼요.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나에게 퇴근시간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밀린 지출결의서를 정리하며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통닭을 시켜주고 성현이가 야자가 끝날 때까지 이사회 서류를 점검했다. 일을 하다 보니 점심도 저녁도 굶은 것이 생각났다. 배가 고프면 울적한 생각이 더 들었다.